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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친구, 반려동물

동물전문출판사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라는 책이 있다. 일본의 동물보호활동가 고다마 사에가 동물보호소에 찾아가 죽음을 기다리는 동물들을 찍은 사진을 모아놓은 것이다. 작가가 글을 썼던 2005년 당시, 일본에서는 한 해에 개 16만 4209마리, 고양이 25만 5628마리가 살처분(가스실에서 맞는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과연 일본만 그럴까. 우리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 동물을 맞이하는 태도는 어떨까. ‘반려동물’, 즉 애완동물이 사람의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뜻의 이 개념은 아직 낯설다. 우리는 여전히 동물을 내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물건쯤으로 대하는 건 아닐까. 김보경 씨가 1인출판사 ‘책공장더불어’를 열게 된 이유다.
김주원 | 사진 정미희


나의 반려견 ‘찡이’가 열어준 넓은 세상
혜화동 안쪽으로 들어선 뒤, 완만하게 솟아오르는 경사를 따라 시멘트로 된 오솔길을 걸었다. 높다란 담장 위로 개 짖는 소리 들리더니 진돗개 한 마리가 이내 큼직한 주둥이를 불쑥 들이댔다. 김보경 씨의 자택에 들어섰을 때, 무늬가 얼룩덜룩한 고양이 한 마리가 조그마한 정원에서 얼쩡거렸다. 마중 나온 김보경 씨는 집 안팎을 왕래하는 식구 ‘강이’라고 소개해주었다. 까만 고양이 대장이가 김보경 씨 어머니 품에 안긴 채 우리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노랗고 동그란 눈을 오래 쳐다보는 것도 고양이에게는 실례(?)일 것이기에 얼른 2층 작업실로 올라갔다. 작업실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이 은은하게 울리고 있었다. 김보경 씨는 로큰롤도, 인디 밴드도 좋아해서 격렬한 음악을 자주 틀곤 했지만, 함께 사는 개 찡이 나이를 생각해서 이제는 부러 조용한 음악만 튼다고.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거기다 동물 전문 출판사라니, 이력이 심상치 않을 듯싶었다. “패션잡지 기자를 10년 정도 했어요.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찡이 영향이 컸죠. 예전에는 지나가다가 길고양이 한 마리 본적 없었어요. 그러다 언젠가부터 관심의 폭이 찡이에서 다른 개들로, 개들에서 고양이로 그렇게 조금씩 넓어졌어요. 기자 일을 하면서 몸이 너무 힘들기도 했고요.” 김보경 씨에게 새로운 생활을 가져다 준 찡이가 어떤 아이인지 보고 싶었다. 요즘 하루에 5시간 정도 깨어 있다는 찡이는 낮잠 자다 억지로 일어나 살짝 불만스러워 보였다. 안타깝게도 찡이는 1년 사이에 백내장으로 눈이 멀어버렸다고. “찡이는 작은 언니가 회사 다닐 때 직장 동료가 데리고 온 애였죠. 처음엔 엄마가 반대했지만, 찡이가 아장아장 걷는 것에 반해버렸어요. 17년을 같이 살았으니, 집안 대소사는 다 봤죠. 막내 동생 결혼할 땐 엄마가 ‘찡이, 결혼식장에 안 데리고 가니?’라고 말해서 저까지 놀랄 정도였다니까요.(웃음) 눈이 안 보이니까, 찡이도 변하긴 변하더라고요. 그래도 금세 적응하는 걸 보면 또 놀랍고요. 온 식구들이 찡이를 나이 드신 부모모시듯 수발해요. 찡이도 가족이니까요.” 동물을 기른다는 건 결국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걸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길들인다는 것의 책임

하지만 김보경 씨도 여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과 즐겁게 사는 것만으로 만족했을 수도 있었을 게다. 그녀가 관심을 찡이 바깥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은 언니가 기르던 개 두 마리가 세상을 뜨던 무렵. 마침 <TV 동물농장>에서 죽은 개와 이야기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이야기를 접하고,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동물의 마음에 대해서 어렴풋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막상 책을 찾아보려니까 제가 읽고 싶은 책은 없는 거예요. 동물 관련 책이라고 해봐야 코를 만졌을 때 축축하면 건강하다는 수준이었죠. 그래서 낸 첫 책이 <동물과 대화하는 여자>였고, 호응도 좋았어요.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구조되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개 이야기인 <고마워, 치로리>도 독자 분들이 많이 사랑해주신 책이고요. ‘짐승책’은 절대 안 될 거라는 말도 들었고, 첫 책은 다른 걸 찍고 나중에 하고 싶은 걸 내라는 조언도 들었지만, 처음부터 큰돈을 원하진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출판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블로그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보면 우리나라의 애견, 애묘 인구도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애견(애묘)인과 출판 수익이 연결되지 않는 걸까. “우리나라는 다섯 가구 중 한 가구에서 반려동물을 길러요. 미국은 두 가구 중 한 가구니까 그쪽에 비하면 적은 편이죠. 일단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적고, ‘동물책’에 대한 수요가 적다는 게 한 몫을 하는 것 같아요. 또 개를 기르는 분들 중에서는 아직도 개를 가족이 아니라 가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기도 하고요. 저희 책은 고양이 기르시는 20, 30대 여성들이 주 소비층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기르기 때문에, 고양이 관련 커뮤니티는 반려동물 자랑과 분양 등으로 무척 활성화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한 때의 유행이 아닌가 싶은 걱정도 슬며시 들었다. “유기견이 가장 많았을 때가 2003년에서 2004년이었어요.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을 미디어가 잘 캐치해서 대중에게 보여주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동물을 분양받은 거예요. 그 때 시츄가 유행해서 많이 팔려나갔죠. 그러다 1, 2년 뒤에 그 시츄들이 버려진 거예요. 고양이도 그렇게 될 것 같아 걱정됩니다. 특히 20, 30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처럼 큰 변화를 겪잖아요? 이 때 동물들이 버려질 가능성이 높아요. 많이들 고양이는 밖에 내놓아도 잘 살 거라고 생각하지만, 집고양이가 길고양이로 살아남을 확률은 10%도 안 돼요.”
신장이 약한 고양이의 특성 때문에 길고양이들은 염분이 많은 음식찌꺼기를 먹으며 살다가 결국 신장에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이건 생명에 대한 시민의식의 부재를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어린이 교육이 중요해요. 솔직히 유기동물에 대한 것까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 같은 책을 낸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 고양이도 기르다 보면 나이를 먹기 마련이고, 사람도 그에 따라 같이 성숙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고.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아무리 성견들을 중성화시켜도 개 농장에서 나오는 강아지들이 너무 많아서 공급조절이 안 되는게 큰 문제예요. 유기동물에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가 끼어있는 거죠. 미디어도 더욱 책임감을 느껴야 해요. 요즘 <TV 동물농장>은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위기감을 느꼈는지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유기동물 문제로 초점을 옮기더라고요. ‘동물보호법’ 이야기를 대중화시킨 것처럼 긍정적인 효과도 있죠. 그래도 아직은 이슈 쫓아가기에만 급급한 것 같아요.”

‘책공장더불어’의 책들
동물과 이야기 하는 여자 | 고마워 치로리 | 채식하는 사자 리틀 타이크 | 나비가 없는 세상 | 펫로스 반려 동물의 죽음 |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

1인 출판독립군? 반려동물 연합군 !
많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 시작한 일이지만, 그녀의 이런 생각을 함께 공유하며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을 고쳐나가려는 사람들을 얻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조금은 있겠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신해요. <펫로스 반려동물의 죽음> 같은 경우에는, 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 반려인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은 걱정도 들었어요. 책을 보면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과 대화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읽은 반려인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저를 ‘1인출판 독립군’이라고 부르는데, 저더러 왜 혼자냐고, 우리 독자들이 있으니 ‘반려동물 연합군’이라고 응원해주셔서 힘이 나요.” ‘책공장더불어’는 동물책을 내는 회사이면서 재생지로 출판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그 고충도 만만치 않았을 성싶다. “친환경, 이런 거 싫어할 사람 없지만, 정작 재생지로 책을 뽑는 것 자체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어요. 처음 책 낼 땐 일반 종이를 썼다가 두 번째 책부터는 재생지를 쓰기로 했어요. 그런데 재생지는 정해진 규격이 없다보니까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같은 단
체에 계속 물어보면서 우리 책에 맞게 고쳐나갔어요. 저는 혼자서 출판하니까 그나마 쉬운 편이었던 거 같아요. 큰 출판사는 종이 질 문제나 책의 보전성 문제 때문에 재생지로 책 뽑을 엄두를 못 내더라고요. 그나마 작은 출판사들이 움직이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요.” 다음 기획으로는 생식, 마사지 등으로 각광받는 ‘대체수의학’ 관련한 책을 낼 거라는 김보경 씨. 앞으로 계속 반려자들과 반려동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내고 싶다고 한다.

다시 정원으로 나서는데 강이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이쪽을 마치 배웅하듯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것은 강이나 나나 마찬가지일 게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태초에 명하신 하나님 말씀을 남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름을붙이고 다스리라는 말씀은 내 물건으로 알고 멋대로 다루라는 게 아니라, 그 지음 받은대로 ‘함께’ 생육하고 번성케 하라는 뜻이 아닐런지. 돌아가는 길에 나도 강이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그들의 주인이 아닌, 다같이 지음 받은 존재로서.

책공장더불어 블로그
http://blog.naver.com/animalbook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

고다마 사에|책공장더불어

인간에게 버림받고 보호소에서 죽어 가는 유기견과 길고양이. 그들의 눈동자와 소리없는 목소리가 들려주는 생명사랑 이야기. “이 책에 실린사진 속 동물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문구가 흑백사진의 명암과 겹치며 독자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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