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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제3의 문화권력, 스타의 ‘팬’

‘재범 사태의 진실을 말합니다’ 요즘 연예 기자들에게는 이런 메일들이 꾸준히 온다. 지난 9월, 그룹 2PM의 재범은 4년 전 영어로 한국을 비하하는 글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썼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그룹을 탈퇴했다. 그 후 그의 팬들은 재범의 결백을 주장하는 자료를 담은 글을 작성했다. 이런 노력으로 재범의 글이 그 같은 논란을 불러올 만큼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예인과 소속사가 아닌 팬덤(fandom,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이 여론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팬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새로운 파트너
이런 팬덤의 모습은 최근 팬덤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근본적으로 팬은 보다 적극적인 소비자다. 팬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최근 그룹 동방신기의 멤버들이 소속사와 계약 문제로 소송에 들어가자 그들의 팬덤이 소송 때문에 취소된 공연에 대해 소비자 보호원에 피해구제신청을 제기한 것은 일종의 소비자운동이다. 하지만 요즘 팬덤은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이자 미디어다. 재범 사건처럼, 그들은 개별적인 여론 형성을 위해 노력한다. 신문 광고와 언론 보도자료로 여론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스타의 매력을 담은 UCC로 홍보에도 나선다. 최근 인기 연기자의 드라마 제작 발표회 현장에서는 소속사가 아닌 팬클럽에서 직접 만든 간단한 음식과 선물을 기자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팬덤과 스타, 소속사 모두 팬덤이 단지 팬이 아닌 파트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래서팬덤은 일반 소비자들인 대중과 분리된다. 그들은 보다 적극적인 소비자나 대중이 아니라, 대중과는 다른 입장에서 움직이는 독립된 공동체다. 재범 탈퇴 이후 2PM의 팬덤이 소속사와 2PM 관련 상품을 보이콧하자 일부 언론에서“ 탈퇴 후 동정론으로 돌아선 여론을 악화 시킬 수도 있다.”고 한 것은 팬덤의 이런 위치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일이다.

끈끈한 유대감으로 욕망을 실현하는 공동체
팬덤은 다른 소비자와의 여론과 별개고, 팬덤의 보이콧은 경우에 따라 소속사와 그룹에 어떤 식이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의지와 영향력을 모두 가진 것이다. 팬덤의 행동은 대중이 특정 스타에 대해 갖는 이미지에 영향을 주고, 팬덤의 의지는 스타의 소속사는 물론 스타의 의지와도 달라질 수 있다. 이는 팬덤(fandom)이 단지 팬(fan)들의 집합이 아닌 개별적인 의지와 욕망을 가진 공동체(dom)이기 때문이다. 팬덤이 공동체를 이뤄 스타에 대한 자신들의 바람을 공유하고, 공동체 내부의 논의를 통해 그들의 자체적인 욕망이 형성된다. 그리고 팬덤 내부의 논의 과정을 통해 팬덤의 성원들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다. 그 점에서 현재의 팬덤은 스타를 수동적으로 응원하는 서포터즈가 아니라 뚜렷한 욕망을 가진 작은 사회에 가깝다.

그들은 스타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스타를 통해 자신들의 공통된 욕망을
실현하려 한다. 단지 대중의 일부분이었던 팬이 팬덤이라는 이름으로 분리되고, 그들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면서 생산과 소비, 미디어의 역할을 동시에 하며, 스타, 소속사, 소비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공동체가 된다. 그래서 팬덤은 생산자와 소비자, 스타와 대중이라는 구분을 넘어 기존 사회와는 다른 가치로 움직이는 공동체가 되고, 그들은 공동체 바깥의 세상에 영향을 미치며 스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들의 가치를 실현하려 한다. 일반 사회와는 다른 욕망을 가진 독립된 공동체. 최근의 팬덤은 새로운 성격의 공동체 탄생을 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명석|엔터테인먼트 웹진 <10아시아> 기자. 보고, 듣고, 쓰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