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만드신 한 인간의 본디 그 모습과 그 심성, 그리고 그 형상을 마음 속으로 그리고 그 심상을 손으로 빚어서 어떤 한 물화한 형체로 드러낼 수 있다면, 그 작업의 순간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까. 철판 위에 드로잉을 한 후, 순간의 집중을 통해 자신의 감성을 최대한 증폭해 그 형상을 빚어낸다면 아마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창조적 영성이 발현되는 놀라운 순간이리라. 아마도 그 순간의 희열은 그 예술가에만 허락된 축복이 아닐까? 
그렇게 탄생한 인간의 군상,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자갈이 깔린 교회 마당에 놓여 있는 교회. 멀리 홍천의 동면 교회를 찾아가 조각가이자 사모, 그리고 한 여자인 정혜례나 사모를 만났다. 글 · 사진 김준영


멀리 이곳 시골에까지 온 이유가 있나. 남편을 잘 만나서다(웃음). 남편이 시골 목회에 뜻을 품고 처음 영월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도시에서 자란 내게는 꽤 낯설었지만 감사하게도 시골이 마냥 좋았다. 예술적 감성이 풍부해서 그런지 교회 마당, 집마당에 피는 풀 한 포기, 잡초 하나도 뽑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다. 너무 푸릇푸릇한 것이 이쁘고, 게다가 제각각 자기 형상을 그대로 담고 피어나는 것이 사랑스럽고. 자연, 땅, 흙 이런 것들이 도시에서 처음 온 여자에겐 참 좋은 선물이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그렇게 좋아할 수만은 없는 위치였을 텐데, 사모라는 직함이. 처음에는 사모로서 해야 할 일이 도시 목회보다 비교적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골 생활이 그냥 좋았다. 그러다 교회를 옮겨 여기 홍천 동면교회에 오니까 사모로서 해야 할 일과 또 그에 걸맞은 행동을 요구하는 시선이 꽤 무겁다는 것을 느꼈다. 남편이 제게 사모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에서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말을 듣게 생기지도 않았으니까(웃음). 내 태생이 예술성을 품고 있는 데다가 자아가 강하니까. 이런저런 곳에서 기대하는 사모라는 상에 부합하게 행동하려고 노력을 참 많이 했다. 노력하니까 아마 그만큼 힘이 들었나 보다. 

정혜례나의 이름은 잃어버리고 누구의 남편, 교회 사모라는 이름이 더 컸겠다. 그렇다. 그러다 우울증이 왔다. 창의적 욕구를 해소할 수 없으니까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는 아이를 낳고, 아이들 놀이감, 도구 등을 모두 직접 만들었다. 하나부터 열 가지 모두 다. 나무토막을 서서 다 자르고 붙이고, 페인팅하고, 부직포 등등 자르고, 또 옷까지 다 만들며 에너지를 쏟았다. 네 명을 다 그렇게 했다. 그런데도 넷째를 낳고 나서는 더 심한 우울증이 찾아 왔다. 친구도 끊고 살았으니까. 과거가 없는 것처럼 살았으니까. 그냥 남편 친구가 내 친구가 되었으니까. 나, 혜례나, 여자로서 내가 완전히 사라진 거다. 

그러하시다면 다시 조소를 한 결정적 계기가 있을 듯하다. 그렇다. 거제도에서 카리스마타수도원을 운영하시는 박효섭 목사님이 집회 차 오셨다가 돌아가셔서는 내게 책 한 권과 함께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그 편지에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으면 죄’라는 내용이 나를 다시 깼다. 내게는 다시 나로서 살 수 있게 한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정혜례나 그 이름으로, 인간, 여자로서 내 존재의 이유를 깨달은 거다. 전시회 관람에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하고 싶었고, 그 순간이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강원대대학원에 진학했다. 서울대 졸업하고 거희 10년을 지나 다시 시작은 했는데, 참 막막했다. 아무 조건도 갖추지 않은 상태였으니. 

그리고 철판을 만나신 건가. 그렇다. 뉴욕에 다녀온 후, 무작정 작품을 내겠다고 했고, 참 부끄럽게도 첫 작품이 지금 교회 앞마당에 있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모티프다. 철판이 단단해서 어렵지만, 오히려 쉽다. 첫 작품이 어설펐을 텐데, 전시회를 여니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너 신났구나, 참 경쾌하다고 했고 동시에 부드럽다는 말도 해주었다. 지금은 덜하지만 그래도 서울대는 비교적 아카데믹한 학풍이 있다. 틀이 좀 센 편이라고나 할까. 대학시절 그게 답답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도 표현된 것을 보면 말이다. 

궁금한데, 정혜례나는 본명인가. 그렇다. 어머니께서 특별한 삶을 살라고. 당시에 세 자는 흔하지 않았다. 은혜 혜, 예도 례, 아름다울 나. 좋은 건 다 집어 넣으셨다. 어머니가 신앙인은 아니셨는데, 성당에 다니시다가 혜례나가 좋아보여서 한자를 대입하신 듯하다. 

사모, 엄마, 아줌마, 조각가 다 중요하지만 한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컸겠다. (웃음) 여자로서 산다는 것? 이건 내게 중요한 주제다. 어려서부터 나는 여자로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자라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배움이 많으셨던 것도 아닌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무척 깨어계셨던 것 같다. 어머니 당시에는 여성성은 무조건적 희생을 요구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여성의 이름조차 불리지 않는 시대를 사시며 딸 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했는가 보다. 하지만 참다운 한 개인의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참 힘든 이야기다. 그럴 때 종종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 고민해 본다. 나로서, 여성으로서, 한 존재로서 이 땅에서 주신 그 무엇이 있을 것인데…. 

작품의 화두가 인간의 본성,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참모습을 녹여내는 것인데. 고등학교 화실에서는 이상하게 원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거부감이 크게 들었다. 오히려 몽환적이고 독특한 색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다 뒤늦게 조소로 방향을 바꾸고는 대학생 때는 이쁜 것만 만들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 아줌마, 여성, 이렇게 불리며 살며, 점점 한 여성의 참다운 사랑을 빚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엄마로 불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곧 할머니로 불릴 텐데 난 그것도 좋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몸으로 받아내며 여성의 완성이 있다면 거기로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작품에서 그것을 드러내고 싶다. 시골에 살며 노인들의 주름을 보면 그 속에 담겨 있는 말할 수 없는 미를 느낀다. 지금 흙작업을 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흙작업을 하고 싶다. 모진 세파를 겪고나서 발현되는 여성성과 모성애, 모든 것을 넓은 가슴 안으로 품어 내는 진정한 여성성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싶다. 

‘끌어안음’이 여성성에서 정말 중요한 특성일 게다. 그렇다. ‘끌어안음’, 이것이 바로 발현해야 할 여성성이다. 단순히 온유하고, 희생하는 것이 여성의 진정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끌어안으며 사랑하되 처절할 정도로 사랑하는 진정한 모성애야 말로 참다운 여성의 모습이 아니겠나. 아이를 낳는 다는 것! 이거 축복이다. 

시골에 농사짓는 것도 정혜례나에게 잘 어울릴 듯하다. 농촌에 온 지는 20년 정도 지났고, 농사를 지은 지도 15년이나 지났다. 힘들다(웃음). 시작은 자급자족의 필요성 때문이었겠다. 먹거리 문제도 생각했으니까. 흙은 모든 것을 다 담아도 썩히지 않는가. 모든 것을 다 수용한다. 그런 흙의 특성이 너무 좋다. 비록 힘이 들지만, 그 기쁨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것도 없는 흙에서 싹이 나오다니. 땅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노동을 해서 식물을 거두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다. 

땅은 우리 인간하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참 많이 밟지 못하고 산다. 흙에서 있다 보면 거기에는 에덴도 있고, 쫓겨난 후의 땅의 모습도 있다. 에덴이라는 말은, 냉이, 씀바귀, 민들레, 속새, 질경이 등은 인간이 땀흘려 씨 뿌려 거두는 것이 아니다.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천지에 널렸다. 이것은 에덴이다. 일하지 않고도 먹을 것을 거둘 수 있다. 그런데 상추나 고추나 이런 것들은 내가 힘을 들이고 땀을 흘려서 거두어야 한다. 이건 에덴에서 쫓겨난 땅의 모습이다. 이것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 땅이다. 감사를 배운다. 감사의 영성은 수고로이 일해 번 것으로 감사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주신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내 삶에 그것이 넘쳐남을 보고 감사하는 것이 먼저라고 하겠다. 그러면 땅에 대한 경외심이 흘러나오고, 그 경외심은 자연히 하나님께 가 닿는다. 그 감사를 경험하는 순간은 만물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신성을 만나는 아주 거룩한 예배의 순간이다. 

땅과 먹을 거리는 우리 영성과 관계가 깊겠는데. 그렇다. 땅하고 가까워지면 사람은 착해질 수 밖에 없다. 독소가 빠진다. 특히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영성과 하나다. 그렇다면 노동의 신성함이 먹을 것에 녹아 들어 그것이 내 몸으로 들어오면 이것이 우리의 영성을 제대로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음식이 된다. 그 어떤 영양소보다 중요하다. 바람, 손길, 새들의 노래, 땅의 마음이 들어오는 것 아닌가. 그 충만한 것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은 맞는데 그 의미는 달라야 한다. 

앞으로 작품은 어떨까. 내 예술이 지향하는 바는 아마 예술품에 담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목사님은 말씀을 통해 선포하지만 나는 작품을 통해 선포하고 싶다. 예술인의 의무,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에서 조금 다른 면에 집중하고 싶다. 그 방법이 강하든, 즐겁든, 다양하겠지만.

사모라는 이름, 누구의 아내라는 이름,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도 정혜례나를 부르는 이름이지만,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담아내 손으로 빚어서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한 여자와 여성으로 불리고 싶은 정혜례나. 그가 빚어낼 하나님의 세상을 기대해 본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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