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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1 05-06 마음의 쉼표

마음의 쉼표 2│멈출 때 시작되는 것들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하는데
소음과 쉼 없는 불안 가운데서는
결코 그분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 마더 테레사 -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중에서


 
사랑하는 남편에게
다시, 봄이 왔어요! 도적같이(?) 맞았던 지난 여름, ‘내년 봄에는꼭, 꽃구경을 가자’고 약속했던 것, 기억하죠? 도시 생활을 하는 우리는 꽃구경을 챙겨줘야 해요. 잿빛 콘크리트 건물이 빼곡히 들어찬 도시에서는 띄엄띄엄 심긴 봄빛이 진가를 발휘하기 어려우니까요. 올 봄에는 지천에 꽃나무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요. 분주한 일상에 봄을 빼앗기지 말아요.
그리고 침묵도, 빼앗기지 말아요. 테레사 수녀의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에요.
바쁜 일상은 우리에게 성과물을 끝없이 요구하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생산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것 같아요. 그런 일상에서 침묵은, 뭐랄까, 무용한 것 같이 느껴져요.
하지만 테레사 수녀님은 기도의 삶을 살거나, 삶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침묵해야 한다고 하시네요. 마음의 침묵을 지켜야 한다고요. 그래요, 마음의 침묵! 심지어 기도를 하기 위해 눈을 감거나 입술을 열지 않을 때에도 마음은 저절로 멈춰지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동안 미뤄두었던 생각이 이것저것 솟아오르니까요. 하지만 마음을 멈추고, 상념과 소원을 덜어내어야 바로 그 마음자리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평화가 머물 수 있겠죠?
우리, 힘써 침묵을 지켜요.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고, 참 평화, 참 안식을 누려요. 분주한 일상에 하나님의 현존을 빼앗기지 말아요.
당신과 함께 만들어가는 믿음의 여정이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늘 고마워요. 사랑해요.
- 당신의 아내 드림 -                                                                                            
신윤주




“침묵과 가난과 고독 속에서는 하나님이 전부시기에 하늘도
나의 기도요, 새
들도 나의 기도요,
나무들 사이로 부는 바람도 나의 기도
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 안의 모든 것
이기 때문이다.”
- 토마스 머튼 - <고독 속의 명상> 중에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다시, 찾아온 봄을 정성껏 바라보겠다고 다짐했어요. 봄볕 같이 따스한 당신의 반가운 편지를 받은 이후부터요. 천국이 침노하는 자의 것이듯, 봄도 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보이는 것이겠지요. 그래요, 우리, 올해는 봄꽃을 보고 나서 봄을 보내주어요.
우리가 곧잘 봄과 같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이유가 침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에 동의해요. 저는 그 말씀을 듣고 토마스 머튼 수사님이 <고독 속의 명상>에서 ‘침묵과 가난과 고독’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구절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침묵뿐만 아니라 ‘가난과 고독’까지도 추구하라는 부분에서, 불쑥 의문이 들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데, 가난과 고독을 추구하라니? 게다가 우리 88만원 세대나 워킹푸어working poor들은 굳이 가난을 추구하지 않아도 이미 가난하잖아? 마음의 고독이나 자발적 가난 같은 소리들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
토마스 머튼 수사는 이렇게 답변해놓았어요. “참된 가난은 감사를 주고받는 것, 우리가 쓸 필요가 있는 것만 지니고 있는 것이다. 거짓된 가난은 아무런 필요도 없는 척하고 청하지도 않는 척하면서 모든 것을 구하려고 애쓰고, 그 무엇에 대해서도 전혀 감사하지 않는 태도이다.”
침묵을 지키고, 가난과 고독에 거하되, 성취와 성공을 통해서 ‘행복’을 찾지 않아야 하듯 가난과 고독을 통해서 ‘영적 풍요’를 노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만 주어진 것에 기뻐하고, 받아 누리는 모든 것에 감사하는 태도야말로 추구해야 할 바임을 늘 기억한다면 좋겠습니다.
봄꽃에 감탄하며, 감사하는 것으로 충분하겠지요. 보이지 않는 봄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겠다는 욕심도 버리고, 그저 참된 침묵과 가난, 고독 속에서 봄꽃을 보러 갑시다. 당신과 함께 향유하는 삶은 이미 충만합니다. 사랑합니다!
- 당신의 남편 드림 -                                                                                            
이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