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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UALITY/두 손을 모으다

사람이 책이다 l 김기현 목사

사람이 자신의 삶과 생각을 드러내는 일 중 가장 정돈된 형태가 글일 게다. 그렇게 정제한 생각은 손을 타고 종이라는 매체와 인쇄라는 과정을 통해 손과 손을 거쳐 독자의 눈에 읽힌다. 그렇다면 글을 쓰고, 또 읽는 행위는 책을 통해 그 둘이 일대일로 만나는 장이자 엄숙한 시간이라 하겠다. 독자는 저자를 만나고, 그 사람의 삶을 만나는 과정이 읽기의 형태고, 저자는 독자의 삶에 다가가 말을 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만남을 통해, 숭고함과 거룩함으로 빠져 오히려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때로는 변화를, 때로는 반역을, 때로는 성숙을, 때로는 개혁을 꿈꾼다.
글쓰기를 통해 독자의 삶에 가 닿기를 주저하지 않고, 함께 글을 쓰며 자신의 삶을 정돈하는 작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온전해지는 삶을 꿈꾸는 로고스서원 김기현 목사를 만났다.
글·사진 김준영

 

목사로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목사가 가장 잘하는 것이 책 읽기이고 가장 하지 않
는 것이 또 책 읽기다. 바꿔 말하면, 목사가 가장 글쓰기를 잘해야 하는 자리이지만 동시에 글쓰기를 가장 어려워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꾸 책 읽다 보니까, 뭔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 글쓰기였다. 쓰신 책을 보니까 단순히 책을 많이 읽어서만 글쓰기를 한 것은 아닌 듯한데(웃음) 그렇나?(웃음) 개인적으로 목회를 시작하며 고통 경험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이 삶에 와 닿으면 거기서 도피하려고 하는 것이 일차적 반응이다. 내게 그 도피가 독서이자 글쓰기였다. 현실적으론 재정적인 문제도 있었다. 글을 쓰고 하는 일을 통해 작은 교회를 섬기는 내게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다. 글쓰기가 도피처이고 동시에 구원처라는 말이 흥미롭다 지금에서야 미소가 나오지만 당시에는 내게 독서와 글쓰기는 깊은 굴로 들어가는 도피처와 같았다. 글쓰기는 읽기와 맞물려 있다. 고통이 내 삶에 현실이 되어 마음속에 분노, 의심, 슬픔 등이 가득차면, 이내 그것들은 내 마음을 지배해 버린다. 멍하게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 마음에 내 온 몸이 장악당한다. 거기서 무엇인가를 읽고, 그 읽은 것을 두고 어떤 글을 쓰려고 집중하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고통 경험을 타자화할 수 있다. 피난해서 저자를 만나게 하는 순간이니까. 그것이 나를 살리더라. 당시에는 도망가고 싶었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 과정을통해 내 은사가 새롭게 드러나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책도 내게 되고 작가의 이름도 받았으니 구원처이기도 한 것이다. 구원처라 함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말이다. 어찌 보면 새로운 재탄생, 재창조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는데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을 창조자, 즉 Creator라고 부름과 동시에 또한 Auther라고 부를 수 있다. 대문자 A는 하나님인 대 작가, 조물주로 부르고, 우리 인간은 소문자 a인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자라고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글인 성경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구원은 우리를 재창조하는 놀라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 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작은 예수로서 말과 글을 통해 내 자신이 창조되고, 내 자신이 구원을 받는 것아니겠나. 창조는 새로운 영적 삶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내 안에 글쓰기에 대한 창조적 능력이 있었는지, 개발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시골에서 자란 내가 어렸을 때 책을 얼마나 읽었겠나. 대학 입학 후 학습하듯 책을 읽었으니 책 읽기, 글쓰기에 대한 첫 만남이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글 쓰는 작업이 내 삶을 새롭게 창조한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삶에 대한 창조적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명을 부여 받은 것이다. 바로 글쓰기다. 쓰신 글 중 피난처일 때 쓰신 글에는 이런 과정이 담겨 있겠다 그때 쓴 책의 이름이 <공격적 책 읽기>2004이다. 상당히 공격적이다(웃음). 또<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2008이다. 고난이 질문을 만들지 않나. 책 읽고, 글을 쓰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글쓰기는 내 삶의 문제에 직면하게 하는 힘이 있다. 글을 쓰면 은근슬쩍 넘길 수 없는 것이다. 고통을 직면하고, 통과하고, 극복하려는 일련의 과정이 글쓰기를 통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치유도 일어나고, 만남도 일어나고, 지적 성장도 일어나고 하는 것이다.

 


글쓰
기학교를 시작한 계기는 책을 한 권 냈다. <글쓰는 그리스도인>2009. 이 책을 내며 글을 쓰는 방법을 이야기하지 말고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실제 사용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책을 쓰자고 생각하여 워크북을 함께 펴 냈다. 그것을 토대로 실습과 모임을 만들어보았다. 12주 과정으로 글쓰기 학교로 진행했는데, 이게 전인적이었다. 요즘 글쓰기는 치유만, 혹은 인문학 지성만 추구한다. 그런데 해보니까 모든 것이 같이 일어나더라. 치유, 지성, 관계, 공동체 등이 함께 일어나더라. 너무 흥미롭고 좋았다. 예상치 못하게 더 하게 되었다. 글쓰기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현대인들의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려는 관심사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층이 가만히 보면 40-50대 층이 의외로 많다. 그들에게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라는 질문을 처음 하는데, 대부분 나를 알고 싶다고 대답한다. 계절로 따지면 긴 인생에서 가을에 해당한다. 사색으로 들어가는 시간이다. 편차는 있겠지만 경제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아이들은 떠나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어렸을 때는 책도 읽었었는데, 혹은 내가 뭐하고 살았는가라는 감정과 맞닥뜨리게 되고, 남은 생애 어떤 일을 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한다. 소음에 귀를 닫고 자신의 존재를 보고 싶은 거다. 이들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자리, 즉 자신의 영성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글쓰기의 중요한 기능이겠다 그렇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그대로 나온다. 내 안에 있던 것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함께 나누면 내가 그런 모습이 있었는지 놀라는 경우가 생긴다. 글쓰기는 삶이다.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은 다 썼다고 펜을 내려 놓고 글을 읽으면 아무도 알아 들을 수 없는 글을 쓴 사람도 많다. 글쓴이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의 생각뿐 아니라 논리, 사상, 어휘, 감정, 표현 등을 다양하게 읽어내고 그것을 다시 자신의 글로 써내는 과정을 통해 사고에만 머무르던 것을 내면화 과정을 거치게 하고, 결국 삶의 변화를 추구하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온전한 글쓰기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 리빙라이브러리’처럼 사람이 곧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책을 읽느냐 이 세 가지는 가장 강력하게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리빙라이브러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우리 글쓰기학교에서도 시작했다. 책을 통해 책 너머 사람을 만난다면, 직접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인터뷰하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글로 쓴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만나는 행위이자,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면 일기를 쓰는 것이 가장 손쉽고도 강력한 방법이라 하겠다. 꾸준히 일기를 쓰면 거기에 장점이 많다. 일기는 쓸거리가 많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이다. 잘 아는 것을 쓸 때 가장 좋은 글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일기를 꾸준히 쓰면 뭘 쓸까 고민하고, 생각하고, 관찰하고, 바라보게 된다. 작은 소리, 작은 움직임, 작은 변화에 주목하고, 그곳에 의미를 준다. 글로 표현하면 너무 좋은 글이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가꾸는 것이 되고, 그 곳에 말씀이 자리를 잡으면 영적 삶이 풍요로워진다.

 

글 쓰는 그리스도인,
김기현 | 성서유니온선교회

 

내 안에 야곱 DNA
김기현 | 죠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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