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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1 03-04 기독교 문화, 그 안과 밖을 가꾸다

속사람을 채우다 - 나눔 ㅣ 멀리 있지 않아, 바로 네가 가진 거야

“주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때 햄릿의 대사를 패러디하게 만든 건, 바로바로 ‘500원’이었어. ‘500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구구콘과 함께 죄책감도 맛보아야 했을 테니까. 요즘엔 1,500원이나 하는 구구콘이 당시엔 “그래서~ 500원입니다!”라고 광고하던 시절이었으니, 사실 지금으로 치면 자그마치 ‘1,500원’을 두고서 했던 고민이었다고! 글 이호은

주느냐 마느냐
그게 언제였냐 하면, 지하철을 타기만 하면, 일부러 상해 입은 신체부위를 드러내놓은 채 바구니를 내미는 분을 만날 때였어. 선뜻 돈을 건네려니 뭔가 아까웠고, 그렇다고 아예 나 몰라라 외면하는것도 쉽지 않더라. 그럴 때마다 500원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한차례 갈등을 겪어야 했지. 적어도 나 하나라도, 최소한 그 정도라도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내가 지금 ‘500원’을 이 사람에게 준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 그 둘이 격돌했지.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도덕적 개인’의 동정심이나‘ 영웅적 개인’의 선행만으로는 ‘비도덕적 사회’의 문제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일 거야. 500원을 적선하고, 500만원을 기부한다고 해서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회를 해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만 사회 전체가 조금씩 ‘도덕적 사회’로 이행하려는 노력을 기울여나갈 때 가능하지 않을까? 이렇게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부’라는 단어 대신에 ‘나눔’이라는 단어가 더욱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 같아. 이제는 ‘나눔 문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도 등장해서, ‘돈’뿐만 아니라 ‘공간’도 나누고, ‘재능’도 나누고, ‘지식’도 나누지. 그래, 지식도 나눠!

TED 맛보기
‘지식 나눔’의 선봉장인 TED(ted.com)를 처음 접했던 건 페이스북에서 만난 친구의 담벼락에서였어. 그 친구는 뉴욕대학교의 클레이 서키(Clay Shirky)교수의 ‘인지 잉여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강연을 링크해두었는데, 클릭하니 TED 누리집으로 곧바로 연결되었고 강연 동영상도 재생되었어. 영어 강의였지만, 다행히 왼쪽 화면 아래에 자막이 제공되더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강연 내용을 77개의 언어로 번역하고 자막을 제작하는 자원봉사자들만 해도 3,000명이 넘는대. 
우리나라에서도 TEDxSeoultedxseoul.com가 있어서, 한국에서 외국으로 좋은 강연들을 나누고 있지. TED는 “좋은 아이디어를 널리 퍼뜨리자”는 모토로 활동하는 국제적인 비영리 운동이자 세계 최고의 컨퍼런스야. TED라는 이름은 기술(Technology)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인데, 이 세 가지 분야의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15분 내외로 강연을 진행하고, 누리집에서 모든 강연을 무료로 보여주고, 동영상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공유하고 있어. TED 누리집에서 MS의 회장이었던 빌 게이츠나 <블링크>와 <아웃라이어>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 동물학자 제인 구달 등 세계 최고 지식인의 강연과 예술인의 공연 수천 개를 마음껏 보고 들을 수 있지.

TED 경험하기
내가 들은 강연에서 서키 교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놀라운 변화를 ‘인지 잉여(cognitive surplus)’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어. 전 세계적으로 연간 1조 시간 이상의 여유 시간을 소셜 미디어라는 기술과 접목하면서 인지 잉여로 가득한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가 형성되는 거지. 그 속에서 재난과 고통의 현장에서 소셜 미디어로 소식을 실시간으로 취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우
샤히디(ushahidi.com)와 같은 대단한 ‘지식 나눔 프로젝트’도 나올 수 있었다는 거야. 특이한 사실은 굳이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저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와 페 이스북을 하고,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는 것이 바로 더 나은 세상, 서로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부분이 된다는 점이 었어. 놀랍지 않아? 새들이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고, 벌레를 잡아먹는 것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활동의 일부이 듯, 남아도는 시간에 온라인 활동을 하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참여로 승화되는 셈이야.
와, 나는 이런 사실을 처음 알았어. 아주 사소해 보이는 참여로 인해서, 과거에는 500원이 아니라 50,000원으로도 할 수 없었던, 근본적 나눔, 즉 ‘사회적 협력’과 ‘연대의 문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 내가 사는 세상이 이런 곳이었구나! 몰랐던 사실을 깨닫는 순간, 혁명적 아이디어를 접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굉장히 흥분했지. 배움의 희열, 아마 그런 것이었을 거야. 지식과 영감, 감동을 곳곳에 퍼뜨려는 TED의 이상에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겠더라. TED를 통해 마음이 훈훈해지고, 머리도 똑똑해지는 것 같아.

좋은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만으로 이렇게 충만하다니. 좋았어, 이제부터 나도 ‘지식 나눔’에 적극 참여해야지. 올해 나의 모토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자!”이고, 실천 과제는 “TED번역자 되기” 야. 곧, 내가 번역한 자막이 TED의 영상에 걸릴지도 몰라!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