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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9-10 편지, 할게요!

편지, 할게요 3│옥명호가 아내에게

“집은, 더불어 사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에 산다.”

기억하나요, 혜진?
꽤 오래 전, 아날로그 인간인 내게 회사 동료가 열어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주인장 소개 문패를 그렇게 달았지요. 

어느덧 15년이 되어가는군요, 그대가 나의 아늑한 집이 되어준 지.
그래요. 열다섯 해 동안 그대는 한결같이 내 몸과 마음에 쉼과 힘을 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집이었습니다. 
오래 자취를 해 본 사람이라면 불 꺼진 집으로 혼자 들어가기가 얼마나 달갑잖은 일인지 잘 알지요.
라면 국물에 식은 밥덩이를 말아도 둘이 먹으면 별미지만, 혼자 먹으면 처량한 법이지요.
그러니 나를, 나만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집은 그저 집일 수는 없겠지요. 
돌아보니 우린 참 서로 떨어져 지낸 일이 드물었더군요.
드물게 외국 출장길에 올랐을 때, 일에 대한 부담이 클수록 향수병에 시달리곤 했지요.
내 향수(鄕愁)는 지친 나를 아늑히 뉘어 쉴 수 있는 집, 그대를 향한 것이었구요.
그럴 땐 이동 중인 차 안이나 한밤중 숙소에서 엽서를 끼적이며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때로 시차로 인해 잠들지 못하던 새벽녘, 텅 빈 호텔 로비에서 편지를 쓰기도 했지요.
그대에게 전하는 마음 한 자락 글로 풀어내다 보면 어느새 피로가 말갛게 씻기곤 했어요.
그러니 내겐 그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피로회복제였습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적엔 늘 선물보다 엽서나 편지를 더 기대하던 그대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

지금도 새벽녘 잠에서 깨어나 이 편지를 씁니다.
프리랜서로 바쁘게 달려온 지난 2년여, 새삼 그대에게 띄운 편지가 눈에 띄게 줄었단 생각이 듭니다.
그건 쓰는 내 즐거움도, 받는 그대의 기쁨도 그만큼 띄엄띄엄해졌단 뜻이겠지요.
늘상 한가득 쌓여 있던 엽서나 편지지도 바닥이 보이네요. 
오늘은 짬을 내서 문구점엘 들러야겠습니다. 오랜만에 공들여 카드와 편지지를 골라볼까 합니다.
한동안 잊고 지낸 내 즐거움과 그대의 기쁨을 상상하면서요.

PS 답장 좀 하라고 늘상 꽁알거리지만,
나는 이토록 쓰는 게 즐겁고 그대는 받는 게 기쁘니 그로써 또한 충분할 테지요.
편지를 읽으며 행복해하는 그대의 눈빛만한 답장이 또 어디 있을라구요!












●●● 보낸이 : 옥명호

월간지 기자를 거쳐 단행본 출판사 홍성사와 IVP, 두 곳에서 편집장을 지내며 책을 만들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도 쓰고 강의도 하며 지낸다.

●●● 받는이 : 아내

남편이 써주는 편지를 읽으며 소소한 삶의 기쁨을 즐기는 그녀는 어느덧 201번째 편지를 기다리며 오늘을 기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