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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9-10 편지, 할게요!

편지, 할게요 1│PS 행복하십니까 - 지리산에서 온 편지: 지리산닷컴

일주일에 두세 번, 지리산에서 편지가 도착한다. 단지 몇 번의 클릭뿐이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열어 보면 어느 아침 혹은 해질 무렵의 지리산과 지리산자락에 자리한 구례의 풍경이 펼쳐진다. 마당의 작은 꽃들, 우렁찬 지리산의 형세, 맑은 초록의 나무들 사이로 건강한 돌담도 보인다. 때로는 마을 ‘엄니’들의 긴 세월이 농축된 한마디 말씀이 그대로 다가와 귓가에 울리기도 한다. 그리고 시선은 사이트 화면 한 쪽을 차지한 PS 행복하십니까’라는 글자에 머문다. 글 · 사진 박윤지

차곡차곡 쌓아가는 지리산자락의 삶, 지리산닷컴
2007년 8월 1일, 첫 번째 편지를 시작했다. 그 후 5년이 지난 올해 가을엔 천 번째 편지가 도착할 것이다. 권산 마을이장이 처음 구례에 내려온 것은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구례의 생활을 계획한 지리산 K형의 권고이자, 설득 때문이었다. 지리산닷컴은 드러나지 않아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여러 손길에 의해 운영되는데, 권산 마을이장은 디자이너로서 사이트를 디자인하고 총괄 진행하는 실무를 맡았다. 
지리산닷컴은 미디어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간 거대 미디어와는 다르다. 그리고 가끔 우리 땅에서 자란 무농약 농산물들을 ‘장터’라는 이름을 걸고 사이트에서 판매하기도 하지만, 수익성을 추구하는 사이트는 아니다. 
“이야기를 전해요. 이런 공동체가, 이런 마을이, 이런 말씀이 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참나무가 셋바닥을 내밍거 본 께 또 비 오것네.  참말로 징하네.’ 이건 지정댁이 하신 말씀이에요. 그 말은 이십 년 후에는 들을 수 없는 언어죠.” 
지리산닷컴의 모든 활동의 초점은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마지막 가치’에 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지만, 지리산닷컴의 ‘큰산아래이야기’, ‘맨땅에 펀드’ 등의 섹션에는 일상에서 만나는 가치 있는 일들이 쌓여 있다. 그 편지는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 사람에게 ‘작은 돌멩이를 툭, 툭 던지는 역할’을 한다. 행복하냐고. 화면 앞에서 편지를 받아든 사람들의 가슴에는 자연과 사람과 살아있음의 행복이 동그란 파문을 일으킨다.  

구례의 소소한 삶을 편지에 담아 전할 때
7월 한 달간 편지의 가장 많은 이야기를 차지했던 것은 연곡분교다. 1학기에는 여섯 명이던 학교에 1학년 한 명이 전학을 가고, 이제 다섯 명의 아이들과 두 명의 선생님만 남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6학년 아이들 세 명이 졸업하는 내년에는 학교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아이들이 제 손으로 텃밭을 가꾸고, 송사리를 잡는 학교, 봄이면 삼백만의 벚꽃이 흩날리는 학교를 지켜주기 위해서 지리산닷컴 편지에 그 이야기를 실어 보냈다. “연곡분교는 ‘마지막 가치’의 상징 같은 곳이에요. 국가에서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한 투자 대비 효과, 효율성, 경제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연곡분교는 주류 시스템에 역행하는 것이나 다름없죠. 얼마나 비효율적이에요. 아이들 5명을 위해 학교 하나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 하지만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단 효율이란 하나의 잣대에 의해 존폐 위기에 놓인다면 어떻게 될까. 
‘맨땅에 펀드’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농사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정직하게 그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가치를 전하고 싶었다. 오직 수익성을 우선하는 기존의 펀드와는 다르다. 농작물의 판매 수익금은 정직하게 농부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투자 설명서에는 “농산물이 아닌 작은 마을과 못난 나무들, 그리고 이야기와 말씀들에 투자하는 바보 같은 펀드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34~35도의 여름 날씨에, 이른 새벽부터 노인들이 무수한 풀을 베고 콩을 수확하는 모습을 편지에 담는다. 커다란 챙 모자에 허리를 굽히고 있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지만, ‘모든 것’일 수도 있는 장면이다. 
“하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주로 했더라고요. 그것들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지나고 나서 많이 생각했죠. 손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도 했어요.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조산원, 대장장이, 도장 파는 영감. 그 일들로 폼 안 나게 밥을 먹었던 사람들이요. 이름 없이, 하기 싫어도 묵묵히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것도 마찬가지로 가치에 대한 문제에요.” 지리산닷컴은 그저 구례 사람들의 다양한 ‘살이’의 모습을, 스스로 강인한데도 거대구조 속에서 약하다고 소외된 것들을 이야기한다. 거창하게 힘주어 외치는 대신, 소소하게 이러쿵저러쿵 풀어쓴 그날그날의 일들이 먼 곳에 사는 사람의 가슴에 아릿하게 새겨진다.

신선하고도 낡은 것이 지닌 힘
달리 설명하지 않아도, 편지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권산 마을이장은 힘들게 보냈던 고등학생 시절에 누나에게 받은 장문의 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지란 그런 것이다. 같은 뜻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 받았던 흔적. 귀퉁이가 닳고 바삭해진 종이를 열어보면 그 위에 푸르게 번진 누군가의 글씨에서 지난날의 자신을 만날 수가 있다. “편지는 신선한 낡음이죠. 종이를 다시 거론한다는 것은 신선함이고, 편지는… 낡은 것이고.” 그가 보여준 한 편지에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전화로 하려고 하니 너무 성의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이렇게 편지로 쓴다.’ 

다시 가을이다. 전하고 싶은 마음을 편지로 써 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 손에는 항상 재빠르게 메시지를 전하는 스마트폰이 있지만, 그런 메시지는 그만큼 재빠르게 잊히고 만다. 당신이 종이 위에 마음을 천천히 내려쓴다면, 누군가는 그 편지를 뜬 눈으로 기다리고 오랫동안 간직하고, 먼 훗날 다시 꺼내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