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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7-08 아일랜드 랩소디

아일랜드 랩소디 │ 특집 5_ 군산 카페 ‘나는 섬’








뭍에 사는 나에게 섬이란 언제나 멀다. 그러나 배도, 비행기도 타지 않고 섬에 다녀왔다. 군산 개복동에 있는 카페 ‘나는 섬’. 과거에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는 자리에,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으로 세상이라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섬이 있었다. 글 · 사진 박윤지


군산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시였다. 날이 환했으나 개복동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스산하고 허름한 길이었다. 문 닫은 지 오래돼 보이는 ‘국도극장’ 이 있었고, 곳곳에는 ‘임대 문의’ 라고 써 붙인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섬’ 의 작고 동그란 간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가 바로 보였기 때문이다. 카페에 들어서니 내부는 바닷속을 연상시키듯 어두웠고, 창밖에서 들어온 빛이 파란 커튼을 통과하면서 내부를 푸르게 물들였다.

 

이 카페의 사장이자 설치미술 작업을 하는 조권능 작가는 군산에서 나고 자랐다. “개복동은 ‘開(열 개) 福(복 복)’ , 복이 들어온다는 뜻의 이름이에요. 이곳은 군산의 가장 큰 영화관 국도극장과 우일극장이 있던 영화 거리였죠. 하지만 군산이 최근에 개발을 시작하면서 신시가지가 생겨나고, 원도심이었던 이곳은 개발에서 밀려나 계속 쇠퇴하고 있어요. 윤락가였던지라 군산 사람들의 인식에는 어두운 곳이죠. 미술 작업을 하면서 소외지역에 자연스레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천장에 붙은 ‘슬리퍼 샹들리에’ 가 돋보였다. 샹들리에는 부유층의 상징으로 연회장에서나 볼 법한 것이 아닌가. 반면에 값싼 플라스틱 슬리퍼는 소시민의 용품이고.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합이 형형색색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이곳을 택한 이유를 함축하듯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섬
살다 보면 주위와 소통이 힘들게만 느껴지고, 한없이 깊은 외로움에 빠질 때가 있다. 조권능 작가에게도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그런 시기였다. 학교에서 함께 디자인을 전공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취직을 위해 서울로 떠났고, 여기 남은 친구들은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실로 먹고사는 게 ‘문제’ 였다. 이를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그는 세상 속 예술가로서 자신이나 예술 그 자체가 설 자리가 좁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가 순수하게 열정을 쏟고 싶었던 예술은 그야말로 망망대해 가운데 외롭게 떠 있는 ‘섬’ 같았다. 외로울수록 소통의 문을 찾으려는 고민, 그것이 카페의 시작이었다. 무엇보다 개방적인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고, 원래 개인 작업실로 쓰던 이곳을 카페로 바꿨다.

“지금은 동네에 작업하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처음엔 그냥 놀러 왔지만 서로 작업 얘기를 하다가 이 동네에 들어오게 된 것이죠. 이제는 ‘개복인’ 이라는 자생적 예술 커뮤니티가 형성됐어요. 복덕방 같은 느낌이에요. 만나면 편하게 수다 떨고.” 실제로 ‘나는 섬’ 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이 동네를 찾는 발길이 늘었다. 그의 바람대로 젊은 작가들이 이곳에 머물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북 지역의 대학생, 청년들뿐만 아니라, 멀리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섬
꽉 찬 3년을 지내는 동안 카페 ‘나는 섬’ 에서는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전개했다. 가게 아래층 갤러리에는 일러스트 3인전 ‘beginning’ 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 3~5월에는 목요일마다 밴드 ‘만만성’ 의 라이브 공연이 있었는데, 지금은 9월에 시작되는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뉴욕물고기’ , ‘윈디시티’의 옥상파티 등 공연도 열렸다. 이밖에도 음악다방, 골방영화제는 음악이나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또 동네 주차장과 공터를 이용해 정기적으로 열린 아트마켓에서는 작가들이 공예, 도자, 액세서리 등 장르에 상관없이 다양하게 만든 작품을 판매하였다. 폐허로 남아 있는 이 거리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문화 감성의 자극제이자 소통의 촉발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녹록하지 않은 활동이었다. 처음에 입주했을 때는 ‘예술의 거리 조성’ 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하지만 공공미술이다 보니,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갈등과 불신만 깊어지고 결국 무산되었다. “실제로 이곳의 사람들 문화의식이나 심리가 다층적이기 때문에 일을 진행하면서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잦았어요. 우리만의 소통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도 하고. 또 역할 분담이나 콘텐츠 부족의 문제를 많이 깨달았죠. 저나, 같이 일했던 친구들은 힘든 만큼 성장한 것 같아요. 지금은 확장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초창기 때보다는 오히려 자신감도 생겼고요.” “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닐지라도.” 이렇듯 ‘나는 섬’ 은 조금씩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거친 바다 같은 세상에 나아가 또 다른 섬으로 사는 사람들을 찾아갈 것이다.


카페 나는 섬
전라북도 군산시 개복동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