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농사짓는 이야기를 엄청 열심히 했으니, 이번에는 엄청 열심히 노는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얼마 전에 나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율면 오성리에 떠들썩한 사건이 하나 있었죠. 사건명은 바로 율면 페스타! 실은 작년 겨울부터 여름이 오면 밭에 무대를 만들어서 율면 주민들과 서울 사람들을 초대해 한바탕 놀아보자는 신나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끝이 없는 농사일에 뭉그적거리다 가을이 되어서야 드디어 실행에 옮긴 겁니다.


손수 제작 페스타를 준비하다
저와 같이 사는 친구들은 고라니가 뛰노는 마을 산자락의 빈 밭을 용케도 찾아내어, 이장님과 함께 밭 한가운데를 편평하게 만들고 버려진 판넬로 바닥도 깔았죠. 그리곤 모종 키울 때 쓰는 전구들을 모아 조명을 만들고, 작년에 율면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만들었던 포장마차도 옮겨다 놓았어요. 안 입는 티셔츠를 모아서 현수막도 만들었지요. 그랬더니 엉터리이지만 제법 그럴싸한 무대가 생겨났지요. 학창시절에 같이 놀던 스쿨밴드 친구들을 초대하고, 율면의 풍물패, 색소폰 연주를 잘하시는 이웃마을 아저씨도 초대했죠. SNS를 이용해 주변의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니, 놀러오겠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손을 번쩍번쩍 들더라구요. 인기 절정!
아, 그런데 이걸 어쩐다. 이렇게 많이 와 버리면 잠잘 곳이 부족해지는데.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우리와 같이 밴드하며 놀던 율면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텐트를 치면 되니 걱정 붙들어 매라고 하네요. 요즘 부쩍 날이 추우니 무대 근처에 있는 이장님의 하우스 안에다 두툼하게 바닥을 깔고 텐트를 치기로 했습니다. 복지회관에서 드럼을 빌리고, 아는 친구들에게 앰프와 마이크를 빌리고. 우여곡절 끝에 시간은 잘도 흘러가 벌써 그 날이 다가옵니다. 자자, 오실 분들 준비물 나갑니다~.
개인 접시, 수저, 컵, 따뜻한 옷과 잘 때 덮을 담요!
일회용품 사용과 쓸데없는 소비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드는 축제가 될 생각에 하루 전 날엔 설레어 잠이 통 안와 고생을 했어요.

모든 이의 축제가 막을 올리다
그렇게 10월 1일. 율면 페스타를 시작했답니다! 서울에서 사람들이 준비를 돕겠다고 아침부터 하나둘 도착하고, 음향 세팅도, 모닥불 준비도, 함께 나눌 음식들도 알아서 척척 이루어집니다. 어찌나 마음이 놓이는지. 이건 정말 비밀인데, 사실 같은 시각에 저는 장을 보러 읍내에 나갔어요. 그런데 마침 장날이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간 친구와 모듬전에 막걸리 한 사발을 시원하게 비웠습니다. 축제하자고 옆구리 콕콕 찔러놓고 가장 바빠야 할 제가 이렇게 편안한 상태라니. 그래도 걱정이 없었어요. 이게 바로 주인과 객이 없이 함께 만드는 우리 모두 함께하는 축제라는 증거이지요! 핑계 좋죠?
산자락 뒤편으로 예쁜 노을이 지고 이런저런 준비들도 거의 끝날 무렵, 농사일을 마친 율면 분들이 헐레벌떡 도착하십니다. 산성리 소연이네 집에선 직접 만드신 유기농 쌀막걸리와 직접 잡은 미꾸라지를 가져오셔서는 즉석에서 추어탕을 끓여주십니다.
떡을 뽑아 오신 분도 계시고, 밭에서 막 따온 포도, 김치와 고추장, 마늘, 호박 등등 모두 양손이 그득합니다. 음식이 이렇게나 넘치는데도 무대는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다채로웠습니다. 10년 만에 무대를 준비한 전직 스쿨밴드 몇 팀이 흥을 돋우었고, 중간 중간 한 달 배운 바이올린 실력을 자랑하는 친구, 우크렐레를 예쁘게 치는 친구, 싱어송 라이터로 활약하고 있는 친구들이 무대를 풍요롭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율면의 풍물패는 함께한 모든 사람들의 흥이 최고에 오르도록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었고, 율면 고등학교 밴드 친구들이 단단한 실력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도 해주었답니다. 팔씨름 대회가 즉흥적으로 열리기도 했고, 노래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대로 올라와 노래방 반주에 맞춰 감춰둔 실력도 뽐냈지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열렬히 박수 쳐주고 앙코르를 외치며 그렇게 율면 페스타의 밤이깊어갔답니다. 노랗게 익어가는 벼처럼, 발갛게 여물어가는 감처럼, 알차게 입을 벌린 밤처럼, 그리고 우리 눈앞에 펼쳐진 노을처럼... 풍요롭고 따뜻한 우리의 축제였어요. 이장님도 신이 나서 내년에 또 하자며, 그땐 정말 멋있게 해보자고 포부가 대단하십니다. 서울에서 왔던 친구들도 그새 정이 든 율면 분들을 생각하며 자꾸 문자를 보내네요. 일손 거들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와서 돕겠다니, 마법 같은 하루의 추억으로 좋은 도시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이러다가 내년 페스타는 넘쳐나는 참여자들로 우드스탁 뺨을 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네요. 하하! 아이고, 아직도 못다 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가득하지만, 자리가 모자라서 이만 써야겠어요. 궁금하신 분들은 내년 페스타 소식을 기다려주세요. 이상, 아직도 그 날의 꽉 찬 기운이가시지 않아 혼자 그때의 노래를 어느샌가 흥얼거리고 있는 율면 주민 나은이었습니다!

임나은|경기도 율면에서 농부아저씨와 거나하게 한밤 지새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시골에서 찾아보기 힘든 단단하고 이쁜 젊은 처자이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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