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휴고>는 영화광, 소위 ‘시네필(cinephile)’에게 영화를 보는 내내 ‘아는 만큼 보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영화의 탄생과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토키, talkie)시대로, 흑백에서 컬러영화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을 쉽고 간결하게, 게다가 재미있게 훑어주는 영화사 개론서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초로 내러티브 영화를 만든 조르주 멜리에즈(Georges Melies, 1861-1938) 감독의 삶을 그린 전기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 거꾸로 말하면, 알고 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뜻도 된다.

휴고는 맥거핀*에 불과했다
고아인 휴고는 역사 내 시계탑에 숨어 살고 있다. 휴고가 가진 것은 사고로 죽은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자동기계인형(오토마타)과 노트뿐. 자동기계인형을 고치면 아버지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 휴고는 장난감 가게에서 부품을 훔쳐와 밤마다 수리에 열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 주인인 조르주에게 들킨 벌로 휴고는 노트를 뺏긴다. 조르주의 손녀딸 이자벨은 할아버지 몰래 휴고를 도와 노트를 되찾아주려 하고, 그 과정에서 조르주 할아버지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휴고의 고군분투는 사실상 영화 초반부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한 맥거핀에 가깝다. 영화 후반부 이야기의 초점은 휴고에서 조르주로 넘어간다. 영화 속 인물인 조르주의 삶은 실존 인물인 조르주 멜리에즈 감독의 일생과 같다. 마술사였던 멜리에즈는 최초의 영화인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을 본 뒤 영화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그는 곧‘ 스타 필름’이라는 스튜디오를 차려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스토리’를 지닌 수백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그에게 영화는 또 다른 마술이었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경쟁사들이 속속 생겨났고, 파테영화사와 벌인 법정 소송에서 패하면서 세가 기울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사람들은 영화관을 찾지 않았고 결국 그는 1913년에 완전히 파산한다. 전 재산을 압수당한 뒤 그의 필름 중 상당수가 신발공장 재료로 팔려갔다. 그 이후 종적이 묘연해 죽은 것으로 여겼고,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멜리에즈의 존재는 잊혀갔다. 그런데 어느 날 <시네 주르날(ciné-journal)>의 편집장 레오 드뤼오가 몽파르나스 역을 지나다가 사탕과 장난감을 파는 작은 가게에서 우연히 멜리에즈를 발견한다. 그는 감격하여 이 사실을 알렸고, 1929년에 멜리에즈 환영회를 열어 그의 작품들을 재상영했다. 
영화광으로 유명한 마틴 스콜세지가 브라이언 셀즈닉의 그림책 <위고 카브레의 발명품>을 읽고 이를 각색하여 영화화한 것은 그에게 운명이자 사명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는 세계영화재단을 설립해 영화 복원에 힘써왔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복원된 것도 그의 노력으로 가능했다. <휴고>는 극영화지만 마틴 스콜세지가 그토록 존경했던 조르주 멜리에즈에게 헌정하는 영화이며, 그 자체로 영화사(映畵史) 초기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이자 기록이다.

<휴고>를 보면서 씁쓸해진 이유
최근 들어 메모, 즉 기록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자기계발서가 쏟아지고 있다. 안철수, 스티브 잡스 등의 메모 습관을 거론하며 ‘성공’의 방편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기록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기록이 곧 ‘역사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글뿐 아니라 기록 영화, 건물, 특정한 사물 등이 기록의 한 매체이며, 그 자체로 역사의 담지물의 기능을 지닌다. 인간 또한 역사를 담지하는 매체의 하나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역사는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자기 정체성의 바탕을 설명할 수 있게 해주며,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현재를 반추하게 해주는 거울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함으로써 당시 집권자들의 잘못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조선왕조는 조선왕조실록, 의궤 등 수많은 기록을 남겨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주었고 이로써 정치의 격을 높일 수 있었다. 

최근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면서 명예훼손소송과 배포금지청구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근현대사를 다룬 방송프로그램이 돌연 방영 취소되는 일도 여럿 있었다. 2009년 교과 과정이 개정되면서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국사는 선택과목이 되었고, 국가 차원에서 만든 과거사위원회는 소리소문없이 하나둘씩 폐지되었다. 지역민의 오랜 추억이 쌓인 공간들은 획일적 도시계획에 의해 사라졌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자 역사적 존재란 것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지난날의 과오-예를 들어 일본 위안부 피해-에 대한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휴고>를 보며 영화 속에서 조르주에 대한 전기를 집필한 타바드 교수의 열정-조르주 멜리에즈를 실제로 찾아낸 레오 드뤼오의 열정-과 영화보존에 대한 마틴 스콜세지의 열정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씁쓸해진 이유다. 글 최새롬


* 맥거핀(Macguffin)_ 서스펜스 장르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고안한 극적 장치.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일종의 ‘헛다리 짚기’ 장치로,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배반함으로써 동일화와 긴장감 유지하는 효과를 준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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