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아키라 오제 그림, 이기진 옮김 | 길찾기

사라져간 것들이 있습니다. 개그콘서트에서 황현희가 외치는 “위대한 유산 다 어디 갔어?”처럼 유쾌하면 좋으련만, 도저히 웃지 못하게 사라진 것들이 있습니다. 만화 <우리 마을 이야기>전 7권의 마을이 딱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1966년 도쿄에서 멀지 않은 산리즈카 촌 사람들은 ‘나리타 공항’ 이 그 마을에 생긴다는 소식을 TV에서 들었습니다. 마을에 무언가가 생긴다면 그 마을 사람들이 먼저 상의해야 할 것일진대, TV 뉴스가 덜컥 통보를 해온 거지요. 마을은 난리가 났습니다. 처음엔 모두 반대였어요. 20여 년을 고생해가며 가꾸어 겨우 땅을 알기 시작했고 좋은 작물을 거둘 수 있었는데, 그 땅이 활주로로 변한다니까요. 그러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당근을 제공하니 어느새 마을 사람 절반 이상이 일명, ‘조건파’ 가 되었습니다. 땅으로 먹고사는 게 힘겹던 빈농 상당수가 이 기회에 좋은 ‘조건’ 에 땅을 내놓기로 결심한 거죠. 그래도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반대파’ 가 여전히 남아있으니, 한 학급에서도 ‘조건파’ 집 아이들과 ‘반대파’ 집 아이들은 서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한 집안 형과 아우가 서로 반목합니다. 벌써 이 시점에 공항건설 통보 이전의 산리즈카 마을은 사라지기 시작한 거겠죠. 그럼에도 한줌 남은 마을의 의미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국가와 공권력에 대항해 싸웁니다. 마지막에는 주민의 10% 정도만 남아서요. 알다시피, 나리타 공항은 1978년에 개항했습니다. 그런데 1995년에 수상이 정부를 대표해 사죄 발언을 했습니다. 애초에 일방적이고 강권적인 정부 결정이 잘못이었다는 걸 국가가 인정한 거죠. 다 사라지게 만들고서, 그래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 이 사과조차도 수십 년을 계속 반대하며 저항해온 이들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거란 거죠. 때린 놈이 때린 걸 기억 못하면, 기억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산리즈카의 계속된 반대가 이룬 것이었습니다. 사라지되 그냥 사라지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 아키라 오제는 그 사람들의 삶을 현미경과 망원경과 육안으로 꼼꼼히 살피고 만화 다큐멘터리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이제 마을은 사라지고, <우리 마을 이야기>가 남아서 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기억하네요. 구럼비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는 제주 강정 마을의 문정현 신부가 추천사를 썼습니다. “너무도 닮았다”는 게 신부님 말씀입니다. 글 조익상 (@lit_er)


인디언 마을 공화국
여치헌 | 휴머니스트

공항이 들어서면서 산리즈카 마을이 사라졌단 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아닙니다. 저도 <우리 마을 이야기> 덕에 겨우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유명하게 사라진 것이 있죠. 물론 남아야 있지만 그들의 원래 존재 형태로 산다기보다는 보존되고 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인디언들이 그렇습니다. <인디언 마을 공화국>은 바로 그 인디언들이 사라져간 여정을 훑어보고 있어요. 이 책의 부제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왜 국가를 만들지 않았을까”인데요, 산리즈카를 사라지게 했던 것이 ‘국가’ 주도 개발주의라는 걸 기억한다면 이 책의 ‘인디언’ 과 ‘국가’ 에 대한 물음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을 거예요. 영국에서 건너온 이주민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북아메리카인, 즉 미국인이 되기까지, 인디언에겐 아예 없었고 이주민에게는 본토에 있었던 국가라는 구조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이 책의 물음대로 국가를 만들지 않았던 인디언들은, 국가가 없어서 사라져버리고 왜소해져 버린 걸까요? 아니면 애초에 국가를 만들어 국가의 이름으로 온갖 좋고 나쁜 짓을 다 해온 유럽인의 국가적 삶의 방식이 그들을 사라져버리게 한 것일까요? 이 책은 뿌리부터 시작하는 소상한 설명과 뿌리 저 너머까지 묻는 접근법으로 이런 질문들을 이끌어내고 답하도록 도와줍니다.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김선우 | 창비

사라진 것은, 사라지게 한 것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지금 사라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지금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것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 시인은 책임져야 할 가해자와, 책임을 요구해야 할 피해자를 명확히 지목합니다. 바로 ‘나’. ‘나’는 사라지게 하기도 하고 사라져가기도 합니다. 시인은 그런 내가 사라지게 하는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사라지는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애쓰며 노래합니다. 내가 ‘나’ 로서 존재하며 너라는 또 다른 ‘나’ 와 함께 살며 우리라는 ‘나’ 들이 될 수 없을까 상상하며 말을 만지작거립니다. 그래서 이것은 시를 통한 ‘나’ 의 무한한 혁명입니다. ‘나’ 로부터 시작해 ‘나’ 아닌 것들과 공생하며 ‘나’ 를 비롯한 모든 ‘나’ 를 억압하는 것들에 함께 저항하는 혁명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 시집의 제목을 구럼비에 기꺼이 빌려주었습니다. 자기 것이 아니라면서. “구럼비, 우리의 무한한 혁명에게” 하여, 어떤 것도 사라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럼비도, 붉은발말동게도, 강정 사람들도 산리즈카의 목장이나 인디언처럼 되지 않게 하려는 혁명의 의지를 담은 시편들. 부디 이 시인의 저미고 낭랑한 노크에 문을 열어주세요. 그리곤 ‘나’ 와 조우해 혁명을 무한히 이어가세요.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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