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월화드라마 <브레인>은 신경외과 전임의 2년 차인 이강훈(신하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뇌의학 전문 의학드라마다. 극 중 이강훈은 처음에 그냥 전형적인 악인처럼 나왔다. 환자를 무시하고, 동료를 무시하고, 후배들 위에서 군림하고, 자기를 출세시켜 줄 과장에게만 아부하는 냉혈한이었다. 부릅뜬 눈에 꼿꼿한 걸음이 부담스러웠다.

알면 알수록 가여운 남자 전파를 탄 지 한 주가 지난 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이강훈은 절박한 처지였다.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서 버림받고, 10대에 아버지를 의료사고로 잃었다. 혼자 큰 그에게 사회는 거대한 벽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다시 돌아온 어머니는 그에게 부양해야 할 여동생과 사채를 안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그 상황을 헤쳐가야만 했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확보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선 하루빨리 좋은 자리로 올라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최고의 실력을 닦았다.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도 굽실거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 했다. 그것이 그의 자부심을 지킬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대학병원의 기득권층인 교수들은 모두 그에게 냉혹했다. 실력은 이강훈이 월등한데도 그들은 명망 있는 교수의 아들을 조교수로 임용한다. 교수들은 이강훈을 전혀 이끌어주지 않으면서, 그의 생존을 향한 분투를 탓했다. 품위가 없어 보이고, 의사로서 도덕적이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말을 이강훈은 비웃는다. 그럴수록 그는 독을 품고 출세를 향해 전진해갔다.

이강훈을 응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회를 거듭할수록 이강훈의 팬들이 늘어난다. 네티즌은 이강훈을 지켜주고 싶어 한다. 이강훈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사회라는 거대하고도 차가운 벽 앞에서 발버둥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그렇게 독을 품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적당히 여유와 품위를 누리면서 살아도 안전과 존엄이 보장되는 그런 사회였다면 우리는 이강훈을 응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민들에게 혹은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는 냉정하기 그지 없다. 악이라도 쓰지 않으면 그 벽을 뚫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악쓰는 주인공들을 사랑한다. <하얀거탑>의 장준혁도 그런 이유로 사랑을 받았다. 그는 출세밖에 모르는 캐릭터였는데, 그의 경쟁자들은 모두 기득권층이었다. 그러자 네티즌은 장준혁의 독기를 지지해줬다. <선덕여왕>에서 성골로 태어나지 못한 한으로 독기를 품은 미실도 네티즌의 인간적인 지지를 받았다. 반대로 <브레인>과 <하얀거탑>에서 착한 말을 하는 캐릭터들은 청년 네티즌의 질타를 받았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그런 도덕 교과서는 집어치우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약자에게, 청년에게 냉혹해질수록 이런 현상이 강해질 것이다. 독기를 품고 발버둥치는 것 이외엔 약자에게 길이 없다는 생각을 모두 하면, 점점 더 이 세상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부디 새해부터는 이 나라가 <브레인>도, <하얀거탑>도 인기를 끌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전과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 그런 사회라면, 저 혼자 좋은 자리 가겠다고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사람이 추해 보일 것이다. 그렇게 추한 주인공들의 분투기가 네티즌의 지지를 받을 리도 없다. 새해부터는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하재근|날라리의 기질과 애국자의 기질을 동시에 타고났다. 그래서 인생이 오락가락 이다. 어렸을 때 잠시 운동권을 하다, 20대 때는 영상 일을 했었고, 30대 초중반부터 다시 운동권이 됐다가, 요즘엔 다시 날라리로 돌아가 대중문화비평을 하고 있다. 때때로 책도 쓰며 인터넷 아지트는
http://ooljiana.tistory.com 이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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