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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클래식/국악의 숲을 거닐다

구름 위의 방랑자 │ 슈베르트 : <겨울 나그네>를 노래하다

모두 한 번쯤은 들었거나 불러보기도 했던 기억이 있는 슈베르트(1797~1828) <보리수 Der Lindenbaum>. 원래 이 곡은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Winterreis>의 5번째 노래입니다. <겨울나그네>는 24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연가곡집인데, 가곡의 왕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3대 연가곡집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보리수>와는 달리 <겨울나그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매우 어둡습니다. 겨울의 고독과 우울함의 정조가 그 어느 작품보다 짙게 드리워 있는 노래랄까요. 원래 이 곡은 독일의 대문호 빌헬름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것으로 슈베르트 자신이 죽기 1년 전에 작곡한 일명 ‘젊은 방랑자의 노래’로 불리는 곡이기도 합니다.
연인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년이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으로 나그네의 길을 떠납니다.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황량한 들판을 헤매는 젊은 방랑자의 마음은 고통과 절망, 눈물로 허덕이고 까마귀, 환상, 백발과 같은 죽음의 환영에 사로잡힙니다. 나그네는 마지막으로 마을 어귀에 앉아 있는 늙은 악사에게 방랑자의 길을 함께 나서자는 제안으로 이 연가곡집은 어두운 결말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걸어가는 이 젊은 방랑자의 노래에 그의 어떤 작품보다 묘한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절망과 슬픔, 서정성이 주는 카타르시스라고 해야겠지요. 그건 아마도 이 <겨울나그네>야말로 슈베르트라고 하는 영원한 가객歌客의 자아가 고스란히 투영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겁니다.
 
슈베르트는 이 <겨울나그네>를 작곡할 무렵 오선지를 사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할 정도였지요. 사실 그의 삶 자체가 불우하였습니다. 그는 생전에 음악가로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무명의 작곡가에 불과했지요.

156cm의 단신으로 외모 컴플렉스에 시달려야 했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독신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슈베르트, 그의 삶은 마치 연인에게 버림받고 이제 죽음을 향해 방랑하는 그의 <겨울 나그네>의 차가운 여로와 같아 보입니다.
당대의 세상은 그와 그의 음악을 냉대했습니다. 그는 좌절했고 고절감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그의 방랑과 사랑마저 꺾을 순 없었습니다. 그는 추운 겨울, 불도 들어오지 않는 냉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면서도 작곡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철저하게 세상에서 소외 되었음에 절망했지만 노래하는 나그네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치 프리드리히의 그림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처럼 고독 속에서도 그의 아름다움의 세계를 오르고 또 오르며 응시하고 방랑했습니다. 그는 짧고 비극적인 생애에도 불구하고 10곡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7곡의 서곡, 오페라, 15곡의 현악 4중주곡, 7곡의 미사곡, 22곡의 피아노 소나타 및 약 600여 곡의 주옥같은 가곡을 남겼지요.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이름조차 아는 이들이 거의 없었지만, 오늘날 슈베르트의 음악이 없는 음악의 세계란 상상하기란 힘들게 되었습니다.
 
슈베르트의 묘비에는 “음악이라는 예술이 여기 그 풍성한 재능으로,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희망으로 묻혀 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음악가 그러나 낭만과 방랑의 열정으로 길어 올린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여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슈베르트의 삶과 음악이 줄 수 있는 위로와 희망 같은 것일까요? 자신이 결코 그 자신의 음악에서 소외되지 않았던 진정한 ‘겨울나그네’의 영혼을 마주하고 싶은 시간입니다.

백광훈|따사로운 창가에서 클래식과 커피한잔을 즐길 것 같지만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열혈 애청자인 문선연의 책임연구원이자 두 아이의 아빠고 목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