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SBS 홈페이지

골드 미스도 아닌 여자를 ‘그냥 노처녀’라고 한다던가. 노처녀면 노처녀지 그냥 노처녀는 뭔가? 하지만 요즘 드라마
의 대세는 바로 그냥 노처녀다. 늘어 가는 건 주름살이요, 후줄근한 옷차림에 평범한 외모, 변변치 못한 직업까지 고루고루 갖춘 노처녀가 재벌남 내지 능력 있는 연하남을 쟁취하는 것이다. 왜 멋있는 왕자님은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어여쁜 이웃 나라 공주님을 버리고, 평균 이하 그냥 노처녀의 매력에 푹 빠져드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 뻔하디뻔한 스토리에 매번 마음을 뺏기는 걸까.

판타지를 공유하다
끈적이는 탱고 선율이 감미롭게 휘감는 드라마, <여인의 향기> 여주인공 이연재(김선아 분)는 34
살 노처녀다. 여행사 가이드인 그녀는 젊은 여자 후배들에게 늙었다(?)고 무시를 받고, 인격모독과 성희롱을 일삼는 부장에게 입의 혀처럼 굴며 직장 생활을 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늘 씩씩하기만 한 그녀는 어느 날 고객의 반지를 훔쳤다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뒤집어쓴다. 밑바닥까지 내몰린 그녀는 심지어 담낭암 말기로 시한부 6개월을 선고 받기에 이른다. 이제껏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으로, 가슴팍에 참을 인을 새기며 퍽퍽하게 살아왔던 그녀에게 닥친 현실은 기가 막힐 지경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그녀는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자 마음먹고 20개의 버킷리스트를 만든다. 자신을 괴롭혔던 놈들에게 복수하고, 매일 엄마를 웃게 하고, 탱고를 배우고, 가수 준수와 데이트도 하고, 첫사랑도 찾아간다. 예측가능한 로맨틱코미디는 이 버킷리스트에서 현실과 맞닿는다.
연재의 버킷리스트는 우리가 평생을 두고 꿈꾸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꿈의 목록이기 때문이다. 회를 거듭하며 그녀 생의 마지막 소원들은 누가 들어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하나하나 차근차근 이루어진다. 이건 드라마지 하면서도, 연재처럼 착하고, 성실하게 살다보면 나의 버킷리스트도 마침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로 다시 소망하기에 이른다. ‘연재도 하는데, 나라고…’하면서.

어쩌면 나일지 모르는 그녀
그렇게 버킷리스트로 가닿은 현실은 연재가 모든 걸 다 가진 남자, 동화 속 왕자님 같은
강지욱이동욱 분 본부장과 사랑에 빠짐으로써 판타지로 돌아온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하는, 정직하고 따뜻한, 의외로 예쁘기까지 한 연재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이긴 하지만 재벌 2세가 모든 걸 내던지고 사랑에 빠지기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서른을 넘어서며 더 현실적이 된 탓일까, 아니면 그동안 숱하게 내 손을 거쳐 간 <그는 내게 반하지 않았다>식의 철저한 연애지침서 때문일까. 드라마 속 노처녀와 불운한 이혼녀들이 어떻게 그렇게 몽땅 재벌 2세를 만나서 행복해지는지, 과연 재벌 2세만 인생을 극복하고 행복을 가져다줄 유일한 존재인지 묻고 싶다. 연재가 푸른 바다를 보며 강지욱에게 하는 말, “내가 누군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잊을 수 있는 그런 날이다”라는 대사처럼 지금 이 드라마를 보는 여성들은 현실의 팍팍함을 내려놓고, 내가 누군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잊은 채 불 같은 로맨스를 꿈꾼다. 나보다 못한 드라마 속 그녀가 멋진 남성을 만날 땐 잠깐 질투했다가도 내 대신 잘난 여자들을 이기며 사랑을 쟁취하는 모습에 행복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 속의 사랑을 더 어렵게 만드는 달콤하되 잔인한 걸림돌인지도 모른다.

배성분|오늘도 잡지 마감에 시달리며, 한 땀 한 땀 기사를 쓴다. 꿈에 조금씩 다다르고 있다고 믿으며.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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