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PECIAL/2011 03-04 기독교 문화, 그 안과 밖을 가꾸다

속사람을 채우다 - 영성 l 삶이 새롭게 움트는 샬롬의 기적

나에게 식탁이란
최근 결혼해서 신혼살림을 차린 나. 신혼살림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자취에 가까운 모습이다. 생존 요리(냉장고 속 남는 재료 다 끌어 모아서 먹고 살려고 만드는 요리), 쌓이기를 기다렸다가 해치우는 빨래, 매일 쓸고 닦아도 쌓이는 집 먼지, 만들고 보면 항상 비슷비슷한 반찬들(도대체 요리책은 왜 산 거냐고요~), 그리고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 ‘살림, 그까이 꺼 대충 하면 돼지, 더 중요한 것은 밖에 있잖아~’ 그런데, 이런 생각이 맞는 걸까? 이건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살림에 대한 고민은 시작되었다. ‘자취하던 시절과 달라진 것은 뭘까?’ ‘나는 언제쯤 우리 어머님들처럼 살림다운 살림을 할 수 있을까?’ 살림,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은 녹녹치 않다. 이런 살림을 ‘영성’으로 바라본 분이 계셨다. 요리연구가 문성희 선생님. 지인의 소개로 <평화가 깃든 밥상>이라는 책을 접하고 첫 장을 펼쳤을 때, 내 마음을 치는 한 문장을 발견했다. ‘가장 훌륭한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과 색깔과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고 먹는 것이고, 그런 음식을 찾기 위해서는 마트가 아니라 밭으로 가면 된다는 사실과 조리 과정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리학원을 그만두었다.’ 요리연구가가 요리학원을 그만두고 만드는 음식이 과연 뭘까? 책의 표지에 문성희 선생님의 요리를 맛본 51세의 이루나 수녀의 글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음식을 한 입 먹고 나서의 첫 느낌은 “아, 눈물 날 정도로 기가 막히게 맛있다!”였다. 마치 수돗물을 먹다가 깊고 깊은 우물에서 끌어올린 청정한 물을 먹는 그런 경건한 느낌이다.’ 우물물 같은 요리, 눈물 날 정도로 맛있는 요리. 이 수녀님은 문성희 선생님의 음식을 먹으며 경건함을 느꼈다니. ‘나도 맛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더 강렬해진다.

만들며 즐거운 요리를 꿈꾸다
문성희 선생님은 요즘 ‘살리는 밥상 요리 강습’을 하고 계시단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전화로 문의해서 요리 수업 하루 참관권(?)을 얻었다. ‘후훗, 나도 살림의 영성을 배울 수 있다규~^^ ’ 일산 ‘평화가 깃든 밥상’ 교실에 찾아가니 작고 아늑한 공간에 이미 5~6명의 강습생이 와 있다. 그리고 책 사진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 하얀 옷을 차려입은 편안한 모습의 문성희 선생님이 계셨다. 넓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인 강습생 사이에 나도 다소곳이 앉아 사람들과 문성희 선생님을 지켜보았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시며 요리할 준비를 하고 있는 문성희 선생님과 이것저것 챙기느라 바쁘게 다니시는 도우미 언니, 그리고 밥이 다 되어 압력밥솥이 칙칙거리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 시각과 청각과 후각이 모두 채워지는 요리강습에 마음이 설렌다.
가만가만 정갈하게 움직이시는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슨 의식 같다. 수강생들에게 나눠주시는 소소한 이야기들에 왠지 마음도 편안해진다. 뭐랄까, 여유가 있달까? 항상 서두르며, 먹을 수 있게 조리된 한 그릇의 요리가 목표이고, 그 나머지 과정은 불필요한 것처럼 빨리 해치우려는 나와는 다른 어떤 여유, 요리의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즐기는 듯한 여유가 느껴졌다. 사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요리를 참 성의 없이 했다.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대충, 아무거나 막 요리해서 먹었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다. 남편을 먹이는 중요한 일이 생겼기에 좀 달라지려고 계량스푼, 계량컵도 사고, 요리책을 세 권이나 구입했다. 그 중에 하나가 <한 접시 요리>다. 빨리 만들어먹고 나가려고 산 것인데 그나마 결혼 한 달 만에 펴보지도 않게 되었다. 매일 할 수 있는 한 접시 요리에 냉동식품 데우고, 어머님이 주신 반찬 몇 개 꺼내 놓으면 그만이었던 나의 신혼 밥상차림(참 부끄럽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 집 식탁이, 우리 집 부엌이, 나의 살림 영성이 좀 달라질까?’ 그런 기대감이 스쳐간다.


먹으며 행복한 요리를 만나다
요리할 재료를 다듬는 것으로 요리를 시작한다. 재료는 모두 유기농이다. “채소는 각자마다 결이 있어, 결대로 썰어야 씹는 맛이 살아 있고, 고기는 결과 반대로 썰어야 부드럽게 씹힙니다.” 아~ 채소에도 결이 있구나. 나는 그냥 잡히는 데로 썰었는데…. 재료마다 써는 방법도 다르다. 감자는 얄팍하게 썰어 곱게 채치기, 사과는 큼직큼직 납작 썰기, 호박은 얇게 채썰기, 붉은 색 파프리카는 색깔이 강렬해 크게 썰면 다른 음식의 색감을 죽이고 촌스러워 보이므로 다지듯 썰기. 써는 방법에 대한 말도 어쩜 그렇게 다양한지. 요리도, 요리 용어도 마치 시 같다. 재료를 썰 때마다 선생님은 그 재료 본연의 맛을 느껴보도록 학생들에게 건네주셨다. ‘배추가 이런 맛이었나? 오늘은 왜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올까?’ 정신없이 구경하던 중에 벌써 두부스테이크와 볶음밥이 완성되었다. 선생님은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며 먼저 먹고 두 번째 요리를 하자고 하신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낯선 이들과 둘러앉은 식사시간, 왠지 너무 평화롭고 따스했다. 귀로 퍼지는 잔잔한 음악도 한 몫 했지만… 음식이 말이다, 뭐랄까. 입에서 퍼지는 야채의 향과 두부의 고소함이 내 몸을 위로해 주는 느낌이었다. 너무 향긋하고 눈물이 날 만큼 따뜻했다. 첫 번째 요리책‘ 평화가 깃든 밥상’의 북 리뷰를 쓴 수녀님의 감상이 그렇게 체험되었다. 2시간 남짓, 3가지 요리를 배우며, 먹으며, 배만 아닌 다른 것이 채워지는 듯 충만함을 느낀다.

몸의 평강, 살림의 살림
뒷정리하면서 선생님께 살림에 대해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살림은 살림이다”라고 하셨다. 살림은 ‘살리다와 샬롬의 합성어’라고 생각하신단다. 그래서 선생님의 요리는 ‘살림푸드’란다. 죽은 것도 새롭게 하고, 몸도 마음도 영혼도 살리는 것, 그것이 요리라는 말씀. 옳거니!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에, 무엇을 먹는가는 아주 중요해요. 영혼이 주체이지만 내가 먹은 것이 내 몸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래서 밥상이 변하면 신앙과 영성이 달라져요.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안에는 어떤 것이 들어오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인해 행복한지.” 내가 먹는 음식과 내가 차리던 식탁 중에 그런 마음이 있었던가를 돌아보게 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있나요? 그러면서 왜 몸은 함부로 대하시죠? 아무거나 입고, 아무거나 먹고. 왜 버려두고 방치하면서 영혼은 건강하게 하려고 하시죠? 일상을 두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이루려고 하지 마세요. 밖으로 나가서 뭔가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사상을 가지고 하는 모든 행동은 다 중요한 행동입니다. 너무 귀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직무유기를 하지 마십시오.” 아, 뭔가 꾸지람을 받는 기분. ‘왜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느냐.’ 선생님은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숨 쉬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란다. 숨을 쉬고 있는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그것을 숨 쉴 때마다 느껴보란다. 왠지 매일 쉬고 있던 그 숨이 참 신성하게 느껴진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며 떠오르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선생님께 배운 요리를 해 보자. 남편과 함께 그 풍요로움과 평화를 누려보자.’ 사실 남편은 밥을, 그야말로 빠르게 먹어치우는 은사^^가 있다. 나는 요리를 정신없이 해치우는 편이고^^; (부창부수?). 오늘은 바꿔보자.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래서 취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 바로 장을 봤다. 다른 채소들보다 더 비싼 유기농 채소를 사고, 유기농 두부를 사고, 우리 밀 국수를 샀다. 그리고 집에 와서 재료를 씻고, 다듬고, 써는 것부터 천천히 여유 있게 해보았다. 여유 있게 음식을 만드니 음식 만드는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놀이처럼 느껴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먹을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칼끝에도 정성이 들어간다. 시간을 들여 두부 스테이크, 채소볶음 두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남편도 오늘 배운 요리냐며, 꽤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래, 이 맛으로 요리를 하는 거다.

사실, 아직 살림의 영성이 나에겐 먼 느낌이다. 그렇지만 요리실습 이후 집에서 한 가지 실천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마음이 불안하거나 조급해질 때 조용히 숨을 쉬면서 나에게 말을 해 보는 것이다. ‘넌 정말 가치 있는 존재야. 넌 정말 소중해. 널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너보다 가치 있지 않아.’ 그러면 조금씩 마음에 안정감이 찾아온다. 기도실에서, 혹은 말씀을 통해서만 영성이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 손끝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삶의 영성, 살림의 영성이, 다시 말해서 하늘에 떠 있는 영성보다 땅에 붙어 있는 영성이 더 가치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영성을 추구한다면서 너무 허공을 치고, 무지개 같은 허깨비를 좇고 있지는 않은지, 내 몸을 채우는 음식도 그렇게 하찮게 대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영성의 파랑새를 먼데서 찾지 않고 삶의 자락인 우리 집 부엌에서부터 발견해 보아야 하겠다. 내 살림에서도 영성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김지혜·사진 송건용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한 접시 요리


1. 두부 스테이크와 볶음밥
재료 (2인 기준) : 두부 1/2모, 스테이크소스(조선간장 1큰술, 약초물 5큰술, 원당 2큰술, 식초 1/2큰술, 감자 전분 4큰술), 밥 2공기, 감자 1개, 사과 1/4쪽, 애호박 1/4, 붉은색 파프리카 1/4, 홍고추 1개, 풋고추 1개, 후추와 오리가노, 새싹, 말린 로즈마리.
약초물 재료 : 말린 표고버섯 2~3개, 구기자 1큰술, 황기 1뿌리, 오가피 1/2개, 다시마 사방 10cm, 칡뿌리 작게 자른 것 1개, 둥굴레 1줌 (이상의 재료를 10컵의 물을 넣고 20분 정도 끓인 뒤 재료를 걸러내 사용한다.) - 없을시 좌절하지 말고, 물을 사용할 것!

만들기
1. 두부를 두툼하게 세로로 썰어서 물기를 빼고 감자 전분을 묻혀 사방을 노릇하게 굽는다.
2. 감자, 애호박은 얇게 썰어서 채치고, 파프리카는 마름모꼴로 잘게 다진다.
3. 풋고추는 굵게 썰고 사과는 반으로 잘라 얇게 썬다.
4. 모든 재료를 현미유에 볶은 다음 뜨거운 밥을 넣고 살짝 더 볶은 뒤 후추와 오리가노를 뿌린다.
5. 볶음밥을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로즈마리를 살짝 뿌린 뒤 두부 스테이크를 곁들인다.
6. 스테이크 소스를 끓여 부은 후 그 위에 새싹을 얹어 낸다.

2. 채소 볶음과 국수
재료 (2인 기준) : 감자 1개, 가지 1/3개, 애호박 1/4, 풋고추 1개, 붉은색 파프리카 1/4개, 강황가루(카레가루) 1큰술, 소금 2작은술, 바질, 로즈마리, 현미유, 삶은 국수 한 줌, 올리브유, 조선간장, 새싹채소

만들기
1. 감자, 애호박, 가지, 풋고추, 파프리카를 먹기 좋게 썬다.
2. 이 때 감자가 먼저 익을 수 있도록 불에 올리고 뚜껑을 덮어 익힌다.
3. 감자가 어느 정도 익으면 나머지 재료를 함께 넣고 살짝 볶는다.
4. 강황가루(카레가루)를 뿌려 한 번 더 살짝 볶아준 후 채소 볶음을 접시에 담는다.
5. 삶은 국수를 올리브유에 볶아서 채소 볶음과 함께 담은 뒤 새싹을 곁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