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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손 안에 새로운 세상과 만나다 - 스마트폰 사용기

한 마디로 난리였다. 오랜만에 들쭉날쭉한 스케줄을 맞춰 한 자리에 모인 대학 동기 모임. 한 녀석의 아이폰 자랑에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고, 우쭐해진 녀석은 아이폰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이것도 되네, 저것도 되네, 이렇게도 되네, 저렇게도 되네. 연신 침을 튀기며 아이폰을 찬양하는 녀석의 말을 경청하며 친구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이폰을 쓰다듬었다. “야, 고놈 참 용하네~” 참나, 백만 년 만에 만난 동기모임의 결론이 그거였다. 마치 애플사영업사원이라도 된 듯 신나하던 녀석이 그렇게 못마땅할 수가 없었다. 글 정미희

스마트폰 전성시대
1990년대 중반, 사람들이 핸드폰 때문에 컴퓨터가 사라질 거라는 예언을 했을 때, 나는 ‘설마~ 손바닥만한 핸드폰이 컴퓨터의 기능을 대신해봐야 얼마나! 그래도 컴퓨터는 컴퓨터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0년 바야흐로 스마트폰 전성시대가 찾아오고, 웬만한 넷북을 능가하는 새로운 기종이 날마다 등장해 서로 비교하기도 벅찰 정도인 걸 보니 내가 얼마나 디지털적 센스가 없는 인간인 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수많은 스마트폰들은 결국 아이폰과 아이폰이 아닌 것으로 구분된단다. 휴대전화와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s·개인정보단말기)의 기능을 결합한 이스마트하다는 핸드폰을 안 가지고 있을 때도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았는데, 누군가는 안 가지고 있으면 ‘루저’로 취급받는 것 같다고 한다. 들어보니 가지고 있어도 다재다능한 활용방법을 모르면 돈 먹는 애물단지가 된다던데….

스마트폰 사용자 대열에 들어서다
하지만, 핸드폰이라는 물건을 소유한 후로 번호 한 번 안 바꾸며 2G 세계에 만족하던 내가 보기에도 스마트폰이 참 신통방통하긴 했다. 내가 가장 끌렸던 기능은 바로 지도기능. 알아주는 ‘길치’인데다 공간지각능력이 제로에 가까운 나에게 목적지로 가려면 지하철 역 ‘몇 번 출구’로 나와야 하는지를, 콕 집어서 알려주는 핸드폰이 생긴다면! 순간침이 꿀꺽 넘어갔다. 마치 귀중한 정보라도 알려주듯 ‘3번 출구야. 넌 매번 물어보더라.’하던 친구나 처음에는 자상하게도 개찰구 앞까지 마중을 오더니 나중에는 한숨 푹푹 쉬며 출구 번호를 말해주던 전 남자친구까지 떠올리니 당장 내게 꼭 필요한 물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의 구미를 확 당기는 것이 있었으니, ‘Sleep Cycle alarm clock’이라는 아침잠을 깨워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폰의 중력센서 기능을 활용해 개인의 수면상태를 기록하고 적절한 기상 시간에 맞춰 알람 기능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를 아이폰에 다운받은 후 침대나 베개밑에 놓고 알람 시간을 설정하면 잠이 깰 즈음에 은은한 알람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단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불치병이라고 여기며 포기했던 ‘길치’에 이어 천하
무적 ‘아침잠’도 물리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마음으로 아이폰을 들었다 놨다하기를 수백 번, 꿈에서도 아이폰을 만났다.

아이폰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나는 마침내 아이폰을 통해 신세계를 만났다. 이제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몇 번이고 낯선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야했던 불편함이 사라진 것은 당연지사. 무선데이터 요금을두려워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트위터에 실시간 댓글을 달 수 있다. 길가다 급한 업무 때문에, 조바심치며 PC방을 찾고, 담배냄새 자욱한 그곳에 들어갈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물건의 바코드만 찍으면 저절로 가격비교를 해서 가장 물건을 싸게 파는 곳을 알려주고, 구매사이트로 바로 연결까지 해주다니 윤택한 생활을 위한 필수품이 아닐 수 없다. 작년 11월 28일, 아이폰의 국내 출시 전 60만 명의 예약 가입자가 있었다는데 그 사람들은 보기도 전에 이렇게 좋은 줄 어떻게 알았지? 그런데 이렇게 핸드폰으로 부담없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이폰의 기술력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나라 핸드폰 업체들이 Wi-Fi(와이파이·무선 데이터 전송 시스템)를 수출용에는 장착하면서 국내용에는 장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폰에는 생산할 때부터 탑재되어 있어 이 모든 게 가능하다니, 국내 업체들은 그동안 그 비싼 핸드폰에 그거하나 장착 안 해주고 뭐했는지 모르겠다. 항간에 들리는 말로는 데이터 통화료 수익 때문에 통신업체에서 아이폰의 국내출시를 2년 6개월 동안이나 계속 미루게 했다는 것. 아이폰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나라 스마트폰 업체들은 가격 인하와 보조금 지급을 통해 고객들을 끌어드리려고 했지만, 아이폰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지 않는가. 아이폰에 사용되는 주요부품들이 삼성전자 것이라는데 국내 업체는 왜 아이폰 같은 제품을 못 만드는지 아쉽다. 하긴 핸드폰의 화질이나 화소, 멀티미디어 재생능력정도, AS면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더 뛰어나지만, 스마트폰의 경쟁력인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응용소프트웨어)의 차이로 승부가 난 것이라고 한다. 77개국15만 명이 사용하는 아이폰 앱스토어(응용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서비스)엔 매달 천 개 정도의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이 등록되는 등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삼성 앱스토어의 경우 현재 천 개 정도가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컴퓨터 환경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가 이용하기 쉬운 사용환경을 만든 단순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이 아이폰의 힘이다. 아무튼 이제까지 이렇게 다정다감한, 게다가 다루기 쉬운 장난감은 없었다. 컴퓨터보다 더 재밌는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베스트 프렌드, 앞으로 더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