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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TV 상자 펼치기

<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을 묻다

출처 : KBS홈페이지


집에서는 손에 물도 안 묻히는 남자, 주말이면 TV 리모컨을 꼭 쥔 채 엉덩이만 살짝 들어 아내의 걸레질을 피하는 남자. 아이들에겐 유독 엄격하고 무서운 남자. 이제 이런 남자는 환영받지 못한다. 남자가 변하고 있다. 정확히는, 변해야 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계속되고 권위주의문화와 가부장제가 약해지는 만큼, 가정 안팎에서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했기 때문이다. 돈만 벌어주면 되는 아빠가 아니라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 아내와 청소와 설거지를 분담하는 남편. 남자에게 주어진 역할은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 않았다. 남자니까 하지 않았던 일을
이젠 남자니까 한다. 그것도 안 하면 남자도 아니야! 버라이어티 <남자의 자격>이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부제를 단 이유다.


나이든 약골 남자들이 공감을 자아내다
[KBS 해피선데이] 코너인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가 차지하는 자리는 퍽 독특하다. 고참 MC로서 ‘날로 먹는 진행’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했던 그가 직접 ‘개고생’을 한다. 쉰 줄을 넘긴 그가 다른 멤버들을 깐죽대며 놀리다 갑자기 주어진 미션에 당황할 때는 고소하기까지 하다. “이 나이에 내가 그걸 하리?” 투덜대지만, 하고 만다. 군대에 다시 가서 구르고, 중국집 사장님에게 혼나면서 배달나가고, 하프 마라톤 완주까지 도전한다. 다른 출연진(김태원, 김국진, 이윤석, 김성민, 이정진, 윤형빈)의 맥없는 개그를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 평균 이하’<무한도전> 멤버들보다 나이는 더 많고 체력은 더 저질(!)이란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작년 3월 첫 방송 이후 ‘나이 든 약골들’의 버라이어티가 다른 쟁쟁한 프로그램 틈바구니에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였다. 미션을 하면서 온 몸과 얼굴로 드러내는 ‘남자들’의 애환이 맥없는 개그보다 더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제 40-50대가 된, 밖에서는 중견 간부나 사장님이고, 집에서는 가장인 남자들에겐 그들의 개고생을 웃고 즐기면서도 온전히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 때문이었을까. 평균 시청률 23.4%라는 기록은 <남자의 자격>이 그만한 공감대를 보여준다는 걸 반영한다. 패러글라이딩이나 웨이크보드 타기처럼 비일상적인 미션들도 드문드문 주어지지만, 출연진이 받는 미션이 종종 일상적이라는 점이 공감대를 사는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자, 그리고 아르바이트의 추억’(2009년7월 19일 방송)이나 ‘남자, 현장에서 먼지 덮인 밥을 먹어보라’(2010년 2월 14일방송) 같은 특집에는 각별한 울림이 있다. 40-50대에게는 추억이고, 10-20대 에게는 우리 아빠 얘기이자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진짜 남자란 무엇일까?
남자에 대한 전통적 역할이 갈수록 옅어지고, 권위주의 시대와는 다르게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시대. <남자의 자격>에서 “진짜 남자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에 녹여낸 시도가 낡은 듯 새롭다. 단순히 여성의 사회진출과 가정의 역할 변화에 완고하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변화할 필요성이 남자들의 눈앞에 놓여있다. 한 마디로, 대화가 필요하다. 성 역할 변화에 예민한 아내와 제대로 된 대화도 해본적 없는 데서 오는 거리감. 자녀뻘인 10-20대 남자애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지금의 40-50대에게는 너무나 낯설다는 데서 오는 괴리감. 점점 세대 간 단절과 소통 부재가 걱정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그 괴리를 줄일 수 있을까 하는 데에 남자들도 두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남자들에게 주어진 짐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고? 그렇다고 너무 부담스러워 할 것 없다. 그저, 아내가 하는 일, 아이가 하는 일을 함께 나누는 것. 그처지에 함께 서는 것. 그걸 서로 이야기로 나누는 것. 그게 전부다. 이게 변화하는 시대의 ‘남자의 자격’일 게다. 글 김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