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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오늘>/문화선교연구원

한국의 대중문화 속 동성애

대한민국은 전통적으로 동성애 혐오적이다. 동성애가 대중문화를 통해 하나의 콘텐츠 형태로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소설과 드라마, 영화, 광고 등에서 동성애 혹은 동성애 코드를 가진 내용과 장면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빠르게 동성애 문화를 확산시킨 요인은 무엇일까? 동성애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은 근대화 과정과 더불어 일어난 일이지만, 그것의 빠른 확산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대중문화 생산과 유통의 주력인 대중매체다.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생각해본다면, 이런 변화로 인해 대중들의 생각과 삶, 그리고 가치관에도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동성애와 미디어
조선희는 “동성애영화 어떻게 볼 것인가?”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사회는 아직 동성애 담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반(半)전통주의 사회라고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라는 주제가 한국 사회와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된 데에는 유럽과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문화 교류에 따른 현상일 뿐, 한국 사회의 필요에 의해 혹은 자생적으로 일어난 담론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동성애는 서양적이고 특히 미국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동성애에 대한 담론이나 영화 혹은 드라마는 일종의 문화적 쇼크로 여겨질 뿐이다.
정말 그럴까? 동성애가 공적인 담론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렇게 흔하지 않았으며 그것도 최근의 일이라는 사실, 동성애자들의 소위 커밍아웃이 과거에 비해 늘어났지만 그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아직까지 마련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커밍아웃과 더불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피해자가 된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그리고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제작해온 서구의 동성애영화가 한국에서는 2000년도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소비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조선희의 주장은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다. 특별히 한국 전쟁 직후부터 동성애가 간간이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으로 보아 나라 밖으로부터 온 영향력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조선희의 주장에서 문제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에서의 동성애 역사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또 욕망이 없었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비록 서구적인 담론은 없었다 해도 한국의 동성애 역사와 문헌(19세기로 추측되는 소설 <방한림전>)이 말해주고 있듯이 동성애 주제는 결코 수입된 것만은 아니다. 물론 담론의 형식과 내용은 다분히 서구적인 틀을 도입해왔고 또 그 틀에서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

이미지의 소비
한국의 동성애영화와 관련해서 서구의 문화적인 영향력을 지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과거에 비해 더욱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담론의 주제로 부각되고 있는 동성애가 동성애 혐오적인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오늘날과 같이 빠르게 동성애 관용적인(?) 사회가 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조선희의 주장대로라면 외국 문화와 동성애 주제에 대한 담론의 수입은 큰 변수임에는 분명하다. 동성애가 고학력 젊은층에서 더욱 개방적이라는 점에서 동성애가 대중문화를 매개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동성애가 ‘최신 트렌드’이고 ‘지적인 사람들의 관행’이라는 이미지를 생산하여 대중의 잠재된 욕구를 유발시키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의 삶과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에 의해 한국 사회 수면 밑에 흐르고 있는 욕망이 일깨워졌다고 보는 것은 정당하다. 현대와 같이 소비의 시대는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선망의 대상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큰 몫을 했으며, 오늘날 동성애 이미지는 대중문화와 융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동성애 혹은 동성애 코드를 추적하고 또 대중문화가 동성애를 어떻게 다루고 있으며 또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 지를 분석해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중략)

사회적 권력과 동성애
성적 소수자는 엄밀히 말해서 동성애자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동안 여성들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언제나 성적 소수자였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동성애에 대해 남성들보다 관용적인 이유를 분석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한결같이 ‘동류의식’에서 들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동성애 문제를 다룰 때는 사회적 권력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동성애가 어떤 형태로든 대중문화에 모습을 드러낼 때, 동성애 혹은 동성애 문화는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사회적 다수에 의해서 동성애는 금기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특정한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혹은 의미를 경험하도록 하면서도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의미를 추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대중문화는 바로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다시 말해서 대중문화는 의도와 철저하게 계산된 기획에 따라 생산되고 유통되면서 다양한 미학적 장치를 통해 대중들의 관심을 충족시켜 주려고 노력한다. 매체적인 속성상 단지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관심을 생산하기도 한다.
대중문화 속 동성애가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성애와 관련해서 소수자와 약자의 이미지가 강조됨으로 인해 사회적 관용을 강조하게 되고 또 그와 더불어 대중의 침투력이 높아지는 것은 주목하고 또 경계할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미명하에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고 또 그 욕망에 충실한 방식으로 동성애 문화를 생산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가 동성애를 다루는 방식은 주로 모든 것을 포용할 수밖에 없는 가족의 문제이고, 또 사랑의 진정성이기 때문에 보는 자로 하여금 적지 않은 설득력을 행사한다. 대중문화에 노출이 많을수록-동성애 주제와 관련한 인터뷰 기사를 통해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동성애에 대한 의식이 많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설득의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를 입증한다.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라도 대중문화 속 동성애를 자주 접하면서 관용적인 입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한국사회가 동성애에 대해 관용적이 된 데에는 대중문화의 영향이 결정적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에 대한 바른 시각을 얻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의 논리에 설득되지 말고 비판적으로 소비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편견이나 오해 혹은 동성애 포비아에 사로잡혀 모든 동성애자를 정죄하기보다는 동성애자들의 성적 정체성을 결정짓는 숙명적인 원인들을 함께 고민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건전하게 키워나갈 수 있도록 혹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우며, 교회는 바람직한 성 역할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 최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