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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3 05-06 이 부부가 사는 법

이 부부가 사는 법 5│함께 살자는 그 약속










함께 살자는 말과 온 세계를 담은 나무를 꼭 껴안은 두 사람의 모습이 동화처럼 고운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결혼식이 궁금해졌습니다. 웨딩 촬영은 또 어땠는지 아세요? 함께 살자 농성장 앞에서 둘만 아닌 여러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고는 웨딩 사진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결혼식장은 레스토랑. 예식 후에는 마침 같은 날 열리는 강정 후원 주점에서 피로연을 겸해 모일 예정이라는데, 이 결혼식이 어찌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학교 선배요, 제가 하는 일이 고되어 지쳐 있을 때에 일하는 곳까지 찾아와서는 위로의 국밥을 선물한 오빠의 결혼식인 걸요. 들뜬 마음으로 찾은 그 결혼식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쉽게 잊지 못합니다. 세상에, 두 사람이 주인공인 것이 당연해서 뭘 해도 용서가 되는 그날, 이 부부는 ‘강정’을 이야기하며 울었습니다.원유진 · 사진 제공 안바라, 조익상



그러니까 대체로, 보통의 연애
식장엔 강정에 관련이 깊은 사람이 꽤 많이 보였지요. 실은 저도 오해했었어요. 그러니까 두 사람, 익상 오빠와 바라 언니는 ‘강정’에서 만났거나 그와 관련 있는 모임에서 만났을 것이라는 짐작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그냥 소개팅이었더라고요. 
특별한 건 없었다고 해요. 약속을 잡으려고 시작한 통화가 약간 길어졌고, 통화하고 나서 느낌이 좋은 정도였달까요? 크리스마스이브에 중국집에서 만나 탕수육과 우육탕을 먹은 것이 특별하진 않잖아요. 아, 그건 있어요! 음식을 조금 남긴 언니에게 오빠가 그랬대요. 먹을 걸 남기면 천국 가서 다 비벼먹어야 한다는 뭐 그런 얘기들. 그런 얘기를 했는데도, 언니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괜찮았어요. 눈이 이렇게 처져서, 사람이 얘기도 진지하게 하고 학생인데 요리도 사주고…”라고 생각했다니 그건 좀 신기합니다. 하긴, 인연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남들은 별거 아니라고 넘길 것도 서로에겐 열쇠가 되는 것들이요. 


아마도 시작은 청혼이 아닐까요?

“대학원생이라 밤낮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때도 밤새 했는데도 공부가 잘 안 풀리던, 그런 새벽이었을 거예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혼자 있는 게 힘들고 외롭다는 느낌에 이 사람이라는 따뜻한 존재가 떠오르니, 말해야겠더라고요. 밤새고 아침에 갑작스럽게.” 출근 준비로 바쁜 언니 집에 찾아가 붙잡고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언니는요.어쩔 줄 몰라 했던가? 생각 좀 해봐야겠다고 했어요.” 
얼마 후에 언니가 다시 ‘우리가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고백했대요. 오빠의 청혼이 계속 남아서, “나도 결혼할 생각이 있는 건가?” 고민하다가 알았대요.존경의 마음이 드는 사람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서는 별로 존경할 게 없는데, 이 분이 생각하는 거나 방향성 등이 되게 멋있다, 이렇게 사는 것도 참 멋있구나. 그런 생각?”
그때 오빠는요.어, 지금 당신 나한테 청혼한 거예요? 반지는 왜 안 줘요?”라고 장난스레 묻고는 신 나서 다음날 교회 가서 자랑했대요. 나는 ‘청혼 받는 남자’라고 내 아내가 되실 분은 이렇게 멋있는 여자라고요. 그리고 덧붙였어요. “존경받는다는 느낌도 좋았어요. 이해받는다는 느낌. 내가 지금까지 가치 있다고 믿어 오고 추구해 왔던 것들을 저랑은 많이 다른 맥락에서 자라온 사람에게 이야기했는데, 이 분이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걸 보니까 굉장히 따뜻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천생연분이 아닌가 생각도 하고요.”
이렇게 서로 확신을 쌓아가던 때, 쐐기를 박는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강정’이에요. ‘제주’와 ‘여행’을 좋아했지만 강정마을은 몰랐던 언니와 강정에 관심을 두고는 있었지만 비행기표 살 돈이 없던 오빠가 언니의 제안과 노잣돈으로 ‘강정’을 찾습니다. 그런데 출발하는 날 새벽에 발파 소식이 들린 겁니다. 도착하자마자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연좌하며 경찰과 대치했습니다. 언니는 그때 처음으로 현장을 경험했대요. “타자의 아픔을 발견하는 것. 현장에 가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거기 가면, 현장에 있으면 그렇게 안 바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날 각성을 한 거죠.” 오빠는 그곳에서 언니를 다시 보게 됩니다. ‘용감하고 용감한, 두려워 마땅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할 말 다하는’ 언니의 모습을 본 겁니다.



다 함께, 같이 살자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 옆에 있던 ‘함께 살자’ 농성장은, 쌍차와 용산 그리고 강정, 이 셋이 연대를 활짝 펼치는 곳이었어요. 세 단체의 머리글자를 딴 ‘스카이 액트’ 운동과 농성장은 당사자가 아니라 해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피해가기 어려운 공간이었고, 당연히 언니와 오빠도 자주 그곳을 찾았습니다.
“예전부터 함께 살자는 말이 좋았는데, 이 말을 프러포즈할 때도 쓰잖아요. 그런데 결혼과 공생이란 의미의 함께 살자가 동떨어진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 결혼하면서 이것들을 합쳐보자.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사는 것을 공부하고 실천해보는 더 큰 함께를 떠올렸지요.” 언니는 오빠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어차피 돈 들어갈 거 이왕이면 ‘강정’ 사람과 함께 하자며 청첩장 그림과 웨딩 촬영 등을 ‘강정 친구들’에게 부탁했대요. 구럼비 머그컵 그림을 그렸던 ‘여경’ 님이 청첩장 그림을 기쁘게 그려줬고, 프로 사진가로 활동하시는 분도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살자 농성장’과 결혼반지로 낙점된 물소뼈반지를 판매한 ‘사직동 그 가게’ 등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은 그 농성장이 불타 없어져 사진으로만 남았지요. 그렇게라도 사진을 찍어놓아서 다행이라는 언니의 말에 제가 다 울컥했습니다. 
크게 예식장을 빌릴 생각도 없었지만, 밭은 일정에 빈 예식장 구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 찾은 것이 하우스 웨딩이었다지요. 화려한 예식장과 예쁜 드레스, 화려한 예물 등은 없었어요. 고운 드레스 입혀 보내고 싶었던 부모님께선 처음에 반대하셨지만, 언니의 설득에 허락하셨대요. 
인상적이었던 결혼식의 마지막 ‘강정 이야기’는 온전히 즉흥이었대요. 처음엔 강정 후원 주점 오시란 얘기 하려고 말을 꺼냈을 뿐인데, 눈물이 나고 목이 메고 말을 못하겠는 거야. 그래서 부탁했더니, 나는 찡하면 말을 못하겠는데, 울면서 말을 잘하는 거예요. 할 말 다해.” 그렇게 오빠에 이어 언니가 강정을 말하다가 두 분 다 울면서 결혼식을 마쳤어요. 



사는 것을 함께하기
추구하는 가치를 좋아하는 만화로 풀어내는 일을 할 수 있어 기쁘게 만화 전문 출판사에 입사한 오빠와 노들 장애인 야학에서 가르치며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공부 중인 언니는 여느 신혼부부처럼 서로 의지하고,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기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함께 사는 것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오빠는 당부했습니다.결혼이 할 만한 것이라는 건 맞아요. 하지만 꼭 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리스도인이라면 결혼을 의무나 축복으로만 말할 것이 아니라 비혼자, 고아와 과부 등 가족과 연결된 삶의 다른 형태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결혼해서 행복해’만 아니라 이를테면, 결혼하고 싶어도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요. 우리는 결혼 문화를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어서 결혼한 것뿐이에요. 결혼했기 때문에 행복하거나 못해서 불행한 건 아닌 거죠.” 께 살자’며 시작한 결혼이니 ‘사는 것을 함께 하고 있다’는 이 부부. 그 ‘거룩한 부담’에 저도 함께 사는 사람으로 동행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