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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9 09-10 마을, 다시 피어나다

마을, 다시 피어나다 2 l 마을을 디자인하는 남자

희망제작소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원순 씨’로 불리는 그는 오늘도 작은 똑딱이 카메라 하나를 들고 여기저기를 걸어 다닌다. 무언가를 찍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다가 눈에 들어오는 찰나를 잡아낼 뿐이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구도도, 초점도 별 볼일 없는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평범한’ 장면에 원순 씨의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어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그 사진들을 죽 늘어놓고 보면, 그를 찰칵, 찍게 만드는 이끌림이 무엇인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허름한 담벼락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그림, 울퉁불퉁해 지나가기 불편한 보도블록, 복잡한 광고로 옷 입은 전신주…. 원순 씨의 요즘 관심은 다름 아닌 ‘마을’, ‘동네’, ‘골목’ 등인 것. ‘아름다운 가게’를 시작해 나눔과 재활용의 가치를확장시킨 그가 이제 그 가치를 사회 곳곳에 나눌 수 있는 장으로서의 ‘마을’을 회복하자고 한다. 스스로를 ‘Social Designer’라 칭하는 그가 디자인하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산(離散)의 시대에서 정주(定住)의 시대로
‘박원순의 희망탐사’라는 이름으로 지역, 학교, 마을, 공동체 등을 순례하며 올린 글이 벌써 117편.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원순닷컴’ 블로그를 운영하는 그가 바쁜 시간을 쪼갰다. 지금은 옛말이 되어 버린 ‘마을’에 대한 수다 한판을 떨어보기 위함이다. 우리 ‘ 마을’을 잃어버린 건 언제일까.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로 인해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농촌이 붕괴되었죠. 일제 강점기와 분단이라는 아픔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공동체’라는 것이 존재하기 어렵도록, 모든 게 이산되었어요.”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각자 흩어져 알아서’ 잘 사는 것이 당연한 과제가 되었다. 이제 우리가 사는 동네는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는’ 투기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
더 넓고 좋은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시대에, 지금 다시, ‘마을’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불어 살아온 민족이 공동체를 잃어버리고 나니, 외로운 거죠. 생존하기 위해 잠시 뒤로 미뤄두었던 ‘사람다움’, ‘ 관계’, ‘ 여유’ 등의 가치를 그리워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먹고 사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더라도, 성장을 위해 달려왔던 지난 시간을 반성하고, 이제 행복을 추구하고픈 욕구가 강해졌죠. 과거가 해체와 이산, 떠남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정착, 정주, 머무름의 시대로 가고 있어요.” 박원순 이사가 이토록 ‘마을’과 ‘지역’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시대가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저는 역사가 U턴한다고 생각해요. 계속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길게 보면 조금씩 변화되고, 결국 진보하고 있다고 믿어요. 역사의 진행 과정에는 무수히 많은 섬세한 지점들이 존재하거든요. 그 지점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거대한 진보를 이뤄가는 거죠.” 마치 대도시, 대기업, 자본 등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현상에 대한 ‘ 반작용’으로써 농촌, 중소기업, 사람 등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것처럼 말
이다. 그는 이제 외형적 가치보다 내면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는 단계에 와 있다며, 그러한 변화를 일구려 하는 방법과 노력조차 이전 시대와는 달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총칼로, 무력으로 이루는 혁명이 아닌, 일상에서의 작은 혁명을 매일매일 이루어가야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혁명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변두리로 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곳에, 어떻게 정주하며 머무는 삶을 살 것인가. 미래교회학자로 불리는 레너드 스윗은 ‘변두리로 가는 교회’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래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 당신은 지금 변두리로 가야만 한다. 근대의 세계에서 힘은 중심과 크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세계에서는 그 크기에 상관없이 변두리가 서로 다른 힘의 중심지가된다. 나사렛, 베들레헴, 골고다는 모두 변두리 지역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박원순 이사 또한, 레너드 스윗의 통찰대로 ‘변두리’를 이야기한다. 그동안의 지역순례를 통해 깨달은 건 지역과 농촌이야말로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블루오션’이라는 것! 과잉경쟁의 대도시에서 대학을 가기 위해, 졸업 후 취직을 하기 위해, 취직 후 집을 사기 위해 끝없이 올라가야 하는 한국사회의 구조는 창의적이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에는 너무 노후하다. “누구나 다 가는 길을 가려고 하니, 힘든 거예요. 대도시를 벗어나, 지역의 소도시나 농촌으로 가면 남들이 가지 않는 길, 다양한 삶의 길을 오히려 더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민박집, 그린투어리즘, 산촌 유학 등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여기에 지역공동체의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나 한편으론, 작은 규모의 마을은 사적 영역이 잘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걸리기도 한다.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알고, 우리 집 이야기가 온 동네 수군거림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현대인들에게 도시가 더 매력적인 이유는 간섭받지 않을 수 있는 이 ‘ 익명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사적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관계적인 공동체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일까. “도시 안의 농업과 공동체도 활발하게 시작되고 있어요. 도시의 농촌화라고도 하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나는 음식을 먹는 ‘로컬 푸드’ 운동도 그와 같은 맥락이고요.”

‘잘 산다는 것’, 진정 무엇인가
마을을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 “개발이죠. 과잉개발. 지금은 개발과 공사에 대한 신드롬마저 생긴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길이 너무 많아요. 교통체증이 있는 곳도 아닌데 국도, 고속도로, 고가도로 등의 길을 끊임없이 만들죠.” 자연과 농촌만 개발하는 것도 아니다. 도시 또한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건물이 철거되고 헐리는 사이, 사람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 아프지만 지금의 현실이다.
“개발은 분열과 대립을 일으킵니다. 개발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나뉘게 마련이죠. 각각 자신의 집단의 유익을 따지게 되면서 갈등이 심화됩니다.” 결국 그 갈등은 개발의 유익을 따지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텐데, 그 간극을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너무 다른 입장의 차이는 ‘단절’이라는 결과만 던져 주는 것 아닐까. “사람마다 ‘잘 사는 것’에 대한 정의가 다르니까요. 하지만 저는 자본의 논리로 잘 살 수 있다고 여겼던 믿음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제 고민을 시작한 거죠. 무엇이 진짜 잘 사는 것일까?” 여기에서도 그는 여전히 ‘희망’을 말한다. 결국 사람과 마을, 관계와 공동체를 그리워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 “ 살아보고자 몸부림치는 마을들을 돌아보면,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어요.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내려는 마을과 농촌, 공동체가 점점 늘어가고 있으니까요.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 주민이 주체가 되면 제일 좋아요. 일부는 개발할 수 있고, 나머지는 주민들의 공공적 유익을 위한 광장이나 공원 등을 늘릴 수 있게 되죠. 하다못해 개천에 나무라도 심게 되요. 핵심은 주민의 참여입니다.” 우리 마을을 아끼는 애착이 과열되면 이미 빈번한 사례가 보여주듯, 지역 이기주의 또는, 마을 이기주의로 변질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건강한 지역 이기주의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 마을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한 원동력이 되니까요. 향토적 정체성을 가지고 자부심, 자긍심은 가져야 하지만, 배타적이지 않은 큰 시각으로, 마을을 넘어, 군, 도, 한반도, 세계를 동시에 볼 줄아는 능력이 중요하죠. 그래야 지역감정이라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마을에 대한 참된 주인 의식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힘으로 뻗어나간다는 말이다.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박원순|검둥소

2006년 4월부터 근 3년 동안 지속했던 지역 탐사의 결과물로, 개발 열품으로 파괴되고 소외된 곳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희망제작소를 창립당시 ‘진리는 현장에 있다’는 신념을 표방하면서 이 시대의 문제를 푸는 대안과 해결 방법을 추상적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찾은것이다. 전국 방방곡곡 현장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수첩을 들고 노트북과 카메라를 둘러메고 길을 나선 저자가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경험과 사례들을 싣고 있다.



교회, 마을을 살리는 곳이 되어야
이즈음,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나 자리한 교회 이야기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박원순 이사는 한국 사회의 교회들이 잘 연합하여 뜻을 모으면 얼마든지 마을을 살리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교회는 그 지역성도들에게 리더십이 가장 많아요. 그래서 교회의 역할이 더 중요해요. 근데 요즘 한국사회의 교회는 너무 권력을 많이 갖고 있죠.” 교회가 가진 힘을 그 지역과, 현장과,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희망제작소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지역교회의 목회자나 마을의 리더들을 함께 모아 마을을 살리는 일을 위한 컨설팅을 하고자 한다. 문제도 장에 있고, 답도 그 현장에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인 셈이다. “교회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교회가 서 있는 그 현장에서, 지역 농촌 붕괴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것이 기독교인의 자세라면,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이루지 않은 채 그 길을 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뜬금없이 뜨끔하게,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한다. “자본과 강자의 거대한 흐름이 너무 거세어 여전히 어렵다 할지라도, 신념이 이깁니다. 미래는 작은 것이 이기는 시대에요. 다윗이 승리한 것처럼요.”

21세기에 ‘마을’이라 …. 바위에 달걀 던지는 것 같은 무력감은 없을까. “왜 없어요. 저는 매일매일 절망해요. 정말 어렵구나, 진짜 힘들구나 하면서요. 하지만 길게 보고 크게 보면, 다시 희망하게 되죠.” 진보를 위한 후퇴도 있을 수 있다는 대인(大人)다운 큰 생각 때문인지, 여기저기 들려오는 안타까운 사회 소식에 대해서도 안달하지 않으며, 허허 웃어 보인다.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 박원순의 새로운 작품은 분명 ‘마을’, ‘동네’에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 ‘마을 디자인’ 자체보다는, 미래를 긍정하고 다시 희망을 제작하려는 그의 ‘마음 디자인’이 더욱 소중한 작품인지도 모른다.
글ㆍ사진
노영신

원순닷컴
http://wonsoon.com

희망제작소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290-11 비전빌딩 2~4층
02-3210-0909
www.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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