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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1 05-06 마음의 쉼표

마음의 쉼표 6│키워내며 자라가는 쉼의 자리

 

작은 교회, 농사짓는 교회. 내가 출석하는 포항 푸른마을교회를 설명하다 보면 어김없이 하는 말이다. 생태운동이나 작은 교회 운동 같은 것이 알려지고 나서는 이 단어가 자랑 같이 들리는 것 같아 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하지만, 교회를 설명하다 보면 어쩔 수 없다. 우리 교회는 ‘농사짓는 작은’ 교회다. 내가 교회를 나가기로 결정한 것도 사실 이 단어에 혹해서였다. 처음엔 농사란 단어가 낭만적으로 들렸다. ‘각박한 일상을 살다가 일주일에 한번, 흙을 만지며 생물이 자라는 것을 본다’, ‘농사를 지으며 일상의 고민들은 땀에 씻겨 내려간다’를 꿈꿨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초짜 농부의 일 년 농사
작년 농사는 한마디로 실패였다. 청년부에는 집을 떠나와 교회 근처의 대학에 다니는 타지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방학이면 대부분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두셋이 남아 밭을 지킨다. 사람이 적으니 흥도 덜한데다 장맛비로 몇 주일을 거르고 나니, 여름철 무섭게 자라는 잡초들이 걷잡을 수 없이 온 밭을 뒤덮고 말았다. 할 일은 많고, 결실은 바로 나타나지 않는 지루한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잡초가 무성한 밭을 보면 고민이 더 늘어났다. 결국 게으른 초짜 농부들은 겨우 감자 몇 알, 방울토마토 몇 개 따먹고는 농사를 접었다. 그리고 남은 반년 동안을 교회 어르신들에게 지나가는 소리처럼 타박을 들었다. 그렇지만 어쩌리. 일 년 농사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을.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새 봄이 왔다. 우리 교회의 봄은 빠른 편이다. 새싹이 올라오는 걸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와 닿는 봄의 냄새는 꽃향기가 아닌 거름 냄새다. 유난히 춥고 폭설이 잦았던 겨울이라 봄이 더욱 반가울 만도 했지만, 마음 한편은 무겁기만 하다. 올해도 청년들은 그대로 네 이랑의 밭을 받았다. 매년 초 원하는 가족들에게 나뉘는 교회 앞마당의 텃밭은 올해 원하는 가족이 늘어나 밭이 조금 모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 밭을 맡기신 건 실패했더라도 계속 배워 보라는 어르신들의 속 깊은 뜻이리라. 하지만 지난여름의 실패 때문일까. 고작 네 이랑이 운동장 만해 보인다.

마음에 열리는 것들
엄살을 피웠지만, 사실 교회의 농사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대부분 교회에 온 차림 그대로 밭에 나선다. 구둣발로 밭에 들어와 일을 해도, 능숙한 집사님들은 올 때처럼 그대로 깔끔하게 교회를 나선다. 흙을 뒤집어 쓰는 건 흙장난하는 아이들과 어설프게 밭일하는 청년부뿐이다. 오늘은 지난주 미리 거름을 주었던 밭에 감자를 심었다. 역할 분담을 하진 않았지만, 다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옆 사람이 잡은 농기구를 보면서 눈치껏 자기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능숙하진않지만 옆에서 던져지는 훈수를 받아가며 농사를 배운다. 직접 손에 흙 묻히며 땅을 파고 풀을 뽑는 동안, 평생 꽃 예쁜 줄 몰랐던 언니는 밭에 핀 보라색 가지 꽃에 감탄을 했고, 한 오빠는 풀에 쌈장 찍어 먹는 맛을 알았단다. 그리고 나는 누가 무슨 벌레를 무서워하는지,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 ‘알던’ 사람들을 다시 알게 되었다.

진짜 농사를 짓는 일은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고작 여름내 몇 주 내버려두었다고 풀숲이 되어버린 텃밭이 섭섭했다. 한 번의 실패가 일 년 동안 이어졌다. 쉬는 시간을 쪼개 농사를 해도 열매는 더디 나오고, 고민은 씻겨 내려가기보단 잡초와 함께 늘 거기 있었다. 낭만은 깨졌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와는 다른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한 번에 열 걸음 스무 걸음 가는 것보다 한 걸음씩이라도 꾸준히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실패하더라도 겨울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봄이 돌아온다는 것. 오래 기다린 열매가 달다는 것. 그리고 소박한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신 것. 그렇게 소박한 것들 속에서 영혼의 쉼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도 밭에 심겨져 있는 보화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 보화가 이것, 아닐까?


윤웅희|시골에 온 도시아이가 자라 도시에 사는 촌사람이 되었다. 운이 좋아, 늘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지금은 타고난 게으름을 거스르며 배운 것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예술 집단 바나나빵의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