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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한페이지 단편 소설

좋아요, 취소

스마트폰에 페이스북 어플을 깐 것 까지는 좋았지만 친구 찾기 기능을 이용한 건 실수였다. 사용법을 잘 몰라 이리 저리 눌러보다가 그만 이메일을 통한 친구 찾기 버튼을 눌러 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사람들이 나를 찾아 내게 친구 신청을 했는지 궁금했다. 예전 직장 사람들, 결혼 후에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까지 친구가 되었다.
결혼한 여자 친구들은 자기 얼굴 대신 두세 살 된 아이의 사진이 프로필 사진이고 (나는 기르던 고양이 사진), 가족들과 뭘 먹으러 갔는지, 아이와 어떻게 지내는지 사진과 글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 같은 노처녀들은 꿈도 못 꿀 거란 듯한 자랑질. ‘좋아요’ 버튼 옆에 ‘싫어요’ 버튼이 있었다면 그걸 눌렀을 텐데.

띠링, 하고 새로운 친구 신청이 들어왔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은 가입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서였다. K로 시작되는 남자 이름이긴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정보 페이지에 들어가니, 같은 대학교 졸업이다. 결혼 상태는 미혼. S전자 재직중. ‘아, 생각났다.’ 같은 광고 동아리의 선배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옷도 촌스럽게 입고 와서 여학생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지만 한때 나하고는 꽤 친하게 지낸 선배다. 공모전을 위해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마다 제일 열심히 준비하곤 했다. 용기를 내서 K의 담벼락에 글을 썼다.

“선배 잘 계시죠? 친구 신청 반가웠어요!” 

다음날, 내가 적은 글에 K가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었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좋아요를 받는 기분이란 세상 어디에서 나의 사소한 이야기를 알아주고 있다는 그런 기쁨이구나.’
그 때부터 나는 소소한 일이 있을 때마다 상태 업데이트를 했다. K는 내가 올린 모든 글에 ‘좋아요’ 버튼을 눌러 주었다. 상사가 말도 안 되는 일로 트집을 잡았다는 말에도‘ 좋아요’, 퇴근 후 들른 푸짐한 오뎅탕 사진에도 ‘좋아요’, 일요일 오후 할 일이 없어 다운 받은 미드를 다섯 편이나 내리 받았다는 말에도 ‘좋아요.’
그의 담벼락엔 그가 직접 남긴 메시지나 사진은 없었다. 프로필 사진도 비워 있는 것으로 보아 계정만 만들어 놓고 사용은 잘 하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나처럼 친구들의 소식을 구경하는 용도로 사용했을지도.
밤새워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가끔씩 선배가 그런 웃음을 내게 보여준 것을 기억한다. 그 때 나는 같은 동아리의 회장 선배를 사귀고 있었다. K와는 달리 자칭 프리젠테이션의 귀재라며 어느 자리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한번은 K가 영화를 보러가지 않겠느냐며 물었던 적이 있다. 왕가위의 <중경삼림>.
남자친구와 싸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그것이 은근한 데이트 신청이라는 걸 알면서도 함께 갔다. 영화는 깜찍하고 애틋했다. 경찰복을 입은 양가위에 푹 빠져 버렸다. 하지만 이후로 다시 남자친구와 사이를 회복했고, K와는 서먹한 관계로 끝나 버렸다. 그게 벌써 7년 전 이야기다.
오랜만에 대학 동아리 사람들이 신년 모임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K에게 쪽지를 보냈다. 바쁘겠지만 시간이 되면 꼭 보자고. 하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왁자지껄 펼쳐진 술자리에서도 혹시나 K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렸다. 2차가 거의 끝날 때 즈음 K가 헐레벌떡 나타났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그런데 선배는 2년 전에 결혼을 했고 애가 16개월이란다. ‘어라, 페이스북의 정보와 다르잖아?’ 휴대폰을 꺼내 애기 사진을 여러 장을 보여주었다. 마치, 여자 친구들이 페이스북에서 사진으로 자랑 질을 하는 것처럼.
 
“이런 사진은 페이스북에 올리지 그랬어?”
“나, 그거 안하는데. 스마트폰은 너무 복잡해서”

처음엔 쑥쓰러워서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친구 신청을 한 것도, 내게 메시지를 받은 것도 알지 못했다. 나의 모든 글에‘ 좋아요’는 왜 눌렀냐는 질문은 꺼내지도 못했다. 보험 설계사로 일한다며 사람들에게 명함을 돌리는 그를 한참동안이나 쳐다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페이스북의 ‘띠링’ 하는 알림 문자가 왔다. 페이스북의 K에게서 온 쪽지다.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쪽지를 확인했다.
<죄송합니다. 이름이 같아서 친구인줄 알고 친구신청을 했습니다.>
그렇구나. 어쩐지. 직업도, 기혼상태도 다르더라. 나는 손가락을 작은 자판에 조심스레 찍으면서 답장을 보냈다.
<괜찮아요. 덕분에 기분이 좋았으니까요.>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K에게 답변이 올 줄 알았지만 아무런 소식도 도착하지 않았다. 

서진|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일명, 한단설 1pagestory.com)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3nightson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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