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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1 09-10 영화, 경계를 넘어서다

영화, 경계를 넘어서다 1│한국 기독교 영화, 그 역사를 말하다

한국 기독교 영화?
한국에 영화가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 매개 중 하나는 선교사였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 영화는 일반 영화의 역사에 비해 짧고 또 단층적이라 하겠다. 그만큼 서구 기독교 영화가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기독교 영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의가 없기때문에 기독교 영화의 성격 규정이나 일정한 경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기독교 영화라 함은 소재적인 면에서 명백히 기독교적 색깔이 드러난 것을 일컫는다. 성경 이야기나 교회사에서 신앙적으로 모범적인 족적을 남겼거나 또는 그런 과정에 있는 사람들의 생애나 삶의 단면들을 부각한 영화다.
최근에는 소재보다는 주제적인 면에서 기독교영화를 정의하려는 시도들이 많아지고 있다. 제작 의도가 명백히 기독교적 가치를 지향하거나, 혹은 다루는 내용이 기독교(신앙적, 교회사적, 성경적, 신학적) 주제의식에 따른 것을 포괄하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정의로 볼 수 있다. 예컨대 <크로싱>2008이나 <바보>2008가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앞서 말한 것은 좁은 의미의 정의라 말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지면 관계상 좁은 의미의 정의에 제한하겠다.

한국의 기독교 영화의 모습
한국 기독교 영화의 특징은 주로 인물 중심이며, 이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는 현상이다. 기독교 영화의 대부분이 선교용으로 혹은 신앙을 권장하고 강화하며, 신앙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 7의 예술인 영화가 대체로 오락과 교훈이라는 두 가지 방향을 함께 지향하는 점에 비춰볼 때, 한쪽으로 편향된 점이 없지 않다. 이렇게 된 데에는 경건주의적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영화를 설교와 교육의 연장선에서만 보려고 하는 보수적 경향도 읽어볼 수 있다.

한국 기독교 영화의 길을 들여다보다
한국 기독교 영화는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 1948년에 제작된 최인규의 <죄없는 죄인>에서 출발한다. 이필름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 그 내용을 알 길이 없다. 그 후엔 1965년도에 제작한 유현목 감독의 <순교자>가 있다. 이 영화는 순교의 진정한 의미를 탐색하는 진지한 작업을 추구했지만, 죽음 이후의 세계를 부정하는 듯한 대사로 인해 교회의 혹독한 비판을 받야 했다. 실제로 한국 기독교영화는 1980~90년대에 집중되어 있으며, 2010년도 이후부터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1980년대에 집중된 이유는 교회의 부흥을 기록했던 시기와 맞물리기도 했지만 영화사적으로 볼 때, 당시의 영화계가 유신정권의 검열로 인해 소위 호스티스 영화에 전념하고 있었던 시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별들의 고향>, <어둠의 자식들>과 같은 호스티스 영화로 유명했던 이장호가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제작할 정도가 되었는데, 비록 대종상을 수상하긴 했어도 제작 당시에는 제작 의도와 관련해서 많은 의문에 휩싸였던 영화이기도 했다.

1970년대 <사랑의 원자탄>1977을 만든 강대진은 극적 표현보다 당시의 현실과 삶의 단면을 영화로 표현했다.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로 6년간의 옥고 치렀고, 여수의 애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여순 반란 사건에서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양아들로 삼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적절하게 조명하면서도 당시의 현실과 삶의 단면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그는 안이숙 여사의 생애를 다룬 <죽으면 살리라>1982를 만들었다. 안이숙 여사는 1939년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교직에서 쫓겨난 후에 제74회 일본제국회에서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전단을 뿌리다 검거되어 옥고를 치른 여성이었다. 이 영화는 책 <죽으면 죽으리라>에 바탕을 둔 것이다.
1980년대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81는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제작은 1977년도에 끝났지만 유신정권의 검열로 인해 개봉되지 못하다가 1981년에 비로소 개봉된 작품이다. CBS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임원식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는 공식적으로는 35만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하는데, 교회를 순회하며 상영된 것을 포함하면 그 이상일 것이다. 영화관이 부흥회를 방불했었다고 할 정도였다. 기독교 영화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밝혀준 영화라 하겠다. 임 감독은 1986년에 한국 최초의 목사이며 최초의 선교사로서 제주 지역에서 사역했던 이기풍 목사의 신앙과 삶을 다룬 다큐드라마 형태의 <순교보>를 만들었지만 이것 역시 검열문제로 개봉관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교회 상영으로 끝나야 했다.

이미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서 기독교 영화의 흥행을 경험한 분위기에서 이장호는
호스티스 영화에서 불현듯 이청준 원작을 영화로 만들 결심을 하게 된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2인데, 안요한 목사가 맹인교회를 설립하게 되기까지의 삶의 과정을 그린 영화로 당대에 대종상은 물론이고 18회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1980년대에 제작된 영화로는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장모인 최자실 목사의 자서전적인 <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1982, 김병섭 장로와 전 연대총장 박대선 박사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8.15 해방 이후 북한 교회의 실상을 다룬 <하늘로 가는 밝은 길>1982, 그리고 1970년대 청계천 빈민을 대상으로 활빈교회를 세우고 사역한 김진홍 목사의 수기에 근거해서 만든 영화 <새벽을 깨우리로다>1989가 있다

1990년대
1990년대는 난봉꾼으로 살다 기독교에 귀의하였고, 목사 안수 후에는 만주에서 활발한 선교 활동으로 그곳에서 20여개의 교회를 설립했던 최봉석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예수천당>1991, 많은 투자 비용을 통해 과감하게 해외로케이션까지 시도해 영화계는 물론이고 교계에 의해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던 <무거운 새>1994는 흥행에서 실패하여 기독교 영화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한국 최초의 맹인 박사인 강영우의 전기를 그린 영화 <빛은 내 가슴에>1995, 성경 인물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왕후 에스더>1996와 <예수>1997 등도 제작했었지만 흥행은 저조했다.

2000년대
2000년대에 기독교 극영화의 제작은 <포도나무를 베어라>2007를 제외하면 한편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에 대한 극적 표현은 오히려 앞서 언급한‘ 영화 속의 기독교’라는 맥락에서만 다뤄졌다. 이에 비해 오히려 다큐가 주종을 이루기 시작했는데, 물꼬를 튼 역할을 한 것은 김우현의 2003년작 <팔복 1-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이다. 최춘선 할아버지의 전도인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그 후 김우현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등을 계속해서 제작, 무료로 보급하여 기독교 다큐 영화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그 후 한국 영화계 <워낭소리>라는 다큐 형식이 흥행을 이루며, 그 힘을 얻어 신현원 감독은 2009년도에 <소명>을 제작하였다. 오지 선교사의 삶과 신앙을 조명한 다큐인데, 관객의 반응은 기독교 다큐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기독교 영화의 르네상스를 불러일으켰다고 평가되었다.
작년엔 개봉된 작품으로는 <소명2>, <회복>, <잊혀진 가방>, <지라니 이야기>, <희망의 별-이퀘지레템바>, <용서>, <울지마 톤즈>등이 있고, 올해는 히말라야의 오지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는 강원희 선교사 부부를 다룬 <소명 3-히말라야의 슈바이처>,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를 조명한 <바보야>도 개봉되었다. 물론 장편 이외에도 많은 단편이 만들어졌으며, 특히 교회용으로 자체 제작되거나 기독교 영화사에 위탁하여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소 지루하겠지만, 연대기적으로 살펴본 것에는 우리 기독교 영화가 어떻게 흘러 왔는지를 보며 한국 기독교 내에서 기독교 영화의 자리도 다시금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 교회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1980년대 이후 정체되어 있다가 21세기에 다시금 기독교 영화가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데에는‘ 서울 기독교 영화제’가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왜냐하면 교회와 세상의 소통을 목적으로 시작한 영화제는 선교를 위해서만 제작하는 관행에서 탈피해서 신앙인의 자기 성찰이 가능한 영화를 소개했고, 또한 사전 제작 지원이라는 방식을 영화 제작을 후원하고 또 관련 영화들을 소개함으로써 기독교 영화 생산과 관심을 높였기 때문이다. 영화제의 발전은 곧 한국 기독교 영화의 발전으로 이어지리라 전망된다. 그리고‘ 파이오니아21연구소’ 같은 기독교 영화 전문 제작사가 설립된 것이나 기독교 영상콘텐츠 개발을 위한 학과가 몇몇 기독교 대학에서 설립하게 된 것도 기독교 영화 발전과 관련해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으로 한국 기독교 영화의 과제로는 첫째, 기독교 영화는 대안영화로서 자리매김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기독교 문학의 활성화는 물론이고 시나리오 발굴이 시급하다. 이는 극영화 제작의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셋째, 신학교에서 영화 교육 또한 필요하다 하겠다. 또한 영화 제작에는 영상미학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적 이미지 계발도 이 시대에 중요한 기독교 영화의 과제라 하겠다. 더하여
영화 비평의 장도 자유롭게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성수|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