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연재 종료

예술이 공장에 놀러왔다 ㅣ 문래예술공단


아름다움이란, 저 멀리 예술작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하루하루의 삶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을 알아봐주는 눈이 있다면, 일상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건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쇠락해가는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어느 날부터인가 이곳을 알아봐주는 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심 속 철재 거리에 불과했던 곳에 작가들이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태어나게 된 ‘문래예술공단’. 공단과 예술은 어울리지 않은 단어이지만 ‘삶’을 더하니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의미 없는 것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버려진 터 위에서 예술을 연출하는 문래동의 예술가들. 삶의 아름다움을 창조해가는 그들을 만나보자. 글ㆍ사진 김승환

예술, 일상의 아름다움에 이름을 붙이는 것

문래예술공단은 ‘도시안의 섬’처럼 느껴진다. 아파트와 고층 건물들 사이에 옹기종이 모인 철공소들은 도시안의 두 얼굴로 자리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낯선 풍경이다. 7,80년대에 화려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대다수의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고 지금은 쓸쓸히 그 흔적들만 남아 있다. 간간히 들여오는 철공소들의 요란한 쇳소리가 재개발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는 듯, 힘없이 들려온다.
새한철강 3층에 자리 잡은 project space LAB 39는 예술인들의 아지트다. 커피를 나누며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여러 가지 강의가 진행된다 (그날도 공정무역커피에 관한 커피스토리텔러 김이준수씨의 발제가 있었다). 안주인 김 강(일명 김마담)은 미학연구가이다. “예술은 틀에 박힌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모든 것이에요. 이곳에 온지 4년이 되었는데 아침마다 들여오는 철공소의 쇳소리는 어느 음악가가 들려주지 못하는 삶의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어요.” 예술과 도시사회의 문제를 연구하는 그녀에게 아름다움은 삶의 모든 것이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들이 예술의 소재가 되고 작품이 된다.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인위적으로 만든다면 무례한 것이에요. 예술이 하는 역할은 일상의 삶,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거든요.”



철과 예술의 공존

오랫동안 방치된 공장들로 예술가들이 점점 몰려왔다. Squat(스쿠앗: 황폐한 도시지역을 점거하는 행위)의 일종이라 할 수 있는데 무단점거가 아니라 도시의 주거권 문제와 공공성의 회복을 위한 예술인들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4-5년 전부터 하나 둘 씩 이곳에 자리를 잡더니 지금은 300여 팀이 넘게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연극, 무용, 퓨전국악, 퍼포먼스, 설치, 페인터, 조각가, 사진가 등 전 장르의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모여 하나의 예술동네가 자생적으로 탄생되었다. 문래동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네 식당 ‘복실이네’는 간판대신 국화꽃 가득히 그려진 벽화로 바뀌었고 세평 남짓한 구멍가게 ‘충남상회’는 동네 꼬마들의 얼굴들이 천진난만하게 그려져 있다. 공장 옥상의 옥탑방은 울긋불긋 페인트칠이 돼있고 철공소의 대문마다 앙증맞은 동물 캐릭터들이 웃음을 준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공업소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2층 사무실 한켠을 빌려 혼자 뜯어내고 페인트를 칠해가며 작업실을 만들었을 때도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했죠. 그런데 이제는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이대면 포즈도 취해주고, 작업실을 떠나 있을 때는 건물도 지켜주시죠.” 건축도시문화 창작적 행위 연구소의 임진호 작가는 홍대에서 사진 작품 활동을 해오다 3년 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홍대 주변이 유흥가로 변신하면서 월세가 비싸지자 예술인들이 하나 둘씩 떠나갔다. 일부는 가까운 동교동, 연남동으로 다른 일부는 문래동으로 모였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이곳에서는 무한한 상상이 가능합니다. 그런 영감들이 따라 밤새 작업하고 나면 너무나 행복해요.”


예술, 소유하려 하지 말라
지난달 대학로 소극장에서 <리어카, 뒤집어지다>의 공연을 마친 극단 ‘몸꼴’도 문래동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7년 전 연신내에 연습실을 두고 활동하다가 예술가들이 많은 이곳으로 옮겼다. “신체극으로 시대를 풍자하려는 우리에게 문래동보다 더 좋은 곳은 없습니다. 일반연극과 다른 모습에 차가운 시선들을 많이 받았어요. 밀려다니는 삶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더 이상 갈곳이 없더군요.” 연습실을 방문했을 때 철과 함께 살아온 이들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배우들의 몸짓에 가슴이 뭉클했다. 배우들이 세트 제작부터, 소품, 의상, 음악까지 담당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세트 제작은 주변의 철공소들을 한 바퀴 돌고나면 완성된다며 좋아한다. “이곳은 저희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어쩌면 예술인들의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하는 순간 윤종연 대표의 얼굴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서울시의 재개발 소식이 알려졌을 때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었다. 영등포 구청에서는 이곳을 문화예술단지로 조성하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재개발 지역으로 발표하면서 공연장 하나를 던져주었다.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문래예술공단인데 건물 하나에 몽땅 몰아넣고 상업적으로 재생산하려 하니 예술가들은 다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고민한다.

밤이 되면 다시 축제가 열렸다. 요란한 음악소리와 극단의 연극. 이상야릇한 무용단의 몸짓.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 한바탕 축제가 끝나고 아침이 찾아오면 골목길은 다시 기계와 망치소리로 가득 찬다. 이 소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오늘도 문래동은 두 얼굴을 하고 낯선 이들을 반기고 있다. 철과 사람의 공존. 그리고 예술과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문래동으로 떠나보자.



문래예술공단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3가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 직진 500m 문래사거리)
cafe.naver.com/mullaeartvill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