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사람과 사람

대중의 언어로 말을 거는 신학자 │ 이화여대 백소영 교수

  

 

“지난 주에 뿌리깊은 나무 보셨어요? 정말 재미있었는데...” 드라마 이야기로 백소영 교수와 만남을 시작했다. 특별한 질문 목차 같은 것 없이도 카페에서 수다 떨듯 시작한 인터뷰로 포장한 대화. 드라마 얘기, 요즘 대학생들 이야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 까지. 다양한 세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그녀의 관심사는 백소영 교수가 그동안 활동했던 폭넓은 범위를 보여주는 듯했다. 기독교사회윤리 여성신학자로서, 대학생들의 멘토로서, 또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스스로 ‘70%아줌마, 30%학자’로 소개하는 백소영 교수를 만나보았다. 이재윤 · 사진 김준영

한국에 와서 엄마들과 얘기하다 보니 드라마를 모르면
“지금처럼 교수의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 때는 역설적으로 미국유학 시절이었다. 장학금을 받고 보스턴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백소영 교수는 그곳에서 만난 유학생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특별히 육아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던 상황이라 그녀는 ‘24시간 아기 엄마’로 살았다. “꼬박 7년을 그렇게 보냈어요. 학위를 마칠 수 있을지,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답답한 시절이었죠.”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료함을 느끼던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나간 놀이터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또 다른 아기 엄마들을 만났다. 각국에서 온 다양한 종교, 다양한 문화권의 엄마였다. 학교에서 쓰던 학적 용어는 그녀들과 대화에서 하나도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엄마들과 만나며 문화와 종교를 뛰어 넘는 아기 엄마에게 있는 공통점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컸던 건 엄마로 살면서 ‘나’가 없어지는 공허함이었다. 그렇게 엄마들과 소통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관심은 귀국 후에도 이어졌다. “한국에 와서 엄마들과 얘기하다 보니 드라마를 모르면 얘기가 안되더라구요.” 열혈 시청자가 된 후 드라마가 복음을 위한 좋은 소통의 도구일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렇게 몸으로 현명한 감각으로 ‘선덕여왕’부터 ‘꽃보다 남자’까지 대한민국 인기 드라마 수십 개를 주제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신앙 묵상을 선보인 책 <예수와 함께 보는 드라마, 드라마틱>을 썼다.

“영화도 이 시대에 영향력 있는 매체지만, 하루하루 분주히 살아가느라 영화관에 가기 힘든 분들도 많잖아요. 그에 비해 드라마는 세대, 직업,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집에서 볼 수 있는 서민적 매체인 거 같아요.” 난해한 학문 언어에 고립되지 않고 대중과 소통을 추구하는 신학자로서 의지가 엿보인다.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그리고 현재도 계속 키우고 있기에 누구보다 아줌마들의 마음을 잘아는 그녀는 아이 엄마를 위한 책을 썼다. 사실 이 책은 유학 시절 자신의 전공을 좀 더 고민하고 학문을 구체화한 연속선상에서 탄생한 신학적 작업을 거친 글이었다. <엄마 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는 그렇게 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 강렬한 제목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경험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섰다 하겠다.

한 영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진정성이 있다면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후 대학생들이 당연히 그녀의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상위 10%도 아니고 하위 10%도 아닌 가운데 끼인, 소위 인터넷에서 말하는 ‘잉여’들이 스스로 말을 걸어왔다. “A+ 받은 학생들은 학기 끝나면 연락도 잘 안해요. 근데 C학점 맞은 ‘잉여’들이 자주 찾아와요. 정도 많고 이거저거 호기심도 많구요, 하하” 요즈음은 경쟁이 치열해 92점을 받아도 C학점이라고 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을 들고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기가 쉽지는 않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해야지
어쩌겠니, 라고 말하면서도 어떨 땐 실직자로 만들까 두렵기도 해요. 하지만 그 아이들을 잉여로 부르는 건 죄악이에요. 저는 그들이야 말로 잠재적 혁명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해요.”

 
기독교사회윤리를 전공한 백소영 교수는 사회 시스템에 관심이 크다. “제도라는 것을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로 볼 때, 현재 합의 시스템에서 실패자가 너무 많다면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게 당연하죠. 현재의 시스템은 아니에요. 극소수만 성공하잖아요. 그리고 알고 보면 그들도 인생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아요.” 학생들에게 멘토 역할을 해줄 때면, 학생들이 자신의 말을 정답으로 여기는 것 같아 어쩔 땐 큰 책임을 느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망가고 싶은 무거운 맘이 들 때도 많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이 고민하는 장면이 나와요. 한글을 반포하면 백성들이 정말 행복해질까, 더 큰 혼란을 만드는 건 아닐까? 하지만 한 영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진정성이 있다면. 인간은 유한하지만 옳다고 믿는 일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불안한 삶이었기에 하나님은 절대적 의지 대상이었죠 엘리트코스를 밟았고, 풍기는 이미지와 외모도 고생은 별로 해보지 않았을 듯한 그녀지만, 어린 날은 그리 유복하지만 않았다. 작은 교회 목회자의 큰 딸로 태어나, 유학가기 전까지 교회는 그녀의 모든 삶의 공간이었다. “반주부터 시작해서 교회 일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다 해냈어요.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해 밥 굶은 적이 많아요. 항상 불안한 삶이었기에 하나님은 절대적 의지 대상이었죠.” 목회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회에서 받은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요즈음은 이화여대에서 기독교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비기독교인들과 소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 했다. “학생들에게 복음서는 너무 낯선 텍스트더라구요.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예수를 만난 31명의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의 글을 하나씩 써서 현대적 언어로 소통을 시도해봤어요. 
반응이 아주 좋더라구요.”
이렇게 모인 글들이 책으로 나왔다(<인터뷰 on 예수>, 대한기독교서
회). 주변에서는 교수가 학구적인 글을 더 써야하지 않냐는 시각도 있지만, 백교수 본인은 좀 더 다양한 일반대중과 소통을 시도하려고 한다.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학 분야 연구지원 프로젝트인 ‘인문한국지원사업HK(Humanities Korea)’ 에서 연구하고 있는 백교수는 30명 이상의 연구자 중 유일한 신학자이다. 혼종성(hibridity)의 시대에 그녀가 시도하고 있는 대중과 소통, 신학의 대중화 작업들은 더욱 의미가 있는 듯하다.
백소영 교수와 짧은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화여대의 지하 캠퍼스이자 건축예술품인 ECC (Ehwa Campus Complex)를 멀리 바라보니 그곳에 오르내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길러내는 인재의 산실인 대학. 그곳에서 대중의 언어로 소통을 시도하며 멘토의 역할을 유쾌하게 해내는 백소영 교수! 경계를 넘어 탈 경계인이 필요한 시대다. 이 땅에서 여러 탈 경계인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유쾌하게 그들과 연대하는 그녀. 자신 또한 멋지게 탈경계인으로서 달콤 쌉싸름하게 살아가는 그녀! 그녀를 통해 대한민국‘ 잉여’들은 오늘도 혁명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