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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2 07-08 아일랜드 랩소디

아일랜드 랩소디 │ 특집 3_ 사람과 사람 사이, 미술섬│서양화가 최인호의 작업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바다가 아닌, 육지 한가운데 섬이 있다. 하얀 하늘과 초여름을 맞이하는 성마른 초록빛의 들판이 푸른 물결을 일으킨다. 이 독특한 섬의 이름은, ‘미술섬’ . 정현종 시인이 시, ‘섬’ 에서 노래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는 그 섬과 닮았다. 곱게 그늘이 드린 담과 장난기 가득한 빨간 표지판을 지나 다다른 섬의 초입에서, 우리는 섬 주인 최인호 작가를 만났다. 글 윤지혜 · 사진 신화민


한 발짝 물러나 자리한, 미술섬
“섬이라는 게 마냥 좋더라고요. 왜 그리 느낌이 좋은지. 이장희 씨 만나러 울릉도 한번 가야 하는 데.” 미술섬 안, 높고 깊은 작업 공간은 작가를 꼭 빼닮은 여러 조각과 그림이 빼곡히 놓여 있다. 정갈하게 놓인 미술 도구들은 작업실을 전시관처럼 보이게 한다. 이름의 연유를 묻자, 삶의 결이 켜켜이 쌓인 얼굴이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어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섬이라 하면 흔히 고립되고 외롭다는, 삶에서 밀린 패배자만 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강호를 떠나 멀찌감치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곳이요. 서로 밟기에 급급한 경쟁사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기에 좋은 곳이 바로 이 섬입니다.” 어떤 철학자가 말했다. 현대의 비극은 생각할 수 있는 여운, ‘심심함’ 의 부재에서 온다고. 최인호 작가의 작품을 보다 보면 종종 우두커니 서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인물과 마주친다. 그의 눈은 ‘나’ 에게 묻는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요.

최인호와 사람 사이
“이 세상은 자기 이야기를 못 해서 환장한 병자들로 가득 차 있어요. 쌓인 게 있으면 해소를 해야 하잖아요. 해소할 길이 없는 아픔이 문제인 거죠.” 부모 복, 처복은 없다던 최인호 작가에겐 사람 복이 많다. 거대한 물결의 향연 앞에서 선로를 잃어버린 배들이 밀려오듯, 사람들은 최인호라는 섬을 찾는다. 갈매기의 이야기조차도 귀담아듣는 잠잠한 그의 마음이 위로를 주는 것이다. “어릴 때 꿈이 큰 바위 얼굴이었어요. 표정만 봐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니까. 그런 얼굴이 되었으면 싶었죠.” 사람의 얼굴엔 지나온 생이 담긴다. 최인호 작가의 얼굴엔, 세상과 사회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의 삶이 지니는 목적과 의미를 찾으려 노력해왔던 진심 어린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와 내 가족만 아닌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는 데 삶의 의미를 두는, 그는 이미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 

“영화 마지막에 딱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있잖아요, 그때 사람들 반응이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는데 만면엔 미소를 짓고 있는 거야. 웃고 울다. 울고 웃다. 내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작품은 최인호 작가와 사람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은 칙칙하고 어둡다. 그림 안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이 ‘ 나’ 같아서 고독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가만히 보다 보면 뭔지 모를 밀도 있는 온기가 마음 안으로 밀려 들어와 ‘나’ 를 물들인다. 작품이 보는 이의 아픔을 받아 깊은 위로로 되돌려주는 듯하다. 웃는 것과 우는 것. 해소할 데 없는 아픔을 움켜잡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 내민 손과 귀일지도 모르겠다. 자녀가 부모를 닮듯, 작가를 닮은 작품들이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

섬을 그리다
“미술이 참 재밌는 게, 누구나 다 백 점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이란 점이죠. 선생이 그 사람만의 고유한 색감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구요. 누구나 다 좋은 인상을 품고 있는데 그냥 묻고 살아가요. 발굴할 기회가 없으니까.”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제 3의 눈이 존재한다. 세상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질문하는 눈. 자신을 향상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 눈을 두려워하며 움직인다. 그 속에서 온전한 ‘나’는 서서히 시들어가고, 시선에 의해 형성된 ‘아바타’가 자리를 대신한다. 최인호 작가는 말한다. ‘나’를 잃어가는 슬픔과 그의 소중함을. 
행복은 어떤 조건을 떠나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찾아온다. 모든 이가 온전한 ‘나’를 누리며 살아가는 곳. 타다 남은 재가 화폭에 오묘함과 깊이를 더해주는 미술 재료가 되는 것처럼, 놓인 삶 어느 하나 정답 아닌 것이 없는 섬. 최인호 작가가 그리는 섬이다.