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실려 오는 들녘의 향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햇볕이, 가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 바람은 방향을 바꿔 불기 시작하고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해져 겉옷을 입지 않으면 감기가 걸릴 것 같은 날씨다. 산과 들에 잎들은 낙엽이 되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밭에는 겨우내 자랄 작물을 심고 관리하는 일들로 분주하다.
완두콩은 보리 심을 때 심는 콩이라 하여 보리콩이라고도 하는데 모내기 전 봄에 싱그러운 초록색 콩을 수확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아직 손톱만한 잎이 겨우 피었지만 잎이 풍성해지고 줄기가 자라 꽃을 피워낼 것을 생각하면 참 설레기도 하고 곧 내릴서리가 걱정되기도 한다. 서리가 좀 천천히 와서 콩들이 좀 편하게 겨울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벼 수확도 끝나지 않았고 마늘과 양파도 심어야 해서 할 일이 가득한데 내가 좀 더 부지런해지고 땅과 풀과 벌레들의 마음을 잘 아는 농부가 되어야겠단 생각이 드는 가을이다.
요즘은 일을 마치고, 늦은 오후에 종종 산과 들로 산책을 가는데 해질녘 노을빛이 참 따뜻하고 좋다. 일을 하다가도 노을 지는 하늘이 너무 예뻐서 하던 일을 젖혀두고 사진을 찍기도 하는데 그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찍으면 어느 정도 담아낼 수는 있지만 그 섬세한 느낌까지는 담을 수 없기에 조금 아쉽기도 하다. 우리 마을에는 감과 밤을 많이 키우는데 수확하고 남은 것들이나 일손이 모자라 그냥 내버려둔 나무가 많다. 산책을 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밤을 줍고 감을 따 먹기도 하는데, 가을 중턱에서 먹는 홍시는 정말 달콤하다. 끈적거리는 붉은 속을 목으로 넘기자면 기분까지 좋아진다. 이제 곧 서리가 내릴 것이고 더 추워지면 채소들이 동해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오늘을 즐기며 부지런히 일해야 할 것 같다.
김진하|지리산 산청 골짜기에서 흙냄새 풀냄새 맡으며 농사짓는 서툰 농사꾼. 민들레공동체에서 생활하며 민들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일하며, 매일매일 농사일로 머리가 꽉 차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느낀 대로 사는 고민 많고 속편한 스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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