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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동서양을 가르는 자연 속 숨은 그림 찾기|벽초지문화수목원

주목터널길(제공 벽초지문화수목원)



더운 공기를 가르고 차가운 바람이 피부를 스칠 때면 사람의 마음에는 단풍이 든다. 내리쬐는 뙤약볕과 녹아내리는 더위를 피해 무작정 떠났던 여름휴가와는 달리 잠시 동안만이라도 차분하게 자연과 호흡하며 쉴 수 있는 곳, 조용하게 나를 돌아보고 내 안을 채울 수 있는 곳이 필요한 이즈음. 휴식과 위안을 충만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났다.






채플돔

이용시간은 해질녘까지
자동차로 자유로를 달리다가 광탄 방면으로 30분 정도 더 들어서면 푸른 풀과 연못이 함께 어우러진 터, 벽초지(碧草池)문화수목원에 다다른다. 짙은 회색 빛 성벽처럼 이루어진 매표소 입구. 도시에서 출발한 지 30~40분 만에 이렇게 한적한 농촌마을이 있는 것도 새삼 놀랍지만 저 벽 너머에 있는 풍경은 여느 농촌풍경과는 또 다른 세상이다. 입구에서 무심코 받아든 안내팸플릿 이용안내 문구에 시선이 멈춘다. ‘이용시간 오전 9시부터 해질녘까지.’ 시간에 쫓기지 말고 해가 떠있는 동안만은 마음껏 즐기라는 여유일까? 잠깐 시각을 확인하는 짧은 시간도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아까울 거라는 자신감일까? 정확하게 구분되는 숫자 대신 ‘해질녘’이라는 단어에 기대감이 높아진다.
벽초지문화수목원은 약 70년 전, 피혁공장 터였던 곳에 전국 각지에서 나무와 식물을 들여오기 시작해 10년간의 노력 끝에 완성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게 산자락에 자리 잡은 다른 수목원들과는 달리 평지로만 구성돼있는 이곳은 빠르게 걸으면 1시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아담한 규모지만 막상 교목·관목·꽃·수생식물 등 1천400여 종의 식물들과 곳곳의 풍경을 보물찾기 하듯 찬찬히 둘러보려면 2시간으로도 부족하다.


조각 공원

유리의 성에서 향기로운 만찬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수목원의 중앙으로, 빛솔원 소나무와 허브정원 ‘퀸즈가든(Queens Garden)’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서양식 정원 형태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은 은은한 꽃향기와 형형색색의 꽃들로 마치 유럽의 어느 정원에 와있는 기분을 들게 하는데, 그냥 떠나기 아쉬운 사람들을 위해서 한쪽에서는 허브화분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BCJ Place는 문화수목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유기농 재료로 만든 차를 대접 하고, 각종 전시가 가능하도록 만든 복합 문화공간이다. 자연을 강조하는 수목원에서 어떻게 현대적 2층 유리건물이 떡하니 중앙에 자리 잡고 있을까? 순간 건물외벽에 구름 한 조각 흘러간다. 푸른하늘과 초록 풀, 알록달록한 꽃들이 모두 유리에 비쳐 건물은 계절과 주변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는 유리의 성으로 변한다. 어쩌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한 가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좁은 마음일 지도 모른다.
1층 카페 그린비에서는 유기농 원두를 사용한 커피, 허브 아이스크림과 허브차, 허브 쿠키를, 2층 퓨전 레스토랑 ‘나무’에서는 허브 돈가스와 허브 새싹비빔밥 등을 수목원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맛볼 수 있다. 허브관련 상품과 기념품을 팔고 있는 상점옆에서는 아기자기한 허브 비누 만들기 체험도 이루어진다. 지하에 마련된 아트 갤러리에서는 수목원의 사계를 담은 사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매 계절마다 수목원의 나무들이 어떤 빛깔의 옷으로 갈아입는지 보고나니 다음 계절에 꼭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푸른 연못에 마음을 담그다
BCJ Place 플레이스 뒤를 돌아 나오면 동양화 한 폭과 마주친다. 벽초지 문화수목원의 얼굴, 꽃과 나무에 둘러싸인 연못 ‘벽초지’다. 한쪽에는 연못을 가로지르는 무상무념, 마음을 비운다는 뜻의 다리, 무심교가 놓여있는데 이곳에 서서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로 현재의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푸른 연못 위에 비치는 하늘과 구름이 수면 위에 잔잔하게 일렁이며 서서히 느려지는 만큼 세상의 시간도 발맞추어 느려지고 귀를 감싸는 것은 고요함과 호수 반대편에 간간히 들려오는 벽초 폭포 소리뿐이다. 무심교를 지나 단풍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양버들나무 아래로 늘어진 정자 파련정에서 잠시 쉴 수 있다. 한 마리 새가 된 마냥 파련정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가을빛을 만끽하다가 문득 파련정을 무대로 했던 한 잇몸약 광고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벽초지문화수목원은 수려한 경관 덕에 다양한 CF와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풍부한 지하수 덕분에 늘 맑고 깨끗한 방대한 크기의 연못 한가운데는 연꽃 군락지 ‘연화원’이 있는데 여기까지는 나무로 만든 수련길이 이어져 있다. 타박타박 수련길을 가다가 큰 소리로 부르면 팔뚝만한 향어와 잉어가 어디선가 나타나 물 위로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신선이 된 건지 헷갈릴 정도다. 실제로 호수를 돌아 반대편으로 가면 호숫가에 비스듬히 묶여 있는 반쯤 가라앉은 나뭇배 한 척이 있는데 아름다운 천사들이 벽초지를 구경하러 오는 곳이라 해서 ‘엔젤스 게이트’라 불리니 이 땅에서 즐기는 천국의 풍경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파련정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벽초지문화수목원의 얼굴이 벽초지라면, 가장 큰 숨은 보물은 장소와 장소를 잇는 길 자체다. 사람 인(人)자의 운치 있는 주목나무길, 가을의 백미 단풍길, 고요한 버드나무길 등 수목원의 각양각색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보면 가슴이 트이는 넓은 잔디밭(헤븐스 스퀘어), 유럽식 정원(퀸즈가든 외), 농촌의 원두막(아리솔원), 반짝이는 연못(벽초지) 등 나도 모르게 또 다른 세상과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목적보다는 과정에 더 의미를 두는 여행처럼 길 중간 중간에 의자에 쉬어 가면 그곳이 바로 목적지가 된다. 그 위치에서만 볼 수 있는 구름과 바람과 향기, 햇볕을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떠남의 목적이 아니던가. 유럽의 성곽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대리석 정문을 지나면 아름다운 꽃밭과 시원한 분수가 있는 조각공원이 나타난다. 동양적인 미를 함빡 담은 벽초지에서 단 몇 분 만에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 온 것 같은 이곳은 올해 5월에 새롭게 선보였다고 한다. 3층으로 된 중앙 분수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들여온 비너스·다비드·제우스

헤븐스 스퀘어

신과 수발드는 여인들·아기 천사·사계절 요정 등 40여 점의 대리석 조각 작품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다비드와 비너스 사이를 지나 구불구불 이어진 길옆에 놓인 커다란 체스판을 보니 마치 하트여왕의 공원으로 들어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왠지 이 이상한 나라를 떠나고 싶지가 않다.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고 동서양의 자연을 넘어 동화의 세상으로까지 여행을 마치고 나오니 잊었던 세상이 다시 나를 반긴다.
세상에 발 딛기 전 한 가지를 마음속에 새겨둔다. 이곳에 이런 휴식과 위안이 있었노라고. 이곳의 하늘, 바람, 자연이 잊힐 듯싶으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벽초지문화수목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창만리 166-1
031-957-2004 
www.bcj.co.kr


벽초지문화수목원 속 숨겨진 즐길 거리들

1. 통나무 별장 수목원 안에는 커다란 수영장이 있는 분위기 있는 통나무 별장이 있다. 원래 개인 별장이었다가 꼭 한번 묵어봤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아 얼마 전부터 일반인에게도 개방을 했는데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기 위한 예약경쟁이 꽤 치열하다고. 일단 예약에 성공하면 노송이 어우러진 숲길, 붉게 물든 단풍길, 달빛이 퍼지는 연못‘ 벽초지’ 옆 산책로 등 환상으로 가득한‘ 한밤의 수목원’을 독점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2. 연리지 허브정원 퀸즈가든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뿌리가 다른 나무 두 그루가 가지가 맞닿아 연결돼‘ 영원한 사랑’을 뜻하는 연리지가 있다.


이선경|그곳에 사람들을 순간이동 시키고 싶다. 좋은 것, 재밌는 것, 즐거운 것이 있으면 같이 느끼고 함께 웃고 싶은 방송작가. 오감으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재담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전국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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