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 집회를 가던 길에 불의의 사고로 무릎이 골절되어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은 후 가장 바쁜 시기에 40여 개의 사역 스케줄을 취소하고 꼼짝 없이 석달 가까이 집 안에서만 지냈다. 
초심도 회복하고 쉼과 충전을 얻은 귀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불안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Para-Church 사역자의 특성상 사역 가다가 혹은 사역 하다가 다쳐도 산재처리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쉬는 기간의 수입은 0원이다. 새삼 선배 찬양 사역자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달았다. 
그들은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 평생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역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름다운 노래들을 만들었다. 그들이 걷고 또 걸으며 다진, 비로소 길이라 부를 수 있는 바로 그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을 만든 수많은 이들 중 특히 최인혁은 여러가지 면에서 모범적인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여전히 길의 저만치에서 앞서 달려가고 있고 ‘그 시절의 가수’ 가 아닌 ‘여전함’ 으로 건재하다.


새로운 대중음악 CCM의 시작을 알리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중고등부 시절 예배의 기억이다. 당시 예배 때 찬양을 인도하던 교회 형은 한주도 거르지 않고 최인혁의 ‘주님의 선물’ 을 선곡해 불렀다.

그대는 주님 보내신 나의 가장 귀한 선물.
그대는 하늘로부터 내려진 귀한 선물.
그대는 밝아오는 새벽인 양 싱그런 사랑으로 전해오네.
때론 그대 지쳐 두 눈에 눈물 지을 때 그대 손잡고 주의 길 함께 가리. 
그대는 주님 보내신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
그대는 주님 보내신 예쁜 사랑의 하모니. 

노래가 좋아 열심히 따라 부르면서도 왠지 찬양이라기보다 가요에 더 가까운 이 노래의 가사나 멜로디에 이걸 교회에서, 그것도 예배 시간에 불러도 되나 하는 문제의식이 싹 텄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찬양 인도자 형이 그 노래를 주구장창 부른 이유는 둘 중 하나다(둘 다 거나). 
예배와 찬양 인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했거나, 혹은 좋아하는 여학생을 의식해서 실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라기보다 소녀에게 바치는 세레나데였거나. 
아마 80년 대 후반에서 90년 대 초반 여느 교회에서나 있었을 법한 이 에피소드는 최인혁의 음악과 사역을, 그가 일구어낸 초창기 한국 CCM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한국 교회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의 노래는 가요 같았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요’ 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중음악을 외국의 팝음악에 비해 다소 열등하게 여기는 뉘앙스라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최인혁의 노래들을 굳이 ‘가요적’ 이라 말하는 이유는 한국 대중음악이 꽃을 피운 80년대를 지나고 그 꽃이 만발한 90년대의 문을 열어준 음악으로, 그 눈부신 시기를 대표하는 단어가 ‘가요’ 였기 때문이다. 하여 최인혁과 연관하여 쓰는 ‘가요’ 라는 단어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비로소 외국의 팝과 경쟁력에서 그 수준을 견준 시기의 음악의 통칭으로 받아 들여 주길 바란다. 

최인혁으로 인해 교회 안에 본격적으로 가요와 비슷한 음악이 들렸고, 불렸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도 가요와 견줄 수 있는 노래가 등장한 것이고, 가요를 듣고 부르기를 좋아하던 이들에게 가요를 대체할 수 있는 노래가 드디어 생겨난 것이다. ‘유입’ 된 것이 아니라 ‘생겨났다’ 는 점이 중요하다. 경배와 찬양은 외국에서 유입된 것이다. 복음성가(Gospel Song)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Southern Gospel 스타일의 찬양들이 건너온 것이다. 그러나 최인혁의 노래들은 최덕신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사람이 만들었는데 외국 곡보다 더 좋다’ 는 생각을 하게 한 거의 최초의 교회음악이었다.

인기와 비판 사이에서 노래하다
예수전도단에서 찬양인도자로 섬기다 1988년 박종호와 함께 한 듀오 앨범 ‘예수전도단 4집’ 은 극과 극의 외모와 목소리의 대비로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 ‘Perhaps Love’ 를 연상케 하며 크게 히트한다. 그러나 정작 내가 충격을 받은 노래들은 최덕신, 김영석, 김미연, 함태숙 등이 만든 고전적인 노래가 아닌 최인혁이 직접 만들고 부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네’ , ‘영원하신 그 사랑’ , ‘주여 인도하소서’ 같은 노래들이었다. 

그 즈음의 교회 음악에서는 흔치 않던 Major 7 코드의 능숙한 사용과 대중적인 리듬감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최덕신의 세련됨과는 또 다른 종류의 낯선 음악을 들고 나타난 그는 애초에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다윗과 요나단, 주찬양, 옹기장이, 박종호, 손영진, 송정미 등이 등장하고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의 노래는 편안하고 무난했으며 소위 은혜스러웠다. 클래식이나 포크적인 어법을 기본으로 해 보수적인 기성 교회의 반발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최인혁은 모든 면에서 그들과 달랐다. 그는 정말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또 그만큼 많은 박해를 받았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폭발적인 인기를, 기성세대에게는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사역자일 것이다. 창법도 작법도, 가사도 리듬도, 그가 만들고 부르는 노래들은 기존의 찬송가나 복음성가, 그 어느 것과도 다른 것이었다. 비로소 그에게서 ‘ 새로운 대중음악 CCM’ 이란 표현이 생겨난 것이다. (part 2에 계속)


민호기|CCM 소망의 듀오 ‘소망의 바다’ 가수이자, 목사, 교수인 그는 요즘 작가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그는 그보다 좋은 아빠와 남편이길 원하고 하나님 앞에서 작은 예배자로 살기를 소망한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PEOPLE반짝반짝 이레숑문화동네 사람들아름다운 당신의 오늘사람과 사람햇빛 아래 노니는 삶김준영의 페북 친구life동선예감독자와 3분 통화공간공감편집장의 편지그 동네 가게길에게 길을 묻다한페이지 단편 소설살림의 나날임양의 사소한 일상오늘의 생각spirituality문화선교 리포트감성수업두 손을 모으다CCM 창착연대2013 특집책이 피는 출판사크리스천+인디밴드culture문화 다이어리추천 영화추천 공연추천 전시추천 음악추천 도서인디 : 구름에 달 가듯이 산다클래식/국악의 숲을 거닐다서랍 속 미술관오늘, 을 읽다고전으로 오늘을 읽다영화 속 현실과 만나다TV 상자 펼치기비뚤어질 테다뉴스 따라잡기어른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