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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오늘>/문화선교연구원

<경계도시2>, 절망과 희망의 애가를 노래하다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까 한다. 가끔 어쩔 수 없이 인터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나에게 인터뷰는 사실 늘 어색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들을 다시 본적은 거의 없다. 한 번 용기 내어 본 적이 있긴 했지만, 역시나 영 어색한 것 같아 다시 보지 않기로 나름 마음먹었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발전을 위해서라도 다시 보고 고쳐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하였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 시점에서 좀 엉뚱하고 거창한 변명 같지만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모습을 대면하는데서 오는 본능적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일들을 외면하고픈 그런 마음이랄까. 하지만 그 누구든 그 순간을 직면할 때야 비로소 성숙의 의미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아픈 과거를 직면할 때

사회라는 거대한 자아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성숙한 사회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성찰적 공동체가 되어갈 때, 비록 부끄럽고 외면하고픈 과거일지라도 그것들을 직면하고, 바꾸어나가려는 이들이 점점 많아질 때 그 공동체는 보다 진일보된 공동체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관객의 집중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경계도시 2>의 선전을 한 번 주목해보고 싶다. 빠른 속도로 개봉관을 늘려가며, 2010년 최고의 다큐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경계도시 2>. 이 다큐멘터리엔 2003년과 2004년, 송두율이라는 인물이 드러낸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날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제 한국 사회도 송두율이라는 그릇을 담아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판단 속에서 감행된 37년만의 귀국길. 그러나 귀국 후 그의 과거, 조선노동당 가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태는 급반전되었고 걷잡을 수 없는 레드 콤플렉스가 한국사회를 강타한다. 보수진영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귀국을 추진하였던 진보진영마저 배신감을 느끼고 등을 돌린 채, 남북을 넘나들려던 그의 경계인적 신념과 행동은 모두에게 외면 받는다. 과거행적에 대한 사과와 남한 체재로의 거센 전향 요구 앞에 경계인 송두율의 신념은 난타당하고 그의 존재마저 결국 난파당했다. 그러나 정작 구속과 수감의 과정 속에 우리는 그를 무심히도 망각하였고, 법정 투쟁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경계인 송두율은 모두의 기억 속에 사라진 채로 황망히 이 거대한 경계도시를 떠나갔다.

절망 속에서 희망의 이유를 발견하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한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나 또한 그러하였다. 어떤 기자는 마이크 타이슨에게 108분 동안 얻어맞은 느낌이라고도 했다. 그 불편함의 실체란 무엇일까. 그것은 경계인 송두율에게 보낸 차가운 시선 속에, 그리고 그 ‘진실’에 대한 무관심의 한가운데 나와 우리가 있었음을 들추어내었기 때문이다. 잊고 있던 우리의 부끄러운 자아를 다시 소환하여 직면케 하는 참회록이랄까. 그러기에 이 다큐멘터리는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에 마주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고 또 많아져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는 이 영화를 보고 그 이유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록 그것이 일그러진 모습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일은 그 절망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불러야 할 희망의 애가(愛歌)란 절망의 애가(哀歌)를 부르지 않고선 노래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경계도시 2>를 보며 한없는 절망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 절망에 동참하고자 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희망의 이유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백광훈|조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며 오늘을 산다. 염광교회의 교육목사로, 문화선교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