# 움트는 봄 한동안 겨울 끝자락의 추위가 매서워 고생했다. 너무나도 날이 추워 땅이고 물이고 다 얼어 버렸
다. 가축에게 물을 주기 위해 냇가에서 물을 끌어오는 배관도 얼어 버렸다. 궁여지책으로 조금 떨어진 냇가에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다 줘야 했는데 무거운 양동이를 몇 번이고 옮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실수로 물을 발에 쏟기라도 하면 발이 어찌나 시리던지. 추운 날씨 때문에 사람이고 동물이고 고생이 많았다. 언 땅을 파는 일은 고됨이란 단어를 가감 없이 체험케 했다. 배관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땅을 파야 하는데 따뜻한 날이라면 하루에 끝날 일을 삽에게 속살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꽝꽝 언 땅을 일주일 가까이 파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민들레 공동체 아이들은 얼음 위에서 노느라 정신이 없는데, 일을 해야 하는 나는 하루 종일 삽질만 했다.
요 며칠은 봄 날씨 마냥 따뜻해 볕이 잘 드는 마당에 앉아 한참이고 눈을 지그시 감고
 
볕을 맞곤 한다. 볕이 좋은 날은 강아지고, 고양이고 볕을 맞으며 곳저곳 널브러져 여유를 부린다. 그렇게 한참을 볕을 맞고 있자니 그간 볼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쌓여 있는 낙엽 밑에는 벌써부터 새순을 돋우려는 온갖 풀들이 벼르고 있는 듯하고, 빠짝 말라 있는 나뭇가지도 어느새 새순을 돋우려 한껏 부풀어 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를 둘러쌓고 있는 모든 것들은 제각각 지혜롭게 봄을 맞는데 나는 아직도 겨울잠에서 덜 깨어난 개구리 마냥 게으름만 피우고 있으니 정말 큰일이다.

# 물과 거름 마당 한편에 흙으로 지은 생태 화장실이 있다. 얼마 전부터 물 절약을 위해 공동체에서 수세식 화장실 사용을 줄이고 생태 화장실을 쓰기로 했는데 추운 날씨에 밖으로 나가서 화장실을 가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생태 화장실을 쓰면 하루에 수십 리터의 물을 아끼고 농사지을 때 필요한 좋은 거름도 얻을 수 있다. 생태화장실에서 나온 인분은 한동안 퇴비장에서 잘 발효되어 텃밭에 거름으로 사용하는데 비료 중에 인분만큼 좋은 비료가 없다고 할 만큼 인분 퇴비로 키운 작물은 잘 자란다. 생각은 그렇지만 막상 몸을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수세식 화장실을 쓰는 게 당연하고, 절약하고 싶어도 불가피한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하루에 몇 번이고 물을 내리는 것과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대안을 고민해 보는 것하고는 분명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방관했을 때 아무리 입으로 대안을 이야기한다 해도 실제로는 환경을 파괴하고 가뭄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자라나는 것들

축사에는 추운 겨울을 견뎌낸 병아리들이 이제 제법 자라 깃털을 세웠고, 작년에 데려온 작은송아지는 이제 제법 큰 소가 되었다. 울음소리는 어찌나 큰지 먹이를 조금만 늦게 주면 음메하는 소리에 귀가 다 아플 정도다. 닭이든 소든 간에 키울 때에는 잘 모르지만 어느 순간 부쩍 자라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깜짝깜짝 놀란다. 난 겨울 동안 조금은 게으르게 시간을 보냈는데 자연은 때를 알고 자라나 멈춰 있던 나를 돌아보게 하니 자연은 언제나 좋은 선생님이다.
이제 봄 농사를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고, 또 그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좀 귀찮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설렌다. 힘들어 일하기가 싫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도 많고, 몸도 힘들지만 흙을 만지며 다시 일할 상상을 하면, 역시 나는 흙을 만지며 살아야겠구나 싶다. 나, 김진하가 내 딛고 있는 흙의 향, 들풀의 향과 생명이 움트는 향을 떠올리면 비록 힘든 일이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벅차오른다.

벌써 어느덧 1년이 지나 이제 스물 하나가 된 나, 김진하. 앞으로 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참 많다. 미숙해 보일지 모르지만 조금 더디더라도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소한 모든 생명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에 행복해하며 진정한 삶을 누리며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흙을 만지며 놀고, 그곳에서 일한 지 수년이 흘러 지금까지 왔지만 한 번도 내 선택을 후회한 적 없다. 그냥 고생길이 훤해서 좀 걱정스러울 따름이지만 어차피 고생 없는 곳은 없지 않나. 앞으로도 이 산청 골짜기에서 자연과 나, 너와 나, 창조주와 나를 생각하고, 때론 고민하며 속 편하게 살고 싶다.
(김진하 님의 연재는 이번 호가 마지막입니다.)


김진하|지리산 산청 골짜기에서 흙냄새 풀냄새 맡으며 농사짓는 서툰 농사꾼. 민들레공동체에서 생활하며 민들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일하며, 매일매일 농사일로 머리가 꽉 차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느낀 대로 사는 고민 많고 속편한 스물 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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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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