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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파란 하늘 밑 마을 부산 감천동 태극도 마을

하늘과 맞닿은 산 위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매일같이 골목골목을 오르고 내려오기를 반복한지 40여년. 산 아래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다를 것 같은 삶의 시간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 파란하늘 아래 태극도 마을이 있었다.  글·사진 김승환


멀리 서서 하늘을 바라보다
부산지하철 1호선 토성동역 6번 출구로 나와 부산대병원 앞에서 감천고개로 향하는 20번 마을버스를 탔다. 얼마 만에 타는 마을버스인가. 초록색 꼬마 버스는 아미동의 가파른 고개를 힘겹게 오르며 중간마다 멈춰 사람들을 토해낸다. 20여분쯤 오르다 정상으로 보이는 고개에서 내렸다. 감천고개. 고개 하나를 넘으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달라졌다. 산자락을 따라 알록달록한 색깔의 슬래브 지붕의 집들이 다닥다닥 서로 몸을 붙이고 약속이나 한 듯, 파란색 물통을 하나씩 어깨에 둘러매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 하늘을 보니 하늘이 파랬다. 잠시 생각해 본다. 하늘이 파란가? 아니 하늘은 원래 파랗다. 멀리서 바라본 하늘 말이다. 그런데 그 하늘을 더 가까이서 보겠다고 다가간다면 파란 하늘은 사라진다. 사실 하늘색은 없는 거다. 그게 사실이다. 어쩌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데 일정 거리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물리적 거리, 그리고 심리적인 거리까지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본질과 내면에 도달할수록 껍질이 하나 둘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속살은 우리가 기대했던 아름다움이 아닌 오히려 그 반대의 것일지도. 그렇게 멀리서 바라본 태극도 마을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감천항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맞은편 정상에서 한동안 그렇게 바라보았다.

가까이에서 그들을 들여다보다
좀 더 가까이 가보자. 답답함이 밀려온다. 가늘고 좁다란 골목길을 기웃거리기를 한참.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한국의 산토
리노’ 또는 ‘마추피추’로 불리는 이곳 태극도 마을은 경사진 비탈을 따라 만들어진, 실상은 달동네다. 아름다운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삶의 고단함이 가까이 다가간 나에게 느껴진다. 실핏줄처럼 뒤엉킨 좁은 골목길들 사이로 지붕이 마주 닿을 듯 붙어 있는 단칸방들을 마주한다. 마을의 역사는 이렇다. 태극을 받들며도를 닦았던 충청 지역의 신흥종교인 태극도민들이 한국 전쟁이후 이곳으로 피난 왔다. 늘 그렇듯이 피난은 산 아래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산자락이나 산 위쪽이다. 여기에 삶의 자리를 틀고, 지나온 세월을 허물고 새로운 시간을 올렸다. 초기와는 달리 지금은 당시 종교인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나고, 삶이 궁핍한 사람들이 모여들며 그들의 그늘이 하나 둘씩 쌓이기 시작했고, 흔히들 말하는 달동네가 되었다.
마주 오는 사람의 어깨가 닿을 듯 좁은 골목길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오래된 빨랫줄. 거기에 걸린 축 쳐진 빨래들이 삶의 무게에 지쳤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름인데도 곳곳에 보이는 연탄재, 지붕에 말려놓은 운동화 등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골목을 지나다 보면 진솔한 삶의 모습들과 쉼 없이 만나게 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고 푸념 속에 긴 한숨만 흘러온다.
무거운 마음으로 태극도 마을을 돌다 보면 금방 깨닫는 한 가지 사실은 바로 어느 골목을 들어가도 길이 다 통한다는 것이다. 신기할 정도다. 혹시 이렇게 가느다란 실선들이 여기저기 늘어선모양으로 집과 집을 연결하며 펼쳐진 골목길은 이 속에서 부비고 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오래도록 버틸 수 있게 해준 구조물이 아니었을까. 서로의 살림살이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불편한 환경이지만, 서로 보듬으며 소박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사람들. 척박한 환경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었으리라.

사람과 사람들

감천고개는 소박한 일상들의 반복으로 시간은 느릿느릿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골목길 중간 어디쯤 작은 슈퍼에 앉아 땀을 닦아 낼 때 쯤, 잰 걸음으로 골목을 오고 가는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태극도 마을은 카메라를 짊어진 낯선 이들의사진 촬영지가 되었다. 성냥갑처럼 얇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총총하게 박힌 집들이 하늘로 오르고 있는 모습은, 달동네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과는 너무나 다른 멋진 피사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에게는 이런 낯선 방문이 달갑지 않다. 사진찍으러 다시는 오지 말라고 호통치던 노인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삶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매서운 눈빛을 엿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용한 동네가 관광지로 개발될 조짐을 보이자 사람들의 의견이 갈리고 마음이 뒤숭숭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어느 누구의 관심과 간섭 없이 살아왔던 그들인데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정부정책에 항의할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때 쯤 골목길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영어 읊는 소리. 새내기 대학생 선생님과 함께 몇몇 아이들이 작은 공부방에 모여 한창 영어로 열심이다. 주방에 있는 갖가지 물건들을 영어로 주고받으며 환한 미소를 짓는 아이들에게 이곳은 바로 희망을 꿈꾸는 곳이 아닐까? 같은 공간에서 누구는 절망의 한숨을 내쉬고 다른 누구는 희망을 외치기도 한다. 삶은 골목길처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 것을 이제야 알겠다.

이제 하늘과 닿은 듯한 마을에서 내려갈 시간이다. 터벅터벅 내딛는 내리막 길 뒤 작은 집 쪽방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어두웠던 가슴 한켠에 사르르 미소가 번진다.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지고 함께함으로 버티어온 지난 시간들처럼 태극도 마을사람들은 오늘도 함께 세월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태극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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