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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인터뷰

81호_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지난 5월 20일 서울시14차 건축위원회에서 강동구 둔촌동 일대의 둔촌주공아파트의 주택재건축정비사업 계획안이 통과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재건축 진행 중인 아파트가 한둘도 아니니 놀라운 소식은 아니다. 다만 이 소식에 주목한 건 지난해부터 발행되고 있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라는 독립잡지 때문이다. 이 잡지는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유년시절의 추억을 쌓았던 평범한 직장인 이인규 씨가 만들고 있다. 소중한 공간이 사라질 것을 아쉬워하며 추억을 모으고 기록하고 있다는 그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둔촌주공아파트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어보았다. 



둔촌주공아파트는 어떤 곳인가요?

아파트라고 하면 회색빛 도시와 인정 없고 삭막한 곳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둔촌주공아파트는 좀 달라요. 동 간 거리가 넓고 숲이라고 불러도 좋을 울창한 나무들이 많죠. 습지도 메우지 않고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아파트를 지었어요. 아파트 안에 두 개의 언덕이 있거든요, 어릴 땐 눈 오는 날이면 친구들이랑 그 언덕에서 눈썰매도 탔어요. 아파트에 살면서 계절 변화도 배웠어요. 봄이면 산수유가 먼저 피고 개나리가 핀다는 것도 알게 됐죠. 여름에는 땡볕 아래서 꼬질꼬질하게 땀 흘리면서 잠자리 잡는다고 밖에서 놀고, 가을에는 낙엽 밟는 소리도 느낄 수 있고. 서울에서 살았지만 감성을 채우고 자연에서 배울 수 있었어요.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첫 호에 쓴 내용이지만, 어릴 때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는 집이 우리 동만 해도 많았어요. 위, 아래층, 앞집에 전부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전화도 아니고 인터폰으로 ‘00이 있어요?' 라고 물었죠. 물론 그냥 집으로 찾아 가는 일이 더 많았지만요. 그렇게 모두 함께 놀았어요. 여름이면 현관문도 다 열고 살았거든요. 아파트 구조가 특이했어요. 복도식 아파트는 아닌데 한 층에 네 집이 있는 구조예요. 서로 마주보는 집이 친하면 대문을 같이 열어두는데 맞바람이 불면 더 시원하거든요. 지금도 기억나요. 신발도 신지 않고 앞집으로 건너가서 친구랑 놀고 숙제도 같이 했어요. 오빠랑 제 식성이 좋아서 해놓은 밥이 모자라면 엄마가 앞집에서 밥을 얻어 오기도 했고요. 친구들뿐 아니라 이웃 간의 교류도 특별했어요. 지금도 우리 엄마는 위 아래층에 사셨던 아주머니들과 연락하고 계실 정도니까요. 


이웃 간의 사이가 좋았던 것 같아요. 

그 당시 아파트에 살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는 식의 뉴스가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둔촌동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면 17년을 이어온 반상회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어요. 그 시절이야 반상회를 자주 하기도 했지만 우리 아파트는 좀 더 각별했던 것 같아요. 반상회에서 주민들끼리 얼굴도 익히고 재미있는 일들도 하고. ‘둔촌 축제’라는 아파트 축제도 열었어요. 그렇게 더 친해졌던 것 같아요. 1층에는 아파트 건물 밖으로 통하는 문이 앞뒤로 있었거든요. 거기에 놓인 의자에 늘 할머니들이 앉아 계셨는데 동네 아이들이 다 인사하고 다녔어요. 할머니들은 애들 이름도 다 외울 정도였고요. 아파트지만 마을, 촌락 같은 느낌이 더 컸죠.


살던 곳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지네요. 잡지를 만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동일본 지진이 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폐허 속에서 찾던 것은 귀중품이나 현금이 아니라 사진이었다고 해요. 구글 재팬에서 그 사연을 듣고 동일본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 모으기 프로젝트를 했어요. 사람들에게 추억을 돌려주자는 프로젝트였던 거죠. 그걸로 광고상도 받았거든요. 그곳은 자연재해로 갑작스럽게 살던 곳이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는 알고 있죠. 우리가 살던 곳이 곧 사라진다는 걸요. 잃어버리기 전에 기록해 두고 싶었어요. 온라인으로 모아두면 쉽겠지만 그보다 손에 잡히고 귀하게 간직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하다가 잡지를 만들기로 한 거죠.



 

첫 번째 이야기첫 번째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두 번째 이야기



잡지를 만들면서 보람을 느끼거나 좋은 것이 있다면 뭘까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페이스북을 통해서 동네 분들과 만나기도 하거든요. 20년 살았다는 사람도 있고, 17년 살고 이제 곧 떠난다는 사연도 있고, 갓 스무 살 된 남학생 등등. 그분들이 페이스북에서 말을 걸며 장문의 자기소개를 해요. 같은 공간에서의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이 마음의 벽을 낮춰주는가 봐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고등학생들이 책을 보고 우리 아파트를 좋아하게 됐다는 거였어요. 사실 우리 아파트는 굉장히 오래됐거든요. 나무는 멋있게 잘 자라서 자연환경은 좋지만 건물은 낡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을 보고 동네에 애착을 갖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그 중에 한 친구가 “너무 예뻐서 보내요”라며 사진을 올려 줬는데, 그걸 시작으로 다른 친구들도 사진을 보내주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둔촌주공아파트’라는 코너가 생겨났고요. 또 그게 인연이 돼서 동북고등학교 교지에 인터뷰도 실렸어요. 책을 만들면서 그전에는 인생의 재미라고 할 것도 없이 회사일에 치여 살았어요. 그러다가 이 잡지를 만들며 인생의 낙을 찾았어요. 첫 호를 낸 다음 달이 생일이었는데 블로그에 ‘태어나서 다행이다’라고 적을 정도로 이 일이 소중해요.


벌써 두 번째 <안녕, 둔촌주공아파트>가 나왔고 지금은 세 번째 호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작업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해요?

첫 번째 호에서는 아파트 위치, 어떻게 지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실렸어요. 요즘 포털 사이트가 좋아져서 1990년대 주요일간지 뉴스도 검색되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 아파트가 서민형 아파트, 그러니까 소형평수인 1, 2단지를 만들고 3, 4단지는 큰 평형으로 만들게 된 사연이나 언제 분양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당시 디자인상을 받았다는 것도 뉴스 검색으로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나의 둔촌주공아파트’는 우리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죠. 사진도 보내 주시고 글도 보내 주시고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는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첫 번째 호는 혼자 시작해서 나만의 이야기를 남긴 기록이었다면 두 번째 호부터 우리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세 번째 호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채워질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함께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저 혼자 했던 일들을 사람들과 팀을 꾸리는 건 어떨까 생각하고 있고요. ‘둔촌역사문화지킴이’라는 모임이 있는데 요즘 그분들도 만나고 있어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이 둔촌의 역사를 돌아보고 지키는 활동을 하고 동네 잡지도 만들고 계시는데 세대는 다르지만 서로 상부상조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은 이벤트도 열어보고 싶어요. 둔촌 축제를 다시 해보고 싶고 사생대회나 워크숍 같은 것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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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철거되는 때를 마지막 호로 생각하고 있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그녀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녀는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는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때,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할 수 있을 때, 더 늦기 전에. 이별은 문득 마주하게 되는 것만 같지만 그 문득이 마냥 문득인 것만은 아니다. 알고 보면 늘 단서는 우리 앞에 주어진다. 단지 그것을 눈치 채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일 뿐. 인규 씨는 예정된 이별 앞에 서 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할 수 있을 때 인사를 건네는 중이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글·박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