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라는 것이 딱히 없는 서울 촌뜨기인 제가 이천의 율면이라는 곳을 고향 삼기로 마음 먹은 지도 벌써 삼년이 지났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이 작은 마을에서 지내며 서울에 살 때보다 더 밀도 있게 타인과 관계 맺음을 경험했고, 서울에 살 때보다 더 가깝게 다가오는 산과 하늘 아래에서 내 안에 숨어있던 포장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을 쏟아내며 진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지요. 그러니 이제 이곳이 진짜 나의 고향, 이 사람들이 나의 고향 사람들이라는 게 무리한 말도 아닌 느낌입니다.

잠시 쉼표를 찍다
이제 저는 잠시 율면을 떠나려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같은 집에 살던 친구들 모두 함께 내린 결정이랍니다. 그 이유를 간단히 한두 가지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좌충우돌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우리의 마음 하나 만으로 시작한 시골 생활이고 농사였기에, 그만큼 현실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것들이 문제가 되어 곪아버리기도 했고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어요. 자신의 삶에 스스로 책임지는 방법, 더불어 같이 사는 방법도 아직 어려서 그런지 무척 미흡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집, 땅 , 비용 등 문제가 되려면 충분한 것들이 점점 힘들게 했어요. 휴~ 비용 등이 점점 문제가 되어 저희를 힘들게 했어요.

농촌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삼년 동안 마을에 있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이 작은 마을 안에 큰 세상이 다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세상의 온갖 문제들도 이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인구가 적고, 그만큼 생활이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들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지요. 요즘 월가의 99%의 시위 아시죠? 1%대 99%. 이런 현상은 비단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잘나가는 도시의 문제만 아니랍니다. 게다가 FTA가 시작된다면 가장 먼저 몸으로 고통을 체감하는 곳은 아마 이런 평범한 농촌일 거예요. 농민들은 이제 더 이상 적정한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평범하고 소박했던 농부에게 규모의 농사를, 또는 더 나아가 고부가가치를 만드는 기발한 사업을 강요하고 있어요. 그러니 제초제와 농약, 화학비료를 쓰는 것은 농부의 탓만 아니라는 거죠. 엉터리 체험마을을 만들어놓고 마을 사람들끼리 싸움이 나는 것도 마을 사람들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제가 가장 걱정되는 것은 농사에 치이고 사업에 실패한 대다수의 마을 어르신들이, 이 모든 것을 무지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마을에 가장 소중했던 공동체적 문화가 경제적 효율성 하나만 바라보는 지금의 어리석은 질서에 묻혀 버리는 것 또한 무척이나 걱정스럽고, 때론 두렵기까지 해요.
 

내 고향을 깊이 머금고 함께 나누다

저는 계속 이런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율면에 있지 않더라도, 아니 아예 세상으로 더 나와서 제가 모르는 구석구석의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제가 아는 이야기도 전달하려 합니다. 이것은 새로 생긴 제 고향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다시 고향에 돌아갈 저를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 고향과는 전혀 상관없는 여러분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송년회가 아니라 송별회를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마을 분들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지긴 하지만,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고향을 잠시 떠나는 젊은이들의 마음이 이러할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요즘 인사를 하듯이 둘러보는 나의 마을은 사람도 물론이지만 산도, 밭도, 하늘도, 집도, 나무들도, 이장님네 멍멍이도 모두 소중한 느낌입니다. 마음에 다 담으며 이제 방 정리를 해야겠죠.

그 동안 저와 친구들이 율면에서 곰지락곰지락 일을 벌이며 사는
이야기들을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제 소중한 기억을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저도 기뻤답니다. 우리 중 몇몇은 5년 후든 10년 후든, 스스로 그리고 서로 준비했다고 느낄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어요. 그때까지 제 맘속엔 우리가 함께 애지중지 키우던 콩밭이 맴돌겠지요. 내 마음은 여전히 율면의 콩밭에 있어요.

건강해요, 모두!


임나은|경기도 율면에서 농부아저씨와 거나하게 한밤 지새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시골에서 찾아보기 힘든 단단하고 이쁜 젊은 처자이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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