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PECIAL/2013 09-10 가을밤, 물들다

가을밤, 물들다 2 │덜컹거리는 가을밤 기차에 오르다


어떤 이는 하루를 온전히 여행하고 싶어 시간 절약한다며 밤 기차를 타고 떠나요. 어떤 이는 일과를 마치고 통근 열차로 밤 기차를 이용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는 어떤 목적도 없이 밤 기차를 타기로 해요. 낮의 기운을 붙들기 위해 인위적인 불빛을 뿜어대는 도시의 밤을 피해 진짜 까만 밤을 만나러 밤 기차에 올라탑니다. 가을밤에 말입니다. 글·사진 신화민


두근두근, 기차가 출발하길 기다리며
22시 20분, 용산역에 도착했어요. 출발 시각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네요. 여유 있게 도착해서 밤의 대기실에 젖어들었어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네요. 역내 가게들은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조금 지나자 대기실의 텔레비전도 꺼졌어요. 유일하게 열려있는 편의점에 가서 4시간의 여정을 위해 간식 몇 개를 샀어요. 저녁 식사 후에 가면 열차 안에서 엄청나게 배가 고프거든요. 몇 남지 않은 사람들 틈에 앉아 열차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을 주시하며 시간을 세어가요. 
23시 25분. 정확하게 열차가 출발합니다. 이제 기차가 이끄는 대로, 기차는 선로가 놓인 대로 가기만 하면 되네요. 가만히 있어도 종착지에 다다르겠죠. 초조하게 시계를 보며 이것저것 잴 필요 없이 그저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요. 예매하길 잘했어요. 밤에 떠나는 기차인지라 대부분 타면서부터 잘 준비를 하네요. 큰소리 내고 싶어도 꾹 참고, 간식거리 몇 개 부스럭거릴 정도의 소리만 내며 소곤소곤 기차 속 시간을 보냅니다. 종착지까지는 4시간이나 남았는데, 무엇을 하며 이 시간을 보낼까요?




사방이 트여도, 보이는 건 너와 나
‘밤 기차’는 동행한 사람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에요. 선로를 따라가다 보면, 불빛 하나 없는 곳을 자주 마주합니다. 버스나 자가용으로 움직였다면 끊임없이 가로등 길을 지나갔겠지요. 낮이면 시시각각 바뀌었을 풍경들도 까맣게 칠해졌네요. 차창 밖을 바라보아도 내가 있는 기차 안을 비출 뿐입니다. 뒷걸음칠 곳 없는 네모진 공간 안에 ‘우리’만 있을 뿐이에요. 밤 기차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더 깊이 알고 싶은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 더없이 중요해요. 저 역시, 혼자 가지 않았어요. 침묵을 용인해주며, 두렵지 않게 밤을 누려 줄‘ 벗’과 함께 했지요. 소란스러운 스마트폰은 꺼두고 서로의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어주었어요. 저는 대학생선교회CCC에서 만든 ‘솔라리움’을 챙겨갔어요. 50개의 이미지 카드로 이뤄진 대화 도구예요. 궁금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그에 맞는 그림을 찾아내어 서로에게 이야기해주기로 했어요. ‘요즘 너의 화두는 무엇이니. 꿈꾸는 것은 무엇이니.’ 난데없는 질문 같지만, 이런 깊은 시간이니 할 수 있겠죠. 그림으로 이야기해주니 더 와 닿고 공감하게 되네요. 이런 도구가 없다면 흰 종이 하나에 그림을 그리며 대화를 나누어도 좋겠어요. 서로에게 좋아하는 음악도 들려주고요. 성경 속에 있는 밤에 관한 이야기들도 묵상하며 네 이야기를 들어보고요. 도착하기 30분쯤 전에는 설레는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시를 적어주었어요. 무엇을 하든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있는 걸 해보세요. 밤다운 밤 속에서 너다운 너를 만나는 밤 기차를 타고 떠나보세요. 당장. 




[Tip] 출발 전, 행선지 선정 : 코레일 홈페이지에 들어가 KTX와 일반열차 시간표를 내려받으세요. 밤 기차가 존재하는 곳인지, 서울에서 직행으
로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요. 그중에서 그저 마음이 닿는 곳을 정하는 거예요. 밤 기차 자체가 매력적이니까 어디든 괜찮아요. 새마을호가 노선도 많고, 시간대도 다양해서 움직이기가 편해요. KTX는 이동시간이 비교적 짧고, 기차 내 환경이 쾌적하지만 빨리 가려고 기차를 타는 게 아니니까 굳이 탈 이유가 없어요. 게다가 어딘가 낡고 불편한 맛이 있어야 해요. ‘내가 어딘가로 가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줄 물리적인 떨림도 필요하거든요. 아! 무궁화호는 어디를 가든 새마을호보다 1시간 30분은 더 걸린답니다. 
저는 새벽 3시 25분. 나주에 도착했어요. 숙소 주인분이 새벽에 문을 열어주기로 약속해서 다행이긴 했지만, 새벽 2, 3시는 일출을 보기에도 쉬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에요. 되도록 자정 전에 도착하는 밤 기차를 타는 게 좋아요. 대도시가 아닌 곳에 도착하면 갈 곳 없이 방황하기 쉬워요. 새벽에 도착해서 일출을 보려 한다면 일출 시간과 기차 시간을 잘 조절해서 간격을 최소화하세요. 기차역과 일출 장소가 가깝다면 더욱 좋겠지요. 
좌석선택: 제가 탄 10A,B 좌석은 스피커 바로 옆이었어요. 역이 가까울 때마다 나오는 방송은 대화를 힘들게 해요. 되도록 피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