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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기다릴 줄 아는 삶

제주에 내려온 지도 4년이 지났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고장으로 가는 것이 몇 개월의 고민을 요하는 것이었으나, 그런 결정을 내리게 했던 건 제주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대도 기대지만, 서울 생활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평일 밤 11시 교대역 2호선으로 환승하여 지하철 안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주일을 포함하여 일주일에 6일 동안 일을 하면서, ‘과연 지금 나는 행복한가?’ 늘 반문하였다.
2005년 12월, 그렇게 제주 생활이 시작되었다. 일하는 시간을 대폭 줄이고, 쉬는 날이면 제주도 관광지나 여행지를 돌아다녔다. 백록담이나 윗세오름 같은 한라산 등반길과 용눈이오름이나 다랑쉬오름과 같은 유명한 오름 오르기, 절물이나 비자림 같은 휴양림에서 산책하기, 그리고 협재해수욕장이나 세화해안도로에서 바라보는 에메랄드빛 바다 바라보기, 또 빼놓을 수 없는 토속 음식 먹으러 다니기…. 4년 동안 나는 그렇게 틈만 나면 제주도를 돌아다녔다. 가끔 서울에서 놀러온 친구들이 관광도 하루 이틀이지, 이렇게 사는 것 외롭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는 쉽게 설명해주지 못해 안타까운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기다릴 줄 아는 여유이다. 서울에 있을 때 나는 지하철 시간은 물론이고 환승할 때 가장 합리적으로 갈아타기 위해 애썼고,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매우 싫어했으며, 늘 다이어리에 해야 할 일들을 미리 계획해놓고 생활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바쁘게 사는 삶 속에서도 물론 나름의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비정상적으로 바쁘게, 그리고 빠르게 변해버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휴대폰 하나로 바로바로 연락을 주고받고, 나날이 발전하는 교통수단은 우리를 원하는 곳에 재깍재깍 데려다준다. 그런데 그런 기술의 발전이 사람의 마음을 참 조급하게 만들어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거나, 혹시라도 올지 모르는 전화를 받기 위해 외출을 하지 못했던 기억, 목적지에 도착해서 펼쳐지는 것이 여행이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이 여행이라는 선인의 말은, 5분마다 열고 닫히는 휴대폰에 의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대중교통 이용 시간표에 의해 설 자리를 잃어버린 듯하다.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비로소 그런 여유를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성산일출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도, 수월봉에서 일몰을보기 위해서도, 해가 뜨기를, 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바람을, 햇살을 기다려야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자동차로 달리는 해안도로도 한 번은 걸으며 두고두고 봐야 그 풍경을 고스란히 안을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장관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그저 지나치는 다양한 색상의 점들에 불과한 것이다.
어쩌면 나의 믿음도 그렇게 변질될까 두렵다. 혹, 휴대폰 답문을 기다리듯이, 5분마다 도착하는 지하철을 기다리듯이 기도에 응답이 없다며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었는지 말이다. 제주 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의 그렇게 바쁜 삶 속에서도 늘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그 사실을 깨닫기를 기다리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서울 생활이 일주일 동안 자기만 생각하고 생활하다가 주일에, 마치 ‘쥐 잡는 날’처럼 교회를 가는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본다. 그리고 매일 나를 기다리고 있는 주님을 늘 마음 깊이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변명렬|제주도에서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가끔 글을 쓰고, 자주 여행을 하고, 매일 배드민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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