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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그래도 난 교회에 간다!

뒹굴뒹굴 방바닥에 눌어붙어 천장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다가, ‘짜증나, 미치겠네, 제길’ 속으로 수없이 되뇌면서 다시 머리를 베개에 폭 파묻길 몇 번…‘기독교 방송이나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꿈꿔보지만 그건 그냥 꿈일 뿐이다. 그렇게 시작한 답답함이 우울증이 되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 밤만 되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설렘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아닌, 사람들과 일을 대할 두려움에 심장이 벌렁벌렁 대는 순간에 이른 것이다.

날 선 말, 말, 말!
면도칼을 입에 물고 다니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나는 봤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총체적으로 모인
곳은 어디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교회였다. 입에서 칼을 툭툭 뱉듯 아무렇지 않게 상처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수없이 좌절하고, 넘어졌다. ‘교회를 떠날까’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스스로 모범의 틀에 가둬놓고 그 안에서만 일탈을 하던 내겐 아직은 어림없는 도전(!)이었다. 상처 받는 말은 둘째 치고, 하지도 않은 말과 행동은 새롭게 둔갑하여 뻥튀기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 공동체는 왜 이렇게 안 되는 거냐? 실망이다!’라는 각 사람의 외침은 바위처럼 내 가슴에 얹혔다.그 영광의 상처는 구석구석 남았고, 그중 심한 일부는 ‘망각’이라는 동굴 속에 던져두었다(사람이 ‘망각’을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은 참으로 대단히 섬세하신 분이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아직도,여전히 교회를 가고 있는 것일까?’ 안 보면 그만일 사람들을 또다시 대하면서…. 그 해답을 나는 두군데서 찾았다.

저들과 함께

때는 3월 초, 눈이 꽝꽝 얼어붙어 아이젠이 당장 필요할 것 같은 북한산 길이었다. 흙길과 빙판길 사이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던 난 심각하게 내려갈 것을 고민했다. 저만치서 계속 올라가자는 신호를 보내는 청년부 오빠를 보면서, ‘필시 미쳤을 거야, 제정신일리가 없어’하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이미 발걸음은 빙판길을 내딛고 있었다. 그 후 시베리아벌판처럼 펼쳐진 하얀 눈길을 네 발로(?) 걸으며 주변에 민폐를 끼치길 수차례, 어느새 탁 트인 정상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 속 깊이 찬바람을 들이마시며 넋 나간 정신을 되찾은 후, 주변의 원수(?)들을 흘깃 바라보는데 새삼 그런 생각이들었다. 저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
답답한 마음에 펼쳐든 성경에서‘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라’ 했을 땐,
불경하게도 바닥에 집어 던졌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경건의 시간에 본 에베소서 4장 말씀은 자전거가 내 마음 속에 들어오듯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주님이 각자의 사명에 맞게 사람을 세우신 이유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는 것, 그것이 그분의 부르심이었다는 말씀이 살아서 꿈틀거리며 예리하게 내 영과 혼을 찔렀다. 그래,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 상처받고 시험 들어도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찾은 것이다. 나를 위해 죽기까지 낮추신 그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려면 아마 죽을 때까지도 힘들겠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끝까지 정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또한 그 정상은 나 혼자가 아니라 원수 같은(?) 동료 그리스도인과 함께여야 한다. 그래야 험난한 빙판 길에서 멈추지 않고, 탁 트인 정상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배성분|다소 고된 일상이지만 틈틈이 어린 아이들의 해맑음에 빵 터지며 살고 있다. 다시 책 만들기 위해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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