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문화동네 사람들

영화감독 류승완 ㅣ 한없이 불안한 존재, 인간을 말하다

‘꿈’의 사전적 의미는 3가지다. ‘잠자는 동안에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우리가 어릴 적부터 수없이 질문하고 답해왔던 ‘꿈’은 결국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은 희망이나 이상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현실 속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꿈’을 꾸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마침내 이루기를 소망하지 않던가. 삶의 마지막에라도 꼭 이루어야 할 것처럼, 그래야만 마침내 행복할 것처럼…. 어릴 적 꿈꾸던 장래 희망으로써의 ‘꿈’을 이룬 사람은 막연히 행복할 거라 여기는 믿음은, 결국 세월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의 꿈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감독 10년 차인 류승완 감독에게 아직도 빈번하게 따라다니는 수식어인 ‘ 충무로의 액션키드’도 어쩌면 그런 질투와 부러움 때문 아닐까. 하지만 “액션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이 액션영화 감독이 되었다.”를 그의 대표수식어로 쓰기에는 지나치게 모자란 감이 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담는 영화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그는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쓰라고 하면 항상 그 주에 봤던 영화 주인공의 직업을 썼다. <승리의 탈출>을 봤을 때는 축구선수, ‘007 시리즈’를 봤을 때는 첩보원이라고 썼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성룡 같은 액션배우가 되고 싶었다. 근데 ‘아무도 날 배우로 써주지 않을 테니까 내가 찍자.’고 생각했다. 그 뒤부터 점심을 굶으며 카메라 살 돈
을 모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부터 8mm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1996년 <변질헤드>를 시작으로 <죽거나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짝패>, <다찌마와 리> 등 11편의 영화가 그를 통해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를, 그가 그렇게 동경했던 ‘액션영화 감독’이라고 불렀다.

“제가 영화감독이라는 칭호를 달고 일한 지가 벌써 10년째가 됐는데, 초기에는 스스럼없이 제 영화를 만든 원동력이 분노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강한 자가 약한 사람을 건드리거나 착취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을 진짜 못 참겠어요. 그건 진짜 나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자꾸 공포를 조장하는 것도 제가 분노하는 지점이에요.” 그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대상에 대한 분노를 담아낸 영화들을 통해 그가 결국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이었을까? “저는 영화를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려고 하는 입장인 것 같아요. 제 영화 속에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잖아요. 소설가 김승옥 씨도 <무진기행> 서문에서 그런 이야기를 쓰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가 보기에도 인간은 한없이 불안한 존재 같아요. 그것들을 담아내다보면 대책 없는 무술이나 혹은, 잔혹한 폭력으로 표현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바라보는 한 인간에 대한 표현 방식은 작품마다 달라질 거예요. 작품마다 등장시키는 인물이 다르니까요. 그 인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요즘 제가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사실 우리가 흔히 소설이나 영화 속 인물에 대해 분석하며 한 인물의 행동패턴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 속에서야 어디 그런가.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며, 우리의 선택이라는 것이 늘 한 가지 기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이라면 지켜야할 최소한의 것이 있다고 믿는다. “인간에 대한 예의나 도리, 의리라고 말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충분히 깔려있다면 사실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서 그 판타지를 충족하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것에 대한 갈증들이 다 있기 때문에 판타지로써 그런 것들을 충족하려고 하죠. 그런데 그나마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건, 그런 갈증들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갈망하고 있
는 거니까요. 어떻게 보면 단어가 아무리 바뀌고 해도, 그 근본은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편하게만 살고자 하는 욕심, 이건 아니다
그는 그 근본이 되는 사랑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염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싸고는 좀 당황했어요. 어쨌건 저도 참여정부 마지막 시기의 일부의 정책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우리가 정책이나 노선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지만, 한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예의마저도 없는 반응들이 되게 당황스러웠어요. 그리고 크리스천들이라면 이런 안타까운 현상에 대해서 더욱 더 같이 아파하고,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데…. 모르죠, 사람마다 입장이 다른 거니까.”

그는 특별히 아주 좋아하거나, 아주 싫어
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했다. 많은 상징들이 무너지는, 자꾸 사회가 균형을 잃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단다. “지금 사람들이 그룹을 지어서 뭔가 투쟁하고 싸우는 방식을 보면, 정말 절실해서 저렇게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인가, 아니면 더 편하게 살려고 그러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사람들이 편한 것에 무척 익숙해져서, 더 편해지기 위해서 자꾸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아요.” 그는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할 절대빈곤의 시대를 벗어나고도, 여전히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로 쫓기는 현실이 화가 난다고 했다. “사회의 최소한의 안전판을 만들기 위해서 교육을 받는 거잖아요. 그런데 갈수록 교육은 좋은 곳에 취직하고, 누군가를 짓누르고 올라서기 위한 기술만을 배우게 하는 것 같아요. 상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나 모든 것들이 우리가 상식적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으면 되는데, 우리는 먹고 사는 게 너무 바빠서 계속 뭔가에 쫓기고 있는 거예요. 빨리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고, 여기서 도태되면 끝날 것 같은 분위기요. 사실 그렇게 쫓기지 않아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

사실 그에게도 그런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치도록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만들고 나니 성공을 하고 싶었고, 성공을 하니, 인정을 받고 싶었고, 인정을 받으니 다음 영화를 하고 싶었고, 다음 영화를 하니 돈을 더 벌고 싶었다. “사람이라는 게 욕심이 끝이 없잖아요. 하지만 꿈과 욕심은 달라요. 저 같은 경우는 솔직히 욕심이 끊임없이 생겼고, 지금도 생기고 있어요. 이걸 잡으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거기서 행복이 충족이 되지 않고, 뭔가 또 요구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결국 그 지점에서 신앙의 힘이 필요한 거 같아요. 내가 잡은 것을 놓을 수 있는 힘, 그런 판단을 하게 해주는 힘이 종교에서 오는 것 같아요.”



삶의 매 순간이 기적이었노라
그의 신앙생활은 5살 때쯤부터 시작됐다. 먼저 어머니가 신앙생활을 시작하셨고, 어머니 때문에 가족 모두가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약간 그런 게 있는데, 뭐냐면 저희 부모님이 아주 굳은 믿음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할머니도 떠나보냈고…. 내가 이 분들과 같은 신을 모시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못 만날 것 같다는 공포심이 아주 어려서부터 있었어요. 그게 사실은 제가 교회를 안 다녀도 난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의 기반이었어요. 10대 시절에 형성된….”

그런 두려움의 존재였
던 하나님은 돌아보면 참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단다. “20대 시절 저를 알았던 사람들은 제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에 대해서 기적이라고밖에 이야기를 못해요. 저희가 살던 영세민 아파트를 빠져나온 게 기적이에요. 특별하게 제가 사랑을 받은 것 같아요. 저하고 아내 사이에 정말 소중한 세 생명을 주셨고, 어쨌건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어렵거나 하지 않고, 삼시 세끼 굶지 않게 해주시고, 입을 옷을 주시고, 잠자리도 주시고. 그리고 진짜 제가 이렇게 영화감독을 하고 있는 것들이 기적인 것 같고. 이걸 누가 해줬겠어요. 그냥 한 두 사람이 밀어주고 당겨준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오랜 신앙의 방황이 있었지만, 2006년 다일교회를 만나면서 그는 하나님을 다시 만났다고 했다. 그 전까지는 머리로 만난 하나님이 가슴으로 만나졌다고.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다일의 정신인 다양성 안의 일치, 그리고 나눔과 섬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 “예수님은 아픈 자들에게 정면으로 들어가신 분이잖아요. 예수를 믿으면 즐겁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일수록 자기 자녀들을 아픈 곳으로 자꾸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아요. 예수를 못 만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외면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는 자신만을 위한 신앙이 아닌 더불어 행복한 신앙이 되기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인 듯했다.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한다’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사는, 그 분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도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그에게 영화는 아직 ‘꿈’이다. “지금은 제 감정이 실려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저를 완전히 걷어내고 사실과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 경지에서 뭔가 하기 위해 지금은 훈련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기도한다. 예수님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그는 올 초 솔로몬 왕의 반지에 적힌 글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라는 문구를 접하고 나서 그것을 삶의 지침으로 삼게 되었단다. 아무리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 교만할 필요도, 우울할 필요도 없다고 다짐하며 아주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그 말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마음을 다잡게 해준 이 말을, 조그맣게 되뇌어본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글 정미희 | 사진 탁영한
 



류승완이 추천하는 영화 _ 밀양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작품. 요즘 같은 시기에 우리 크리스천들이 다시 한 번 볼만한 영화 같다. 엔딩을 보며, 단순히 하나님과 대적했다라고 볼 것이 아니라 “그래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건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라는 질문을 생각하며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