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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네가 정녕 종이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

만화라는 것은 모름지기, 여유로운 오후에 푹신한 요 한 장을 깔고 그 위에서 뒹굴며 봐야 한다. 장시간 엎드려있어도 결리지 않기 위한 쿠션과 입을 즐겁게 해줄 간식거리가 있으면 금상첨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시리즈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완비하는 일이다. 잘 못하면 여유롭게 쉬고 싶어 시작한 일이 한낮의 평화를 무참히 깨트릴 수도 있다. 발간되지도 않은 결말을 추적하느라…. 생각만으로도 평화로운 이 오후의 한때를 온라인 만화는 절대로 만끽하게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직 석유냄새 나는 갱지를 손가락 끝으로 넘길 때의 감촉이 마지막 장을 넘긴 후의 아쉬움과 감동에 걸맞다고 여겼다. 글 정미희

업데이트를 향한 즐거운 기다림 - 인터넷 연재
그런 나도 모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되는 원수연의 <매리는 외박중>을 보기 위해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을 기다린다. 온라인 연재의 묘미는 바로 이 기다림이다. 애피타이저만 먹고 식사를 끝낸 거 마냥 입맛을 다시며,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 연재를 기다리게 된다. 그 기다림은 종종 연재 시간을 지키지 않는 작가에 대한 악플로 표현된다. 마치 빚을 독촉하는 빚쟁이처럼 원고를 독촉하며, 연재 시간을 지키라고 악담에 가까운 불평을 하는 댓글을 보고 있자면, 이글을 기다리는 것이 나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악담을 할 만큼 애타게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편이 작가의 심신에도 좋으리라). 독자들은 연재를 기다리며 다음호의 줄거리를 추적 추측하고,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만들기 위해 작가를 회유하기도 한다.
비단 만화뿐 아니라 유명 작가들도 인터넷 소설 연재를 본격화하고 있다. 2007년 박범신 작가의 <촐라체>로 시작된 인터넷 소설연재는 매해 증가해 2010년 1월 기준으로 연재 중이거나 연재가 끝난 장편소설만도 20여 편이다. 각종 포털사이트와 온라인 서점에는 연재 코너가 신설됐고, 전문 연재 사이트도 등장했다. 작년, 한 인터넷 서점을 통해 소설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연재한 소설가 신경숙 씨는 처음엔 악플을 걱정했으나 막상 연재가 시작되자 오히려 독자들이 단 댓글에 위로와 에너지를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서로 소통하는 것을 보며, 일면식도 없는 독자들에 대한 애정이 피어났다고. 그렇게 독자와 생생한 호흡을 하다보니, 한 번은 써둔 원고로 독자들이 받을 상처가 걱정돼 내용을 순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철저히 작가 홀로 다수의 익명성을 지닌 독자에게 풀어놓았던 창작의 영역에 새로운 소통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인터넷 연재가 끝난 책들은 여전히 잇따라 종이책으로 출간된다.
독자들은 여전히 촉감에 대한 욕구와 소장의 욕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출처 : 인터파크

내 손 안에 네버엔딩 스토리 - 전자책
그 욕구가 비단 종이책을 통해서만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e-book로 불리는 전자책은 책 소장의 다른 형태다. 오래 전부터 주목할 만한 IT 산업분야로 손꼽혔던 전자책은 일반 서적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독서 중 동영상을 보거나 배경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휴대용 단말기에 저장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원하는 책을 찾아볼 수 있는 등 장점이 많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인쇄나 제본 등의 제작비와 유통비를 절약할 수 있고, 재고 부담이 적으며 책 내용을 업데이트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렇게 10년 간 때를 기다려오고 있던 전자책이 만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자책 단말기인 아마존 킨들과 애플 아이패드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인터넷 서점업체인‘ 아마존닷컴’에서 내놓은 킨들은 전자책 단말기의 선두주자다. 킨들에서 읽을 전자책은 아마존닷컴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데 지난해 크리스마스 당일에 팔린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많았다고 한다. PC를 거쳐 전자책을 다운로드 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다운로드 받는 방식으로, 이동통신망이 가능한 곳이면 어디서나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에 맞서는 소니의 리더는 공공도서관 정보를 검색해 인접한 도서관 책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 후발주자지만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애플의 아이패드는 기존 전자책의 한계였던 흑백 일색의 화면을 뛰어넘어 총천연색으로 책을 읽을 수 있고, 콘텐츠 구입처에도 제한이 없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아이리버, LG전자가 단말기를 출시했다. 하지만 전자책도 결국 단말기의 기능 문제라기보다 스마트폰의 어플리케이션처럼 어떻게 콘텐츠를 공급할 것인가의 문제로 성패가 좌우된다고 한다.

이렇게 디지털적인 책을 논하고 있는 순간에도 여전히 손 글을 고집하는 작가들이 있다. 소설가 박범신 씨와 김훈 씨는 아직까지 육필 원고를 고수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들이 인터넷 연재를 통해 출간한 <촐라체>와 <공무도하> 역시 원고지에 쓴 글을 담당 편집자가 블로그에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한 소설가는 중국에서 직접 주문한 세로 원고지에만 원고를 작성한다고도 하고, 육필로 원고를 작성한 후 노트북으로 이중작업을 해 출판사로 송고하는 작가도 있다고 한다. 황석영 작가는 한 디지털 포럼에서“ 디지털 시대이지만 아날로그인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디지털은 곡괭이나 삽과 같은 도구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도구에 빠져서 자기의 사람이나 삶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렇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경계는 단순한 형태의 차이가 아니라 그것이 줄 수 있는 감성의 문제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손이 스쳐가 때가 타고, 가끔씩 김치 국물이나 자장 국물이 흔적이 남아 있는, 대여 만화책에 대한 나의 감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