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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오늘>/문화선교연구원

영화 <2012>의 휴머니즘적 종말론


지구의 종말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질문들을 일일이 나열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마도 인류의 수만큼이나 많은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공통적이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질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그 날이 언제이며, 어떤 모습으로 일어날 것인가,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막거나 피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등이다. 종교적인 측면이 반영된다면 아마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누가 이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인가, 종말의 순간에 구원 받을 가능성은 있는가, 누가 그 축복을 받을 것인가, 그리고 지구의 종말에 대한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종말 이후의 세계는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 등이 추가될 것이다.



내일을 갖기 위해 인간이 해야할 일
2004년에 개봉된 에머리히 감독의 <투모로우>는 일종의 휴머니즘적 종말론으로 지구 온난화가 지구의 기후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 따른 결과들을 실감나게 보여준 영화였다. 에머리히는 이 영화를 통해서 환경문제에 소극적인 미국을 겨냥하면서 지구의 종말을 불러오는 원인이 인간의 탐욕과 오만에 있음을 폭로하고 이를 경고하였다. 내일이라는 시간을 갖기 위해 인류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이 모든 관계(자연과의 관계, 인간 상호간의 관계등, 그러나 신과의 관계는 빠져 있다. 이점에서 투모로우는 휴머니즘적 종말론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에서 기본에 충실해지는 것과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 영화가 환경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 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2, 지구의 모습은?
지구의 종말을 보여줌에 있어서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환경문제에서 소극적이었던 미국에 대한 심판만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2012>에서 에머리히는 종말의 범위를 지구전체로 확장하고 있다. 지역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제작비 차원에서도 <투모로우>는 <2012>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2012>를 제작하게 된 배경에는 시중에 유포되고 있는 “2012 종말론”에 자극을 받은 것이리라 생각된다. 에이드리언 길버트의<마야의 예언, 시간의 종말>은 B.C. 3114에 나왔다는 마야 문명의 예언을 다룬 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2012 종말론”의 대중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영성연구가이자 컴퓨터과학자이며,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저자인 그렉 브레이든의 <2012 아마겟돈인가, 제2의 에덴인가?> (김형준 역, 물병자리, 2009)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분히 뉴에이지적인 성격이 짙은 글이다.
“2012 종말론”이란 마야 문명에 살던 사람들의 달력이 2012년 12월 23일로 멈춰져있다는 사실에 근거하는 예언에서 비롯된다. “2012 종말론”은 어떤 종교적인 이유나 인간의 죄에 의한 종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전 작품들과 전혀 같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침해적인 삶에서 그 원인을 찾지도 않는다. 순전히 태양계의 순환운동과 태양의 이상 현상이 미친 지구의 변화로 인한 재앙에서 비롯되는 종말이다. 자연의 재앙을 동반하는 지구의 종말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우연이면서도 운명적인 사건에 직면해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종말의 순간에 인간의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인류의 구원, 휴머니즘
다른 어떤 재앙영화들에 비해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2012>에서 에머리히 감독이 집중하고 있는 점은 -다소 김빠진 느낌을 주지만- 한 작가의 소설이다. 이것은 종말과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지질학자의 관심을 받고 또 그가 그 책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나, 종말을 일으키는 재앙들이 소설가 가족이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 등을 보아서 잘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투모로우>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작가 자신과 그의 가족이 영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재앙의 순간에 가족의 희생과 또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서로에 대한 생각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재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우 전형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에서 등장하는 두 남녀 주인공의 역할과 비슷하다. 영화의 흐름을 인도하면서도 실제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될 것이다.
에머리히 감독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재앙의 순간에 서로 협력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작가의 글이다. 에머리히가 <2012>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에머리히는 영화 결말의 결정적인 순간에 이 말을 지질학자의 입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종말의 순간에 인류가 총체적인 멸망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서로가 협력하는 것이며, 종말 이후의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결코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취한다. 비록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세계의 모든 정상들은 그의 말에 동의를 표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에머리히는 <2012>를 통해 다시 한 번 인류가 구원받을 가능성으로 휴머니즘을 강조한 것이다.

최성수|독일 Bonn 대학교 신학석사, 신학박사. 현, 장신대, 한남대, 한일장신대, 대신대 출강. 저서 <영화관에서 만나는 하나님>, <영화 속 장애인 이야기>, <영화 속 기독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