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손과 자유로운 다리 

그리고 오래 참는 엉덩이


김종구, 마리오네트를 만들고 연출해 공연한다. 젊은 시절 산업디자인학과 진학, 첫 수업시간 교수의 그림을 보고 배울 게 없다며 학교를 나와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성질머리가 남달랐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때문에 아니다 싶은 일은 단칼에 그만두는 행동파였다. 인테리어 사업을 해 꽤 돈을 벌다가 그만뒀다. 호떡 장사, 택시운전, 농장, 선원 등으로 몸 쓰는 일로 밥벌이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오네트를 만났다.




마리오네트 이전에 한 일이 다양한데요? 방황하던 시절이었나요? 

당시엔 나이트클럽이나 룸살롱 같은 곳이 인테리어 주 무대였어요. 술과 여자가 가까이 있었고 돈도 잘 벌고, 부족한 게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집에 쌀이 떨어졌다고 해요. 생활이 불규칙했고 수입이 들쭉날쭉해서 나는 몰랐어요. 큰돈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는데 정작 집에 쌀이 없고, 뭔가 허무했어요. 그때 인생을 돌아보게 됐어요. 바짝 일하면 다시 수입은 늘겠지만, 더는 할 수 없었어요. 예수를 믿게 됐거든요. 돈 잘 벌고 편하다는 이유로만 일을 선택할 수 없게 된 거죠.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될 때까지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기로 했던 거죠. 


그 바람이 현실이 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린 시절을 잘 돌아보면 답이 나와요. 나는 나무를 깎아 인형 만들기를 좋아했어요. 자연스레 선교인형극단에 들어가 인형극을 했는데 어느 날 단원들과 일본 인형극장에 갔어요. 거기서 마리오네트를 봤죠. 다들 감탄은 하는데 저건 엄두를 못 내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헌데 나는 반드시 해야겠다 싶었죠. 내가 찾던 바로 그 인형이었어요. 표정이 사람의 그것이고, 손끝 발끝까지 살아 있었어요. 처음엔 독일 책을 구해 연구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맘때 전세금 정리하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짜기에 비닐하우스 짓고 살고 있었어요. 천지 지은 하나님을 믿는데 먹고 입는 것은 직접 만들어봐야겠다 싶었던 거죠. 그렇게 한갓진 데서 인형과 입을 것 만들고 일도 하면서, 30대 후반부터 7년을 살았어요. 


그런 다음 러시아에 마리오네트를 배우러 가셨고요?

3년간 학비를 벌어 마흔여섯에 러시아 학교에 들어갔어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연극대학 제작학과에서 처음으로 갈급한 시간을 경험했어요.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오랫동안 해온 일이니까 흐름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그때 만난 스승이 할아버지 교수님이었죠. 러시아어를 못하는 데다 나이 많은 동양인을 처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365일 내내 학교 문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작업실에 앉아 공부하던 모습을 보고 인정해주셨죠. 한국 오기 전 그분이 그간 가르친 제자 

중에 미스터 킴이 최고라고 그러셨어요.


돌아와서 바로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하셨어요?

1년여 마리오네트를 만들었어요. 하나 완성하는 데 3개월이 걸려요. 오래 간직하길 바란다면 느리게 가야 해요. 나는 은행나무를 써요. 단단해서 다루기 어렵지만 해충에 강하고 요철로 연결해도 잘 깨지지 않아요. 다음 세대까지 사용되기를 바라면서 나무를 깎아요. 그렇게 온전히 마음에 드는 마리오네트를 만들고 공연을 시작했어요. 


마리오네트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없나요?

간혹 있는데 끝까지 버티기 힘들어서 그만두더군요. 예전에 00예술대학교 학과장이 초빙하러 왔어요. 거기 가면 제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해서 갔는데 대부분 열정이 없어요.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찾는 게 관건이 아니고 어떡하면 돈 잘 버는 직업을 찾을까, 대학에서는 그게 목표가 됐죠. 예술대학인데 성적 맞춰 온 애들이 많아요. 몇 명 불러서 그랬죠. 학교 그만둬라, 아니면 1년 휴학해서 이것저것 해보고 인생을 배워라, 그래서 이 길이 네 길인가 아닌가 생각해봐라. 그런데 그렇게 하는 놈이 없어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애들이 없어요. 인생을 바로 살라고 하지 않는 교수들과 싸우기도 했어요. 결국 장사 놀음의 교육을 계속 할 수 없어 그만뒀어요. 학생들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예술가는 돈 따라가면 안 된다, 바른길로 가라 했죠. 중간에 그만두면 너희한테 피해가 가니 원치 않으면 그 뜻을 따르겠다고 했는데 한 학생이 일어서서 교수님 같은 분은 우리 학교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더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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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도권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학생일 때도, 선생이 되어서도 학교를 관뒀다. 그러나 그것은 평생 가야 할 길을 만나기 위한 그만둠이었다. 그 길로 가기 위해 배움에 갈급해 있을 때 그의 아들은 막노동으로 받은 100만 원을 유학에 보태라며 그에게 건넸다. 그때 아들의 나이 열여덟. 그러고 보니 아들은 곧 자기 스승이 될 분의 뒷바라지를 한 셈이 아닌가. 그들은 부자지간 위에 스승과 제자라는 새로운 관계를 쌓았다. 어쩌면 그가 가족과 함께 극단을 꾸린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을 것이다. 마리오네트는 쉴 틈 없이 합을 맞춰야 한다. 

서로가 늘 곁에 있어야 하기에 극단 ‘보물’은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뒤이어 합류한 며느리 이슬기 씨는 아내 송옥연 씨와 함께 연기 및 의상, 소품 등을, 아들 김해일 씨가 조명 및 기술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김종구 씨로부터 이어진 손의 감각이 그렇게 지속해서 전달되고 있다.


김종구 씨는 전기톱에 왼쪽 엄지가 반 토막 났고 손가락 마디마다 숱한 상처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이 없으면 손목으로 마리오네트를 만들겠다 한다. 그의 남은 꿈은 자폐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하는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지를 다녔고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해오던 터라 그 꿈은 이미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인도 오지를 돌며 공연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남았다면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며 되물었다. 


인터뷰는 그의 작업실이 있는 충주에서 이뤄졌다. 언덕 위에 외따로 집과 작업실이 있었다. 이따금 그는 나무와 풀과 하늘을 바라봤고 어떤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에 하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믿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을 믿는 그 자신에게 한 말이리라. 요즘 그의 고민은 이대로 머물 것인지, 다시 모험을 떠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편해졌다 싶을 때 게으름이 틈타기 때문에 그는 늘 그런 고민을 한단다. 그의 인생 어떤 순간에도 게으름은 엿보이지 않았건만, 그는 그것을 가장 경계했다. 한 자리에서 마리오네트를 만드는 ‘오래 참는 엉덩이’와 오지까지 찾아가 공연하는 ‘자유로운 다리’, 찢기고 다쳐서 ‘상처 입은 손’이 있는 한, 그가 게으름을 부릴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글 . 곽효정 



* 마리오네트(Marionette) 

목각인형의 관절마다 마디마디를 실로 묶어 사람이 줄을 조종하여 움직이도록 연출하는 인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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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쿄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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