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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나를 까맣게 태우던 그 시절, 그 때

사춘기가 사라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급한 마음에 일기장부터 집었다. 어디서부터였는지, 또 어디까지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아니, 생생하지 않다. 매번 엄마는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타 들어가신다며 구구절절 그 시절 이야기를 하신다. 그런데 그 속에 정작 중요한 나는 없는 것만 같다. 혹시 영화 ‘마더’에서처럼 ‘갑갑한 속을 뚫어주는 침’ 한 방을 허벅지 안쪽 혈에 놓고는, 흐느적거리는 춤이라도 추듯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사춘기를 잃어버린 채, 나는 매주 이 녀석들을 만난다. 갖가지 고민들을 버거우리만치 등에 이고 나타나는 이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미안한 마음부터 불쑥 솟아난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이야기를 어렵게, 어렵게 꺼내는 그 시간. 듣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와 비슷한 나의 과거를 찾아내느라 그 녀석들의 떨리는 손보다도 더 분주하다.
새벽 2시, 전화가 울렸다. 이 새벽에 무슨 일인지 걱정스런 마음이 더 앞선다. 경수였다. 언제부턴가 아빠가 싫어진 사춘기 소년, 경수. “도사님, 잠이 안 와요. 잠 잘 오는 법 어디 없어요?”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다행이면서도, 이 녀석 이 시간에 참 괘씸하다. “역시 경수다! 제대로 걸었네. 내가 그 비법을 알고 있지!” “정말요? 뭔데요?” 말처럼, 정말 간절했나보다. 괘씸했던 만큼갑자기 나도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건 진짜 잠이 안 올 때 하는 건데.” “오호, 뭔데요?” 목소리가 한층 더 밝아진다. 이러다가 오던 잠도 달아나겠다. “양을 한 번 세어봐.” “에이, 그거였어요? 해봤죠. 벌써 250마리까지 세어 봤어요.” 예상외의 답변에, 당황스러웠다. 평소에는 짜증부터 냈을 상황인데…. “저런, 아쉽다. 조금만 더 세어보지. 260마리째에는 잠이 왔을 텐데.” “아, 그런가? 그럼 조금 더 해 볼게요. 그런데도 잠 안 오면 다시 전화할 거예요! 각오하세요!” 잠꼬대는 아니었을까. 방금 통화한 녀석이 하루같이 아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그 경수가 맞나. 그 때는 누구보다 목소리도 크고, 누구보다 확고했는데…. 모두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있는 사춘기 경수에게는 마음 한 구석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남아 있나보다. 어쩌면 그 녀석은 금, 남아있는 그 작은 순수함을 지켜내려고 자신도 모르게 까맣게 몸부림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순수함을 빼앗겨 버린 것만 같은 상실감에, 그래서 나도 그 시절을 어서 잊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잃어버렸던 사춘기를 되찾고 있다. 너무도 외롭고 치열해서 마음까지 짠해지는 이 녀석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다른 이들을 태우는 만큼 자신을 까맣게 태
워가
던 나의 그 시절은 또렷하게 되살아난다.
제 정신이라면 받지 않았을 그 시각, 오는 잠을 이겨가며 나누어야하는 대화치고는 답답하리만치 영양가 없어보였지만, 내 마음속에는 긴 따뜻함으로 남아있다. 잠이 오지 않는 날, 자장가처럼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 같은 너의 한 마디로 나는 솔솔 잠이든다. 나 먼저 잘게, 미안해. 다음 날 아침 일찍 문자 한 통이 왔다. ‘도사님, 나 금방 잠들었어요! 히히.’

장지훈|무엇이든 다 들어줄 것만 같은 선한 눈웃음이 매력적인 훈남 전도사. 현재 동숭교회 청소년부를 맡아 아이들과 함께 조곤조곤 꿈을 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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