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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관객의 선택을 제한하는 교차상영

영화계에서 ‘퐁당퐁당’이라는 은어로 불리는 교차상영은 조조와 심야 상영을 비롯한 관객이 별로 없는 시간대에 2편 이상의 영화를 나누어 편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얼마 전에 개봉한 한국영화<집행자>의 경우, 개봉 첫 주말이 지나자 대부분의 멀티플렉스 극장은 약속이나 한듯, 1관에서 <집행자>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2012>를 번갈아 상영하였다

상품성에 밀린 소비자의 기호
이러한 교차상영은 영화라는 ‘상품’을 파는 극장업자들의 이윤 극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
생한다. 즉 잘 팔리는 ‘상품’을 극장이라는 진열대에 ‘소비자’들이 잘 볼 수 있게, 되도록 많이 진열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이 잘 찾지 않는 ‘상품’(인기가 떨어진)의 진열대에도 같이 전시한다. 소비자는 잘 팔리는 ‘상품’뿐만 아니라 각자의 기호에 맞는 ‘상품’ 또한 선호한다. 그런데 이러한 교차상영은 소비자의 ‘선택’보다는 잘 팔리는 ‘상품’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이다. 바로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한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영화산업이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전환한 이후에 보편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보통 하루에 한 개의 상영관에서는 6회에서 8회 영화 상영을 할 수 있다. 만약 교차상영 편성에 들어가면 ‘상품’성이 떨어지는(재미없는) 영화는 조조와 심야로 몰리게 돼 하루 2~3회 상영한다. 즉, 프라임타임 대를 벗어나 그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은 다른 영화(재미있는 상품)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극장체인과 배급, 제작을 겸하는 메이저 영화사는 자사에서 만든 영화를 (힘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마찬가지로) 살며시 그 스크린에 밀어 넣는다. 한정된 스크린 수는 더욱 감소하여 관객의 선택의 폭은 그 만큼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개봉관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관객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돼 영화흥행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게 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영화시장
실제로 <집행자>는 전국 247개 상영관에서 개봉해 첫 주말인 작년 11월 6일부터 8일까지 총 16만 7,077명의 관객들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지만 11월 12일 교차편성 이후 두 번째 주말의 경우 97개의 상영관이 늘며 총 344개 스크린에서 상영했으나 관객은 5만 4730명밖에 동원하지 못하며 박스오피스 5위로 추락했다. 따라서 영화 제작사는 이러한 극장의 교차상영을 영화흥행에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로 인식한다. 관객에 따라 영화의 선호도는 상대적이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보편적이다. 예로 2009년 독립영화 흥행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워낭소리>와 <똥파리>도 개봉 초기에는 교차상영을 비켜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 개봉한 <바람>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악재를 겪었지만, 꾸준하게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점차적으로 좌석 점유율을 높여 나가고 있다. 재미있는 영화, 잘 만든 영화는 역시 관객(소비자)에게 선택을 받는다. 이러한 시장논리에서 관객의 선택은 아주 냉정하다. 따라서 영화 제작사는 작품의 완성도라는 측면을 흥행의 최우선 척도로 봐야만 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영화마저도 이러한 거대기업이 지배하는 상업 논리, 교차상영을 벗어 날수 없다. 왜냐하면 교차상영을 방지할 마땅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 할 수 있는 정책-상영관의 미니멈 보장-이필요하고, 산업적 구조가-국가가 티켓을 구매하는 문화바우처 같은-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국가가(영화진흥위원회) 나서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관객)의 몫이기 때문이다.


조현기|서울기독교영화제에서 놀다 보니 아뿔싸! 마!~흔! 줄이닷. 올해는 사무국장에서 프로그래머로 이직했다. 기독교영화제작에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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