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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TV 상자 펼치기

TV 상자 펼치기 2 | 진짜 어머니를 보고 싶다

이런 말이 있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하지만 요즘 TV 드라마엔 한 마디 더 붙여야 한다. ‘시어머니는 못됐다.’

선과 악, 양극단의 어머니


KBS <엄마가 뿔났다>의 정현(기태영)의 어머니(장미희)는 정현과 결혼하려는 영미(이유리)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헤어지는 게 어떻냐.”고 말한다. 영미의 집안이 변변치 못하다는 이유다. 또 MBC <내 인생 마지막 스캔들>의 선희(최진실)는 남편(김병세)과 결혼 뒤 어려운 살림살이를 떠맡는다. 남편의 사업이 망하자 보험금이 수술비보다 더 많이 나온다는 요실금 수술까지 하며 돈을 벌려 한다. 하지만 그의 시어머니(김형자)는 선희에게 “니가 능력이 없으니까 내 아들이 고생한다.”며 그를 타박할 뿐이다.
‘악역’ 노릇을 하는 시어머니의 반대편에는 주인공의 친어머니가 있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정현의 어머니는 악역인 반면, 영미의 친정어머니(김혜자)는 자식 걱정 밖에 모르는 따뜻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 <행복합니다>와 <내 인생 마지막 스캔들>에서 여주인공들에게는 어머니가 없다. MBC <겨울새>에서 영은(박선영)의 시어머니(박원숙)가 아들은 끔찍하게 아끼면서 임신한 며느리를 끊임없이 괴롭혀 혼절하게 만들 만큼 악독하게 묘사되는 반면, 영은이 고아로 설정된 것은 드라마 속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의 근원을 보여준다.
여성의 입장에서 시어머니는 남편을 사이에 놓고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는 관계고, 반면 어머니는 여성이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존재이거나, 혹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이상화 되는 그리운 존재다. 이 드라마들 속에서 어머니는 선과 악, 절대적인 모성의 소유자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로만 묘사될 뿐, 현실적인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런 작품들은 어머니와 시어머니라는 두 어머니를 집중적으로 다루지만, 좀처럼 그들의 진짜 인생이나 자식, 혹은 며느리나 사위 사이와 겪는 갈등의 원인은 다뤄지지 않는다.

못된 어머니, 인자한 아버지
<엄마가 뿔났다>에서 정현의 어머니는 지극히 속물적인 인간으로 묘사되지만, 그는 남편과 아들과 달리 사회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다. 아들과 남편을 제외하면, 그의 대화 상대는 앵무새뿐이다. MBC <천하일색 박정금>에서 정금(배종옥)의 친모를 밀어내고 돈 많은 정금의 아버지의 아내가 된 여성(이혜숙)은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악행을 멈추지 못한다. 이 ‘나쁜 어머니’들의 모습 뒤에는 남편과 자식 외에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의지할 데 없는 여성의 현실이 있다. 그래서 나쁜 어머니의 캐릭터는 가부장제가 가진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오직 어머니의 문제로 단순화 시킨다. 어머니가 묵묵히 모든 걸 참고 견디면 모두가 행복하고, 어머니가 못되면 집안에 평지풍파가 인다.


반면 이 드라마에서 아버지와 자식들은 착하고 인자하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영미와 정현이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조건 대신 영미의 됨됨이를 본 정현의 아버지(김용건)의 지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정 내부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온화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정현의 아버지가 영미가 시집온 이후 생길 갈등에 대해 책임지지는 않는다. 악한 어머니는 그런 문제를 도외시한 채, 결과적인 부분만을 과장되게 확대해 모든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리면서 시어머니를 모신 모든 여성들, 그리고 부유한 집안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그러나 그건 곧 ‘여성의 적은 여성’이고, ‘여성은 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편견을 고착화 시킨다. 못된 어머니나 모성의 신화에만 기댄 어머니 말고, 현실 속에서 자식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겪는 어머니가 나오는 드라마는 보기 어려운 것일까.

강명석‘대중문화 평론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밥이나 먹고 살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자신이 대중문화 평론가로 불리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며 살고 있다. 한국일보 문화부 객원기자나 매거진t 편집위원 등으로 불리는 게 더 마음 편하다고. 이러나저러나 대중문화 작품에 관한 리뷰를 쓰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인 일용직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