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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신뢰를 받을 것이냐, 눈치를 볼 것이냐.

드라마 <파스타> vs 다큐멘터리 영화 <맨 온 와이어>

라스페라 사장 김산 왈 ,
“대중의 입맛에 맞출 것인가? 대중의 입맛을 믿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

이태리 레스토랑 ‘라스페라’의 요리장 최현욱은 피클을 주방에서 퇴출시켰다. 이건 자장면 집에서 단무지를 없애는 짓이며, 설렁탕을 깍두기 없이 먹으라는 말과 똑같은 얘기다. 아무리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쉐프라지만 사방에서 반발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똥고집 쉐프는 손님들에게 설탕 범벅으로 만든 피클의 제조 과정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냐고 역공을 펼친다. 더 나아가 함량 미달 메뉴도 없애 버리겠다고 통보했다. 수입이 짭짤했는데 말이다. 고액 연봉 받는 주제에 무책임한것 아니냐고 주위에서 수군댄다. 이태리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요리사가 한둘도 아니고, 골치 아픈 인간 확 잘라 버리라고 부추기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누구는 말한다. 내가 돈이 많아서 자아실현 정도의 만족을 위해 유유자적 식당을 운영하는 거라고… 모르는 소리. 부자일수록 한 푼을 아끼는 거다. 나는 동전 한 닢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난 예전에 쪽박을 찼을 거다. 또 내가 성자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손해와 상관없이 사람중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데나….
솔직히 말하면 난, 최쉐프가 별로다. 성질도 지랄 맞고, 사장 알기를 우습게 알고, 늘 제멋대로다. 그와 일 끝나고 차 한 잔해 본적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다. 성질 더러운 주방의 제왕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를 인정한다. 맛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정직하니까….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내 눈치를 슬슬 봤다. 종잡을 수 없는 대중의 취향을 살핀답시고 하얀 식탁보만 신경 썼다. 하지만 그 시간에 최쉐프는 가스불, 토마토소스 등과 씨름했다. 손님들이 앉아 있는 홀 쪽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런 그가 대중을 무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확실히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는 듯하다. 아무리 사람들이 자주 찾는 메뉴라도 질이 떨어지면 이렇게 외친다. “Fire!” 심지어 월급을 주는 나도 안중에 없다. 돈을 주는 사람은 사장이 아니라 손님이라고 믿고 있음에도 그들의 입맛에 아부하지 않는다. ‘내 음식을 제발 사랑해 주세요.’ 구걸도 하지 않는다.
나는 요리를 잘 모르기에 그냥 사람들이 내 레스토랑에 와서 기분 좋게 밥 한 끼를 먹고 가고, 종업원들끼리 즐겁게 일했으면 좋겠다. 나처럼 자기 돈 투자해서 먹거리를 파는 사장들은 말한다. 대중들이 정통 파스타를 먹을 정도로 그렇게 수준 높지 않다고. 차라리 인테리어를 좀 더 고급스럽게 바꾸고, 주차장을 더 넓게 확보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만고불변의 진리라도 알고 있듯이 어깨를 다독이며 속삭인다. “인간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야.”
그럼에도 나는 내 처지를 더 잘 아는 동종업계의 사업가 편보다 독불장군 주방장이 서 있는 곳으로 자리를 편다. 사랑과 믿음이 그렇게 다른 지점에 위치해 있었나? 왠지 그런 구분을 하는 이들은 믿음과 숭배를 혼동하는 것 같다. 믿음은 관계이고 관계는 사랑을 낳는 것 아닌가? 역으로 생각해도 같은 결과고….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건, 사람을 그렇게 무시하면서 자기 마당에 사람들이 그득하기를 원하는 그들의 태도다. 철마다 더 많은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각종 이벤트로 종업원들을 닦달하면서. 글쎄, 지금은 돈이 벌려도 장담하건대 곧 그곳에서 포크질하는 사람들이 뚝 끊길 거다. 내 식당의 주방에 최쉐프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결국, 감동은 맛의 본질이 주는 것이니까…. 고색창연한 세익스피어비극, 그 두꺼운 성경책이 아직도 서점에 깔려있는 걸 보라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점에서 최쉐프와 나는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셈이다. 난 우리의 항해에 자신이 있단 말이지.

줄타기의 달인 필리페페티 왈 ,
“난, 대중 덕분에 범법자에서 예술가가 됐다고.”

한때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세계무역센터가 있었다. 난, 그 쌍둥이 빌딩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그곳에서 줄타기를 꿈꿨다. 당연히 몇 년 후, 그곳에 숨어들어가 구름 위를 걸었다. 물론, 불법이다. 경찰들은 총을 들이대고 내가 건물 폭파범이나 되는 양 체포를 했다. 권력은 나에게 범죄자 딱지를 붙였고, 언론은 내가 인기를 등에 업고 돈 몇 푼 벌려는 광대 정도로 취급했다. 난 그래서 그들을 향해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요, 나는 만
용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작가라니까요. 제발, 이걸 일자리 찾는 것하고 연관짓지 말아요. 뭐가 부족해서 이걸 하는 게 아니라고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도시가 깨어나는 모습을 그렇게 높이서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구름과 만나고 하늘을 놀래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가 하는 것뿐이다(내가 쓴 책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278쪽에 있는 말이야 놀라지 말어). 그들은 아무런 목적과 이유 없이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나를 정신병자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곡예사로 분류해 놓았다. 그렇게 거리가 온통 줄타기 놀이터로 가득 찬 도시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추방될 처지에 놓인 것이지. 그때 판사가 창의적인 제안을 하더군. 시시한 경범죄를 취하하는 대신 공원에서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열라는 것이다. 내가 하늘 위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눈을 시퍼렇게 뜨고 본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시선 덕분에 나는 범죄자 신분에서 풀려나와 거리의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확실히 대중들은 나를 좋아했다. 아무런 의도 없이 벌이는 거리 곡예를 즐겼고, 열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똥파리들 같은 것들이 몰려오는 것이 아니겠어. 텔레비전 광고 출연, 말도 안 되는 장소에서 줄을 타줄 것을 요구했다. 돈다발을 펄럭이며 당당하게 말하는 게 아닌가. 대중과 관계를 맺는 대신, 그들의 눈치를 보며 돈이나 받아 챙기라는 허튼 수작. “나는 그 제안 대부분을 집어던질 것이다.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나를 백만장자로 바꿔놓지는 못할 것이다”(내가 쓴 책 285쪽).
인기를 끈다는 것, 세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사방에서 나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하는 새로운 도시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 후 오래된 성당의 홍보대사로 이런저런 공연도 하고, 그런 일들을 하면서 먹고 살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과분하게도 예술가라는 작위를 선사해 주었다. 만약 그때 내가 부자가 되려고 햄버거 인형이나 뒤집어쓰고 재주를 부렸다면, 나 때문에 빌어먹을 정크푸드가 많이 팔리기는 했겠지만 대중들은 나를 잊었을 거다. 내가 먼저 그들을 배신한 셈이니까….
지금, 줄을 타며 놀았던 건물은 진짜 범죄로 인해서 잿더미가 되었다. 만약, 쌍둥이 빌딩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해서 어마어마한 돈벌이를 하는 곳이 아니었다면, 백만장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먹고 살만큼만 적당히 벌었다면 비행기에 받혀서 장렬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을 거다. 그곳은 이미 백만장자이거나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만 들락거리는 곳이다. 대중을 이용만 하고, 그들과 관계 맺지 않으려는 자 화 있을진저!

김창호|입가에는 웃음을 터트리며 기쁨을 누리고, 눈가에는 눈물을 담고 이웃에 아픔에 공감하며 살고 싶은 사람. 본명보다는‘ 짱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주중에는 ‘대학로 동숭’에서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고, 쉬는 날에는‘ 광나루 상담나라’에서 놀듯이 공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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