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연재 종료

부천 무형문화재 공방거리


오래된 미래로 가는 길

공방거리

공방거리는 부천 영상문화단지 내에 있다. 따라서 공방거리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드라마 <야인시대>를 찍은 세트장을 거쳐야 한다. 1930년대부터 80년대의 거리를 복원해 놓은 이 곳 세트장에 들어가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 요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한참 그 시대를 뛰어넘는 시공간에 압도되어 있다 보면 불쑥 한옥 몇채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공방거리가 시작되는 지점. 자꾸만 과거로 과거로 거슬러 가는 발걸음은 당황한 마음을 눈치 채듯, 느려진다. 마음의 속도와 내 발걸음의 속도가 비슷해지는 어느 지점. 그 황홀한 순간에 한옥은 제 모습을 드러냈다. 가지런한 기왓장은 무형문화재 선생님들의 한길을 오롯이 간 고결한 기품을 나타내는 듯 하고, 익숙한 나무의 냄새는 높은 가을 하늘과 어울려 몽글몽글 피어난다. ‘ㄱ’ 혹은 ‘ㄴ’ 모양으로 자리한 한옥들이 서로 마주보며 있고, 다시 전체적으로 긴 거리를 이룬다. 굳건히 제자리를 지킨 한옥의 부축을 받는 듯, 그 샛길로 거닐다 보면 시간을 따지지 않은 공간이 주는 묘한 편안함이 인다. 지금이 2000년대라고 해도 좋고, 1930년대라고 해도 좋고, 아니 조선시대라고 해도 좋겠다. 우리도, 나도, 이렇듯 누군가의 현재에 뚝 떨어져 시간을 잊게 하는 존재가 되고 있는지, 잠시 생각이 스친다. 한옥 한 채의 공간이 서로를 보듬고, 공간이 다시 열리며 ‘거리’를 이룬 곳. 한옥이 만들어낸 공간은 그렇게 오래된 미래를 알려주는 듯했다.

명품관


거리, 7개의 손을 품다
전체 9동의 한옥으로 이루어진 공방거리는 7개동의 공방과 작품 전시 및 판매를 위한 공간인 명품관 1동, 화장실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7개의 공방에는 각각 궁시장, 악기장, 조각장, 서각장, 나전칠기장, 초고장, 자수장의 공방으로, 아예 거주하며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첫 만남은 궁시장. 끊임없이 나무를 깎고 다듬는 손길에 장인의 끈기와 열정이 느껴진다. 오랜 방법대로 나무를 붙일 때 쓰는 부레풀까지 전시했다. 차라리 ‘지독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그 고집이 이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은 한 분이라는 소리에 묻힌다. 그럼에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의 표정은 전혀 무겁지 않고, 관람객에게 여유 있는 웃음을 남긴다. 어쩐지 ‘건강하세요.’ 라는 말이 절로 새어 나온다. 그때 옆에서 새어나오는 둥둥거리는 북소리에 귀가 쫑긋한다. 바로 악기장이 계신 곳이다. 장구와 북, 낯익은 오랜 악기들이 제 소리를 기다리듯 장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쌓여있고, 그 손길을 이어가는 악기장 아드님의 손은 더욱 빨라진다. 북소리를 뒤로 하고 걷다 보면 초고장과 나전칠기장의 공방이 나온다. 왕골을 이용하여 한 땀 한 땀 엮어 만드는 화문석의 매력과 나전칠기로 멋을 더한 전시품을 볼 때면 그 섬세함에 ‘전통’ 이란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거리의 끝에 위치한 자수장이 계신 곳까지 오면 이제 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솜씨를 반 정도 돌아본 셈이 된다. 40년 동안
수를 놓았다는 자수장 선생님의 말씀에 할 말을 잃은 혀를 묶어두고, 묵묵히 작업장을 돌아본다. 그러고 보면 공방의 거리에선 말이 참 하찮은 것이 되고 만다. 무언가 금속의 질감으로 된 물건을 끊임없이 두들기는 조각장 선생님의 작업실도, 이어진 서각장의 공간도 그렇다. 몰입하고 있는 사람 앞에선 말이 제 길을 잃었고, 작업할 때 나오는 소리가 긴 침묵을 대신했다.


직접 해보는 전통공예

각 공방장을 다 돌다 보면, 명품관에 이른다. 명품관이란 다름 아닌 장인들의 작품을 모아 판매하는 곳. 직접 제작한 공예품들은 가히 가격을 매긴다는 게 난처할 정도로 정교하며 섬세하다. 따라서 명품관에 들어서면‘ 명품관’이란 이름이 왜 붙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공방의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이다. 궁시장 공방에선 대나무 활을 만들어 보고 활을 직접 쏘아 볼 수있게 했고, 서각장 공방에선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춰 만화 탁본 족자 만들기를 진행한다. 악기장 공방에선 공예북 저금통 만들기, 조각장 공방에선 칠보를, 초고장 공방에선 수저 받침이나 식탁 매트를직접 만드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외에도 골무 핸드폰 고리 만들기, 옻칠 주걱 뒤집개 만들기 등 각 공방에 맞춰 체험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각 공방장의 적정 체험인원수는 각기 다르지만, 체험비용은 2만원으로 모두 동일하다. 또한, 전통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기획전시, 무형 문화재 시연 등도 하고 있다. 올해 3월에 첫 출발을 한 이 거리에서 이미 지난 8월 <MYTH 공방전>이란 이름으로 첫 전시를 열었고, 앞으로도 기획전시 계획이 꾸준히 있다.

한옥은 참 요상한 공간이다. 널따란 대청마루와 크게 낸 창들을 보면 분명 활짝 열린 듯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디뎌야 할 높이가 있고,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하며 방이라는 공간은 숨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마주한 한옥은 마당을 공유하지만 제가 가진 처마는 공유하지 않는다. 한옥이 가진 이 역설과도 같은 묘한 느낌은 가을날의 변덕스런 마음을 닮은 듯도 하다. 마치 어느 날 활짝 닫아버린 아픈 침묵처럼, 어느 날 굳세게 열어버린 실언처럼 말이다. 입을 닫은 채, 그저 두 손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며 거기에 몰두해 있는 장인들을 만나고 오는 길. 그 깊은 침묵의 힘이 가을을 성큼 데리고 온다. 거리의 하늘이 참 높다.


부천 무형문화재 공방거리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529-2
영상문화단지 內 공방거리
032-255-2551
www.bias.or.kr


근처 가볼만한 곳   아인스 월드

미니어처 테마파크로 유명한 곳이다. 부천 상동 영상문화단지 내 위치하여 공방거리를 둘러보며 들리기에 적합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34점의 문화유산과 유네스코 10대 문화유산 등 유명건축물들을 1/25로 축소, 전시했다. 2004년에는 서울시 교육청 현장체험학습 지정기관으로 선정되어 여가와 교육의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신개념 공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기타 > 연재 종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감독과 의사  (0) 2010.01.22
관객의 선택을 제한하는 교차상영  (0) 2010.01.14
제3의 문화권력, 스타의 ‘팬’  (2) 2009.12.11
마음의 창  (0) 2009.12.09
떡볶이의 변신을 허(許)하노라!  (0) 2009.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