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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책 읽는 마음

익명의 산모에게서 온 편지│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메리 몽간│샨티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겁이 많거든요. 주사란 주사는 죄다 놓아주셔야 해요.
이왕이면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아이가 나올 때까지 계속 마취상태였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치과에서도 무통치료, 이런 거 하잖아요. 산부인과라고 못할 거 없죠, 안 그래요? 

일전에 소개해주신 조리원은 선생님 덕분에 우선 대기 명단에 올랐어요.
임신보다 조리원을 먼저 예약해야만 하는 건 참 불편한 진실이에요.
출생률이 줄어들고 있다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정말 출산이란 거 자체가 만고의 시작이네요.
상상에서는 이미 몇십 번이나 신랑 머리채를 휘어잡았어요. TV 드라마에서 많이 나온 것처럼요.
이미지트레이닝으로 단단히 단련했으니, 진통이 왔다 싶으면 바로 머리채부터 휘어잡을 생각이에요.
요즘 날이 덥다고 짧게 이발하겠다는 신랑을 말리는 건 원활한 진행을 위한 준비인 셈이죠.
설마 이런 제 생각이 태교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겠죠? 

근데 뭐죠? 자연주의 출산이라니. 왜 하필 내가 한창 아이 낳을 시기에 이런 이론이 등장하느냔 말이에요.
‘히프노버딩(HypnoBirthing)’ 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가지고.
최면요법이라고는 하는데 최면 같지는 않고, 출산을 기쁨으로 가득한 경험일 거라고 하질 않나,
아기 아빠와 함께 교감할 수 있다고 하질 않나.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고 생각하며 준비한 7개월이 아까워 죽겠어요.
선생님께 처음 말씀드렸을 때는 코웃음을 치셨죠. 상처에 된장 바르는 수준의 민간요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런데 얼마 전에는 모 공중파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서 방영하던걸요.
거기 나온 의사선생님 굉장히 훌륭하신 것 같던데, 대한민국 수중분만 1호시래요.
동종업계에서 그 정도 유명하신 분이라면 선생님도 아시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심의 여지를 완전히 떨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믿음이 클수록 배신감도 큰 법이라는데, 하물며 10단계짜리 고통이라잖아요.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나를 내던지긴 싫어요. 전 소중하니까요.
무엇보다, 다음 달이면 산달이라고요!!
그동안 해온 걸 갈아엎고 새로운 걸 시도하기엔 너무 적은 시간이에요.
역시 그 녀석 머리채를 휘어잡고 보는 거예요!
호흡을 가다듬는 연습은 좀 미숙할지 모르지만, 그거라면 자신 있으니까요.
둘째를 갖게 되면, 그땐 또 모르죠.
더 많은 의사가 추천하고, 더 많은 사례가 알려져서 
책에서 말 한 대로, 출산이 하나의 거룩하고 가슴 떨리는 잊지 못 할 의식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우유주사니 하는 걸로 허튼짓이나 일삼는 못된 의사들을 쫓아내는 데도 도움을 줄 거구요.
그러니까 선생님. 의학적 소견은 됐고요. 한번 관심 있게 봐 주세요.
“난 남자니까 출산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하는 식의 자세로 배운 것만 답습하다가는 언젠가 머리채 잡히는 날이 온다고요. 

PS 아이 나올 때가 되었으니 놀이방을 알아봐야 한다네요. 출산도 출산이지만 육아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줄은 몰랐네요.
이건 최면요법 할아버지로도 어떻게 안 되겠죠?
이 문제는 어디다 편지를 보내면 좋을지, 전문가의 소견을 부탁해도 될까요? 


네번째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