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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모탕의 노래 3ㅣ추억을 잃어버린 아이

장면 하나. 수면제와 친구
교실에 들어서는데 이상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을수가 동욱이의 멱살을 붙잡은 상태로 무엇인가 먹이려 하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이를 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멱살을 붙잡힌 동욱이는 눈을 감고 있었고, 을수는 고래고래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다. 뒤에서 말리던 친구 중 하나가 을수의 손을 후려쳤다. 그랬더니 멱살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교실 바닥에 뭔가 후드득 떨어졌다. 수면제였다.
교정 한 구석에 두 친구와 나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선생님 을수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제가 수시에 자꾸 떨어지니까 너무 견디기 힘들었어요. 약국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수면제를 사 모았어요. 하지만 죽을 용기가 없었어요. 수면제를 한참 바라보다 을수에게 물어보았어요. 이거 먹으면 죽을까? 그랬더니 을수가 갑자기 화를 냈어요. 그리고 죽을 용기가 없냐? 그럼 내가 먹여줄까? 하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제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수면제를 바라보기만 하니까 을수가 이 병신 같은 자식아!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을수와 동욱이는 사이가 좋은 친구다. 정확히 표현하면 동욱이에게 을수는 수호천사와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을수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멋진 군인의 길을 가기를 꿈꿨고, 동욱이는 국문학도가 되기를 소망하는 친구였다. 내신 성적이 좋은 동욱이는 대학 입시에서 수시 전형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열아홉 번이나 면접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아무리 계획하고 노력해도 대학입시라는 미로에서 탈출하기 힘든 동욱이는 죽음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누구보다 동욱이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을수는 소울음을 울며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장면 둘. 전에 우리 사이에 추억이 있었나요?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대광 중학교에서 대광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긴 지 세 해째 되는 때였다. 중학교 때 가르쳤던 친구들을 고등학교에서 다시 가르치게 되었다. 병아리처럼 자그마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들을 뼈대가 굵고 키가 큰 고등학교 1학년의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겐 신나고 즐거운 일이었다. 동욱이는 특히나 중학교 때 꽤 가깝게 지냈던 친구여서 반가움이 두 배였다.
나는 3월 초 고등학교 복도에서 동욱이를 보자마자 얼싸안고 반가움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동욱이가 아주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꾸벅 인사만 하고 자기 반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나도 멋쩍어서 뒤통수만 벅벅 긁어댔다.

다음 날 교무실로 동욱이가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어제 정말 죄송했어요. 집에 가서 앨범을 보니까 선생님이란 찍은 사진이 있는 것을 보고 선생님과 제가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선생님, 실은요. 제가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뇌를 다쳤어요. 치료가 잘 진행되어서 아무 이상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아주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어요. 정확하진 않지만 1년 쯤 지나면 그 전 일들이 기억나지 않아요. 사람이든 어떤 사건이든……. 그래서 선생님도 낯선 분으로 보여서 그렇게 제가 행동했어요. 죄송해요. 선생님.”
동욱이와 새로운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장면 셋. 마지막 춤은 우리 다 함께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동욱이는 우리 반 학생이 되었다. 학기 초, 꽤 여러 번 동욱이는 나를 찾아와서 ‘백 댄서’가 되겠다고 하였다. 동욱이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를 때면 아이들이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나도 몇 번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실력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동욱이에게 보내는 비웃음에 가까운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때 동욱은 멋지게 한 판 노는 광대가 아니라 노리개감으로 전락하는 어릿광대에 불과하였다. 친구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점점 동욱이의 춤과 노래 앞에 무관심과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기억력 때문에 실수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동욱이는 주변 아이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무엇으로든 주목을 받고 싶어 했다. 그러는 와중에 발견한 것이 춤과 노래였다. 물론 집안에서는 반대였다. 친한 친구들도 만류했다. 동욱에게는 동지가 필요했다. 자신에게 춤과 재능이 있다고 인정해주고 구체적으로 그것들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에 대해 안내해 주는 조력자가 있어야 했다.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모두가 떠나간 텅 빈 교실에 동욱이와 나는 춤을 추고 있었다. 온 몸을 땀으로 적시며 한 시간 가량 음악과 함께 두 명의 사내가 춤을 추고 있었다. 제자의 아픔 앞에 구체적인 답을 보여주려는 스승의 몸부림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허덕이는 목마른 제자의 몸짓이 모여 춤판을 엮어가고 있었다.

동욱이와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교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야! 이동욱 내 춤추는 모습을 보니까 어떠냐?”
“솔직하게 말씀 드려도 되나요?”
“그래. 계급장 떼고 솔직하게 말씀 줘바라.”
“선생님. 다시는 다른 사람 앞에서 춤을 추지 마세요.”
나는 굳은 표정이 되어 동욱이에게 말했다.
“이동욱! 방금 그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란 것 너 아냐?”
“?”
“적어도 지금 내 눈 앞에 보인 그 실력 가지고 다른 사람 앞에서 다시는 춤을 추지 마라!”
“…….”
“춤을 추라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네가 춤을 추고 싶을 때 추라 이 말이야. 남이 칭찬하니까,
춤을 추지 말란 말이야. 정말 내가 원해서 춤을 추고 싶을 때 다시 선생님께 와라.
우리 두 못난이가 다시 한 번 흐드러지게 춤을 춰 보자구.”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 제자의 희망을 헛되다고 말하는 무지막지한 선생과 그 선생의 말이면 무조건 따르는, 그래서 이제 무엇으로 자신의 앞길을 조각해야 할 지 다시 고민을 시작하는 제자가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장면 넷. 다시 장면 하나로
고등학교 3학년 동욱이의 내신 성적은 전교 최상위권이었다. 전과목 만점이었다. 그런데 모의고사 성적은 전교 최하위였다. 단기 기억력은 엄청날 정도로 뛰어나지만 장기 기억력은 몹시 떨어지는 뇌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였다. 그래서 수학능력시험을 위주로 하는 정시로 대학을 가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내신 성적이 크게 좌우하는 수시 전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면접시험에서 자꾸 떨어지는 것이었다. 뇌를 다쳤기 때문에 다소 어눌하게 보이는 말투와 고집스러운 성격에서 나오는 대답이 패인이었다.

수면제 사건이 있은 후 동욱이와 나는 면접시험에 대비하여 강도 높은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스무 번째 상위권에 속한 대학에 합격을 하였다. 반 아이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쳤고, 선생님들도 모두 동욱이의 어깨들 두드리며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장면 다섯.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입시에 계속 실패하자 가출하고 싶다던 동욱이. 만약 그 가출이 성공해서 일 년 정도 떠돌다 가족들이 그리워 집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동욱이는 집을 찾아올 수 있었을까? 대학에 입학해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왜 전화는 한 번도 하지 않을까? 아니 벌써 몇 년이 흘렀는데 동욱이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함께 춤을 추고, 면접시험 준비를 하면서 밤을 새웠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추억을 잃어버린 아이 동욱이……. 그 친구를 위해 신에게 기도를 하고 싶은데 오늘도 나는 입술을 열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다.



문경보|흔들리며 피는 꽃과 같은 아이들에게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대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그는 늘 아이들과 함께 할 무언가를 꿈꾸며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