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 있는 자를 일으켜 세우는 일을 예수님이 이땅에서 삶으로 보여준 것이라면, 일어서는 데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를 기뻐했을 터이다. 동시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넘어뜨리는 일을 그분이 행했다면 그들에게는 미움을 받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미움을 받으며 사랑을 받았고, 존경을 받으며 천대를 받았다. 어쩌면 반가우며 반갑지 않은 일들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따르는 숙명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태백에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탄광촌! 그곳에서 소달교회를 세우는 일을 통해 예수를 따르는 한만경 목사를 만났다. 글·사진 김준영


소달교회가 있는 이곳은 서울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국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최대 석탄지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으로 가려면 꽤 각오를 해야 한다. 곤궁한 영혼의 처지인데도 여러 곳에서 불러주는 데 쉽게 결정하기가 어렵다. 한 번 도시, 서울로 가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마음도 바쁘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무엇인가 20명 남짓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아이가 소망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교회 앞에 소달초등학교가 있는데 전교생이 20명 정도다. 여기 고사리 지역 사람들은 이곳보다 더 큰 지역인 도계읍으로 대부분 자녀들을 보낸다. 그래서인지 이곳 아이들에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내겐 그게 중요해 보였다. 아이들이 희망이라는 말에 동감한다 그렇다. 어른들, 노인들 모두 중요하다. 그들을 위해 목회를 해야 하지만, 그들이 소망이고 희망은 아니지 않나. 바로 말하면 곧바로 반응하고 변화를 나타내는 존재는 아이들이다. 예수님도 넘어진 자라고 취급받았던 이들을 일으켜 세우려 이 땅에 오시지 않았나. 그리고 그들을 세워주셨다. 바로 아이, 창녀, 세리, 죄인들이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마음에 있었다. 탄광촌 아이들은 여러면에서 넘어져 있는 아이들이다. 그분이 하신 일을 그대로 따르고 싶은 거다.
탄광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현장이 궁금하다 탄광촌의 삶은 과거와 다르게 꽤 현대화했다. 과거처럼 일이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은 석탄이 많이 나오질 않아 땅속으로 더 많이 들어간다. 1000여 미터 땅속으로 들어간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뜨거워진다. 멘틀mantle로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니까. 칠흙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40도 가까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머리의 불빛 하나 의지해 일하니 사람의 진이 다 빠진다. 땀을 다 빼고 나오는 거다. 그래서 도계 음식이 다 짜다. 나오면 지쳐서 몸에다 술과 짠 음식을 집어 넣는다. 날카로워진다. 당연히 자녀들과 시간을 함께 보낼 수가 없다. 게다가 폐광 지역하면 막장인생이라는 말이 떠오르듯 사람들이 정말 거칠다. 남에게 세게 보이려고 한다. 날카로움이 가정에서도 드러나니 망가진 가정도 많다. 아이들은 버림 당한 것처럼 큰다. 보고 듣는 것이 거칠고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말들 뿐이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싶고, 아이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내겐 별다른 재주가 없지만 노는 것은 잘한다. 레크레이션도 잘 하고(웃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그네들의 삶이 교차하는 듯하다 그렇다. 둘러보라. 이곳은 어마어마한 정원이다. 그것도 나를 위한. 하루중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정원을 하염없이 보고 있을 때가 있다. 저쪽 산을 쳐다보면 내 입술엔 시나브로 찬양이 흘러나온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 그런데 어느 때부터 자연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보였다. 계속 보다 보면 변화를 눈치챌 수 있는데, 벌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석이버섯돌에서 자라는 버섯도 사라졌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좋은 것들도 서서히 인간들의 탐욕으로 치명타를 입은 듯하다. 한치 앞을 못보는 것이다. 책임이 클 것이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부끄럽다
그렇다. 서울 사람들은 똑똑한 듯해도 헛똑똑이다. 이쁜 채소, 생채기 없는 과일만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약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렇게 안나온다. 깔끔하고, 유기농만 찾아도 실제로 식탁에 오르는 재료는 농약 투성이 과일, 채소다. 점점 기후도 변하지만 거기엔 우리 주변의 작은 생물까지 타격을 입고 있는 오늘이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 신음이 들리는 듯해 너무 괴로울 때가 있다. 한국교회의 신음도 감지하고 있을 듯하다 도시에서 목회하던 삶에서 떠났다. 우리나라 민족은 학구열보다 높은 것이 종교성이다. 근데 자세히 보니 타부, 즉 미신적 요소가 크더라. 이게 종교성과 결합하는 이유는 복과 관련이 깊다. 이 복에 대한 강조가 한국민들을 뒤흔든다. 복을 받으려 교회 오면 문제는 끊이지 않을 뿐이다. 형식과 폼만 남았다. 부흥과 성장이라는 단어 아래 숨어 있는 겉 껍데기들이 난무하다. 견디기가 힘들었다. 교회는 나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만나 변화되었는지에 대한 감격적 반응 아닌가. 그 반응을 삶으로서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 것이 교회가 아니겠는가. 도시에 있을 때 심방을 했던 적이 있다. 어느 순간 내 심방에 감사하다고 주려고 돈을 쥔 손에 내 눈이 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 바로 짐을 꾸렸다. 더 이상 나는 그 교회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만큼 강하지 못한 증거이기도 하겠다.
한참 감리교가 ‘길 잃은 목자’ 사건이라는 세간의 주목을 받을 때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안다 그땐 젊었다. 마침 감신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닌 땐 굴뚝에 연기가 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은 세상의 사회적 윤리와 하나님 나라의 윤리 두 가지에 자신의 몸을 부착하여 맞게 살아야 한다. 한가지만 중요하지 않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그 일을 당시 감리교 총회장이 범한 것이다. 그 후에“ 꼴통 김**목사”라는 글을 또 썼다. 꼴뚜기 꼴짜에 돈 통자를 붙인 것이다. 목사로 인하여 세상이 이로워야 하는데 돈만 아는 꼴통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써가며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전화통 불 났었다(웃음). 그 시점으로 아내가 말렸다. 자꾸 지적하고, 정죄하면 내 영혼만 상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영웅 되고 싶으냐? 그게 뭐가 중요하냐, 자신의 영혼이 중요하지’하더라. 그 후 내 영혼의 상태를 돌아보고 요즘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 그리고 이곳 아이들만 생각한다. 촌동네 필부 목사가 떠든다고 뭐 달라지지도 않고. 그만큼 영의 상태가 민감했던 것 아니겠나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내겐 명확한 해답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살면 살수록, 지내면 지낼수록 모르겠다.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을 회복하여 내 자신과 내게 주어진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그곳이 천국 아니겠나. 그런 상태가 내가 추구하는 영성이다. 하나님의 관점, 시선 이것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자신을 촌동네 필부라 칭하는 한만경 목사. 그가 모은 이곳을 향한 두 손이 더 간절한 까닭은 칠흙같이 어두운 막장과 같은 현실 때문은 아닐까. 그럴수록 더 치솟는 그의 삶이 더더욱 아름다운 까닭은 아마 그만큼 정결함을 추구하는 그의 영성 때문일 것이다.

소달교회
강원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114
033-541-8174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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